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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광주 비엔날레, 두번째 이야기

광주 비엔날레, 그 두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작품 몇개를 더 감상하시길~



재미있는 작품이다. 지붕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전투경찰의 방패다. 그리고 지붕에 매달려 있는것은 우리들의 일상을 나타낸다. 전투경찰 = 공권력 = 국가나 정부 이렇게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 지배당하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살아가는 민중을 나타낸 작품인데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가권력은 힘들지만 이렇게 국민들을 보호하고 버팀막이 되주고 있다는 해석, 또 반면에 언제든 줄을 놓아버리면 떨어지는 국민들이라 마음대로 조종하며 살아간다는 해석. 2012년 이명박 정부의 대한민국은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이동식 호텔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아니 미니어쳐다. 이대로 실제 차량용 이동식 호텔을 만들어서 광주 시내 곳곳에서 이동식 호텔 체험을 하도록 만든 작품이다. 즉, 이동식 호텔로 개조한 차량 자체가 예술작품인 셈이다. 비엔날레 전시관에는 이 이동식 호텔 차량들이 주차해서 하룻밤을 보낸 광주시내 골목골목 곳곳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너무 흔해서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며 살고있는 소중한 주거공간(후미진 동네)을 호텔이라는 고급 주거공간과 매치시키는 작업이다.



또 하나 인상깊은 사진작품. 이건 설명을 못읽어봤는데 비엔날레 전시관 1층과 2층을 잇는 통로에 수십장의 다리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교량을 말하는 다리가 아니라 시골 동네 개울가를 건너는 다리나 논두렁, 밭두렁을 다닐때 쉽게 볼수 있었던 널판지 판자 다리 같은 것들...이런 사진들이 수십장 전시되어 있는데 걸어가며 보다보면 어릴적 외갓집에 가던 길이 생각난다.


그 밖의 작품들. 아래 작품은 엄청나게 큰 미로 게임인가?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따라가다 말았다. ㅡㅡ;;




우리나라 수묵화를 보는듯한 작품. 자세히 보면 정말 흑백 수묵화로 볼수 있었던 산과 강, 나룻배들의 모습이 다 들어있다. 이 작품설명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딱 헐리웃 공포영화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제목이 기억나진 않는데 옛날 미국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대로 생체시험을 하고 그때 죽은 영혼들이 혼령이 되어 그 터를 해맨다는... 아주 상투적인 공포영화에서 이런 기계장치가 나왔었다. 저 하얗게 보이는 모니터를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화면속에 이런 모양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것도 공포영화의 한장면 같다... ㅡㅡ;;



하도 모호한 작품들이 많아서 벽면에 붙은 이 표식을 보고도 한참을 긴가민가 망설였다. 저게 화장실이라는건지 아니면 작품중에 하나인지..  ㅡㅡ; 다행히 화장실이었다. 얼른 들어갔다...





성인이라면 한번 둘러보면서 나름 감상도 해보고, 설명도 다 읽어보고 싶고, 미디어 작품들도 보고 싶고 한데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고역인 시간들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작품들이 아니다보니 재미도 없고, 부모들이 작품설명을 해줄리도 만무하고, 전시관 내에 앉아서 쉴만한 공간도 별로 없고, 또 어찌나 오랜시간이 걸리는지 우리 두 딸들도 처음에는 신나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시무룩해진다. 게다가 주하가 말썽을 피운다고 사진을 찍는데 언니 주원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랬다가 다시 금방 풀어지긴 했지만 ^^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들은 아주아주 초반부 열의에 싸여 사진을 찍어댈때 찍힌 사진들이다. 나 역시 도슨트의 설명없이 보채는 애들 데리고 바삐 이 작품, 저 작품 들여다보고 다니다보니 지적 호기심이 금방 사그라들며 빨리 벗어나고픈 맘만 가득 했다. 


일단 총평을 해보자면 지구촌 신진 작가들이 쉽지 않은 주제를 놓고 만든 작품들이라 다소 난해했고, 무엇보다 젊은 작가들이다보니 새로운 시도가 많았다. 그 새로운 시도가 기성 작품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뜬금없거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수 있겠다 싶다. 글 초반부에 미술작품들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사실 비엔날레에 전시된 작품들중 회화작품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조형, 행동, 미디어 작품들이다. 2차원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3차원을 모두 이용하는 작품들이고, 가끔씩 전혀 납득할수 없는 4차원 작품들도 눈에 띈다.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한 국제 전시작품들의 흐름은 미디어를 이용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빛이나 소리를 이용한 작품 또한 많았다. 광주 비엔날레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적인 미술, 문화 작품들의 경향을 한눈에 볼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재치넘치는 작가들의 수준높은 창작물을 우리 안방에서 편하게 관람한다는 점은 큰 매력이 아닐수 없다. 따라서 미술이나 문화 예술, 조형, 미디어 에술 쪽에 관계되는 일을 하시는 분들에겐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관람해야할 코스이고, 이런쪽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나 직장인 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 참, 사진촬영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아빠, 다리 아파요. 업어주세요~"를 연발하던 작은 앙마, 주하. 웃기는... ㅡㅡ;


반면에 아직 어린 아이들과 동행하기에는 여러모로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개개의 작품들도 어린이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니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건 설치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품들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는 점이다. 일부 몰지각한 관람객이 예술작품에 손을 댄다거나 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에 어쩔수없는 조치라고는 할지라도 그러다보니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고,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해야 제대로 감상할수 있는 작품들도 접근할수 없게 해놨다는건 큰 아쉬움을 남긴다. 나도 어제 소개했던 '집'을 소재로 한 크리스마스 트리같은 조형물을 가까이 가서 보다가 진행요원에게 한소리 들었다. 또 하나, 미디어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는데 한 작품당 20~30분씩 하는 작품을 차분히 감상하기에는 전시관이라는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림잡아 한 20여개의 미디어 작품들이 있던데 그걸 언제 다 보고 있겠는가! 게다가 전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로 촬영됐는데...


    남자 하나를 못잡아 먹어 안달인 우리집 세 여자들... 왼쪽부터 작은앙마, 쌈닭, 큰앙마..



2006년이었다. 그때 제1회 광주 비엔날레 개관 준비에 여념이 없을때인데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알바겸, 봉사겸 비엔날레 청소 용역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다. 말은 순수 자원봉사였는데 청소 용역사에서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대학생 위주로 인원을 뽑았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보니 여러모로 아햏햏했다. 개관일이 불과 일주일 앞에 다가왔는데 아직도 전시관 건물은 다 지어지지도 않았고, 초대작가 작품들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설치중에 있었다. 이래가지고 날짜를 맞출수 있겠어?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역시 한국인의 힘은 위대했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철야로 몰아부치더니 개관일날 비엔날레는 무사히 오픈했다. 오~ 필승 코리아!


개관일 하루전 일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전시관 내부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아까 말했듯이 하루를 앞두고서도 여전히 작품들이 설치중에 있었고, 건물 내부 공사도 막바지라서 여기저기 쓰레기로 넘쳐났다, 전시관 내부는 각각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들이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어느 한 곳의 칸막이가 반쯤 떨어져 나가 부서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합판으로 간단히 막아놓은 칸막이가 아니라 벽돌을 쌓아서 시멘트로 미장해서 만들어 놓은 칸막이였는데 그게 삼분의 일 정도가 부서져서 깨진벽돌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걸 발견한 우리 청소 용역팀이 서둘러 말끔이 치워놨다. 내일이 개관인데 어떻게 오늘까지 칸막이도 다 완성되지 못했을까~ 칸막이가 부서져 있는데 왜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면서. 그때 들려오는 "오 마이 갓~~" 하는 울부짖음! 노랑머리 외국인 한명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오 마이 갓을 외치고 다니는거다. 알고보니 부서진 칸막이, 바닥에 떨어져 뒹굴던 벽돌조각이 모두 작품이었단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억압과 울타리를 거부하고, 깨고 나온다는 의미의 설치미술이었던 거다. 그 작가는 뒤늦게 한국에 들어와 하루전에 작품을 완성해 놨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에 누군가 자기 작품을 깨끗이 치워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역시 전시관 내부를 청소하던 용역팀이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발견하고 치우려는데 외국인 여성 작가가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더란다. 물론 그 쓰레기들은 그 여성작가의 작품이었던 거다. 청소팀이 미안하다고 하고, 원래 있던 자리로 그대로 돌려놓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짜증을 부리던 여성작가. 대충 쓰레기들이 있던 자리에 흐뜨려놓고 자리를 뜨려 하는데 원래 이 모양이 아니었다고, 다시 원상복구 시켜 놓으라는 했단다. 그래서 모양을 바꿔놓고 눈치를 보니 여전히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결국 이 청소알바는 그 작가와 함께 쓰레기 하나하나 자리를 다시 잡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지금도 비엔날레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예술의 위대함과, 만만함(?)이 교차한다. 나도 이참에 작가로 나서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