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서는 '구더기'가 책의 주제인줄 알았다. 표지 일러스트도 구더기가 주인공이었으니~ 근데 이 책은 구더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책이다. 본문중에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단호박을 갈랐는데 그속이 구더기로 가득 차있었고, 호박을 가르자 구더기들이 몸을 웅크렸다가 힘차게 점프하며 뛰어오르더란다. 그걸 모티브로 삼아 일상의 삶에서 힘차게 도약해 껍질을 깨뜨린다는 의미로 제목을 삼았다. 두명의 저자가 공동집필했는데 권희돈, 권소정, 아빠와 딸이다. 어찌 아빠와 딸이 함께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아빠 권희돈은 청주대에서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중이고, 딸 권소정은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고 돌아와 지금은 인터넷 여성포털 마이클럽에 글과 그림을 연재하고 있다.
아빠와 딸이 공동집필 했다고 해서 하나의 상황을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펴낸다거나 하는 형식은 아니다. 권소정은 마이클럽에 꾸준히 연재했던 글들을 추려서 책에 실었고, 아빠 권희돈은 1부 추억과 2부 마음에 어울릴만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 지면을 채웠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 쓴 전형적인 에세이인데 딸의 글에서는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애정이 돋보이고, 아빠의 글에서는 삶의 회한과 교훈, 감동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가서일까? 그러다보니 아빠 권희돈의 글에 더 정감이 가고 추억을 공유하게 된다~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되던 어미소와 송아지. 안락사 주사를 맞으면 10초에서 1분사이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막 주사를 맞은 어미소의 젖을 송아지가 물더란다. 그러자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까지 서있던 어미는 송아지가 젖을떼자 쓰러져 죽었다. 송아지 역시 살처분 대상이었기에 죽여서 어미와 함께 묻었다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필사적으로 젖을 물린 어미소의 모정에 살처분을 집행하던 방역요원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구제역에 걸린 소 뿐만아니라 반경 얼마 이내 모든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저들이 아무 죄도 없이 그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죽어야하는 안쓰러움까지. 게다가 내가 누군가. 블로그 대문에서부터 아내와 두 딸 밖에 모르는 우직한 아빠소가 아니던가~
이 밖에도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에 대한 글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 마치 어릴적 우리집 얘기 같기도 하고, 또 오늘날 아이들을 바라모는 부모들 얘기같기도 해서 공감가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호미도 날이언마는
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으니이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듕셩
어머님같이 괴실이 없어라
아소 님하
어머님같이 괴시리 없어라
위 시는 작자미상의 고려속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문상온 지인, 친척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글이 심금을 울린다. 어찌 부모의 마음을 그리도 잘 함축해서 적어놓았는지, 그리고 한낱 품떠난 새들처럼 장성후에 부모곁을 떠나 무심하게 살아가다 상중에나 함께 모여 눈물바람으로 더 오래 곁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떠난 부모를 원망하며 후회에 울부짖는 자식들의 모습을 구구절절 가슴아프게 표현해 놓았는지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안그래도 몇주전 제사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일부러 전화를 안하셨다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안부전화를 잊고 산지 오래였는데 그게 마냥 서운했던 어머니는 자식들이 언제 전화하나 보자면서 일부러 제삿날임에도 전화를 안하셨단다. 이런 일을 겪고나니 권희돈의 이런 사모곡이 더 애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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