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워낙에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커서 김지하 시인과 함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허나 평소에 신작 위주로, 재미 위주로 책을 읽는 아빠소는 이런 거장의 저서들을 감히 읽을 생각을 못했었다. 왠지 제목만 봐도 어려울것 같고, 평단의 찬사를 받는걸 봐서는 재미도 없을것 같고 (ㅡㅡ; 영화도 평론가들이 평가하는 영화는 재미없지 않은가...), 또 이런분들의 작품은 무~지 길것 같고, 헐... 그만하련다. 여기서 무식하고 얕은 독서취향이 다 들통나버렸다.
암튼 그래서 그 유명한 이름세에도 불구하고 황석영 작가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말이다. 그나마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대학때 불어닥친 민족, 민주화 바람을 타고 읽은적이 있다. 태백산맥은 읽었던 때가 1991년이었는데 참 감명깊게 읽었었다. 헌데 훗날 이 책이 새누리당 보수정권 시절(당시는 아마 민자당이었지?) 금서로 규정되기도 해서 이해하지 못했었지.. 아니 왜? 왜 태백산맥이 금서야?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작품속 남과 북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이 '남한=절대선, 북한=절대악,괴뢰,빨갱이' 이렇게 정의되어야 하는데 남과 북 모두 아픈 시대의 피해자들이다~ 뭐 이런 내용이라서 친북으로 분류되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즈음이다.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당시의 과격한 재야의 남북교류 분위기를 타고 정부에 허가받지 않고 문익환 목사등 진보시민단체 사람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것이 1989년이다. 이 즈음이 전민련, 전대협, 범민련같은 단체들이 결성되던 시기다. 당시 사회상으로 이들 통일단체들은 당연히 불법단체로 규정되었고,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실시되었다. 이때 북한방문으로 인해 황석영 작가도 투옥되었다. 지금 세대들이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금강산 관광을 하고, 민간교류도 활성화 되고 하니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민주당 정권 이전 새누리당 집권시절에는 북한이라는 말도 입에 담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통일을 주장하면 좌파라고 했고, 우리민족을 강조하면 빨갱이라고 했다. 어쩜 지금과 똑같을까? 10년이 지나고 다시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으니 지금도 북한과의 교류를 얘기하고, 통일을 얘기하면 종북좌파라고, 빨갱이라고 몰아부치지 않는가...
어쨋든 다시 황석영으로 돌아와서... 황석영 작가가 민족주의 진보의 대표 문학인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 그 유명한 '장길산'이다. 1974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를 했고 1983년과 84년에 걸쳐 총 열권으로 발간됐다. 북한에 홍명희의 '임꺽정'이 있다면, 남한에 황석영의 '장길산'이 있다는 말이 유행하였다. 방북이후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있었네'라는 작품을 출간했고,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4년간 해외를 떠돌다가 마침내 귀국하고 곧바로 수감되었다. 1998년 출소이후 '오래된 정원'등의 작품으로 다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서두에 황석영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얘기했었다. 솔직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너무 급진적인 성향의 작가라는 이미지때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고 고백한다.
이번에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신작소설 '여울물 소리'를 읽게 됐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분위기도 바껴 급진적인 이미지가 희석된데다, 무엇보다 두께가 얇은(!) 소설이라 무심결에 읽게됐다. 게다가 핑크빛 표지는 또 얼마나 세련됐든지...
이 책을 읽고서야 왜 사람들이 그를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느니, 거장이라느니 하는 찬사를 보내는지 알게됐다. 이전까지 내가 읽어왔던 현대작가들의 작품과는 왠지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 한 작품 읽어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논한다는건 터무니없는 일이고, 이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민족, 민중(국민,백성) 중심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19세기 조선말기 일본과 청나라의 주도권 싸움과, 민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민비일파의 개화정책이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결국 죽어나는 것은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높은 세금으로 하루아침에 산적이 되고, 살기위해 민란을 일으키는 백성들뿐이었다. 이신통이라는 인물과 그를 사랑한 여인, '나'를 중심으로 이시대 시대상과 동학운동의 진행과정을 흡입력 있게 풀어냈다. 노작가인데다 시대가 조선말기다 보니 소설의 문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적응하기 다소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동학운동의 사상을 설명하는 주요 스토리가 겉핧기 식으로 읽는 이들에게는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독하며 읽기 시작한다면, 다소 어려우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을 만끽할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고, 지금 관점으로는 상상조차 되지않는 남성우월주의 사회하에서 여성으로서의 삶과 결혼생활을 읽는 재미도 있다.
제목 그대로다. 역시 거장은 달랐다. 나처럼 아직 황석영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이번에 나온 신작 '여울물 소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참, 그런데 왜 제목이 여울물 소리일까?
여울이라는게 빠른 물살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말한다. 여울목, 여울물.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제목을 소개하면서 대략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깊은 산속 암자나, 혹은 시골 할머니 집에만 가도 평소에는, 낮에는 들리지않던 소리가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들리기도 한다. 시냇가에 흐르는 물소리도 그러한데 벌레소리 같기도 하고, 재잘재잘 시끄럽게 얘기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론 웃음소리,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 서민들의 삶이, 이런 소리들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정확히 이렇게 얘기한건 아닌데 내가 이런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신작소설 검색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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