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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공포영화는 못보지만 공포소설에 도전한다 '호러픽션'

난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왜냐고? 무서우니까...  나이 마흔에 들어선 한 가정의 가장이 이런말 하면 비웃는 분들 있을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나같은 남자들 많다. 평소에 벌레 한마리만 지나가도 소리소리 지르면서 호들갑 떠는 여자들이 놀이공원 가면 겁도없이 바이킹에, 룰러코스터에 번지점프도 잘만 하더라. 나같으면 돈줄테니 한번 타보라고 해도 마다할텐데. 그뿐인가?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도 공포체험, 귀신의 집도 꼬박꼬박 들리려하고, 할로윈데이에 맞춰 그것도 야간개장하는 놀이공원에 주로 입장하는 주고객이 여성들이다. 나를 비롯한 남자들은 대부분 귀신의 집 이런거 무지 싫어한다. 특히 나는 공포영화 한번 보고나면 여운이 오래가서 고생하는 편이다. 그렇게 된데는 외딴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내 환경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에서 생활한다면 덜하겠지만, 건설회사 다니면서 외진 곳에서 숙소생활 하는지라 가끔 주말에 당직근무라도 할라치면 바로 뒤가 공동묘지인 조립식 숙소에서, 동료들 모두 집에가고 나 혼자 남아있는데다, 주위 민가라고는 500미터 이내에 한집도 없는 곳에서 살다보니 아무래도 평소에는 잘 생활하다가 공포영화라도 볼라치면 버티기가 어려워진다.


대학원에 다닐적엔 학교 시험실 귀퉁이에 칸막이를 쳐놓고 생활했었다. 그리고 그 유명했던 일본 공포영화 '링' 시리즈를 컴퓨터로 봤었는데 근 한달 가까이 퀭한 눈으로 폐인처럼 지내야했다. 밤에 무서워서 잠을 못자니 그럴수밖에~ 시험실 생활 역시 불행하게 혼자서 살았었는데 우리 과가 있던 공대건물이 학교 외곽에 덩그러니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밤 10시만 되면 복도와 현관 불을 모두 꺼버리는 탓에 시험실에 있을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문을 나서면 온통 암흑천지에 벽을 더듬어서 가야할 정도였다. 그럴때 열려있는 빈 강의실이 달빛을 받아 더욱 음산하게 느껴졌으니 뭐 말 다했지... 


나의 이 나약함의 끝은 영화 '거울속으로'를 보고나서 극에 달했다. 당시 아내와 연애중이었는데 함께 영화를 보고나서도 아내는 금새 일상에 복귀해 잘살았지만, 난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거울속으로' 내용이 거울에 비친 내가 내가 아니라는 그런 설정이지 않은가! 특히 지금도 인상에 남는 장면은 한 여자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다듬다가 세수를 하러 고개를 숙이는데 거울속 여자의 모습은 싸늘한 눈매로 고개숙인 여자를 내려다보며 칼로...삐리리... 하는 장면. 요걸 보고나서 거울을 못보겠더라. 근데 거울 없는곳이 없지 않은가. 침실에도, 공부방에도,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어딜가나 거울이 있으니. 아이고....


그런 내가 공포소설을 읽었다. 내심 시각,청각을 자극하는 영화보다야 활자로 읽는 책이 좀 낫겠지 싶은 맘도 있었고, 재미는 있지만 영화를 못보니 대신 책으로라도 한번 접해보자 하는 맘도 있었다. 게다가 이제껏 기겁을 할 정도로 무서운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조금은 만만한 맘으로 골라 든 소설이 바로 양국일, 양국명 공동작가가 쓴 '호러픽션' 이란 책이다.





공동저자 두사람에 관한 설명은 책에 나와있지 않다. 다만 이름으로 봐서는 형제지간이 아닌가 추측해볼 뿐이다. 양국일은 2001년 <철탑이 보고있다>라는 작품으로 언더프리 주최 호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언더프리 회원작가, DAUM 영화 평론가로 활동, <귀신이 쓴 책>, <불꽃소녀 아레나>, <붉은벽돌 무당집 1, 2>등을 출간했다고. 양국명은 2002년 <붉은장미>로 리얼 판타 신인상, <BNQ>로 스포츠서울과 바로북이 공동 주최한 제1회 한국인터넷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원타임>, <귀신이 온다>, <붉은벽돌 무당집 1, 2>를 출간했다. 약력으로 봤을때 두사람은 등단부터 지금까지 줄곧 공포라는 장르에 한우물을 파는 작가로 보인다. 특히 <붉은벽돌 무당집> 이라는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2009년에 그 작품이 발표된 후 동명카페를 10년 넘게 운영해오면서 팬들과 소통해 오고있고, 10여년간 활동하면서 발표했던 단편들을 모아 이번에 <호러 픽션>이라는 책을 내게 됐다고 한다.





공포라는 장르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나마 살아오면서 접한 경험상 공포에 대한 코드가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양, 특히 한국적인 정서상 공포영화는 주로 귀신이 등장한다. 그것도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한을 풀기위해 등장하고, 악인들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코드가 흐른다. 반면 서양영화에서 표현하는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살인마를 통해서다. 그리고 특별히 원한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가 살인마에 의해 처참하게 살육당한다. 서양인들은 그런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나 보다. 하지만 나는 한국사람이라서 물론 그런 살인마도 무섭긴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게 하얀 소복을 입고 히히히히~하면서 긴머리 풀어해치고 달려드는 귀신이다.

이번 <호러픽션>에서는 이런 동서양의 공포 코드가 모두 포함된 단편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인마도 등장하고, 귀신도 등장하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들도 등장한다. 무서움도 제각각이다. 역시나 시시해.. 하고 대범하게 읽어 내려갈수 있는 작품도 있고, 허걱!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을까 하며 책을 읽다말고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단편도 있다. 마지막 작품 '유령의 집에서'를 읽고나자 대번에 자기 전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갔을때부터 바로 약발이 받기 시작한다. 이번 주말 또 당직근무라 아무도 없는 이 섬마을 숙소에서 혼자 있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참 통쾌하게 읽었다고 해야겠다. 겁많고 귀신 무서워하는 나같은 사람이 읽기에 딱 적당한 강도의 공포를 선사한다. 담이 큰 분들은 시시하게 느껴질수 있겠지만, 내 수준에선 딱 좋다. 좀 특이하게 느낀 부분은 주인공의 시점 부분이 새로웠다. 보통 이런 소설에서는 3인칭을 주로 쓰지 '나'라는 1인칭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공포소설의 특징상 등장인물은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일텐데, '나'가 등장해 죽는것도 이상하고, '나'가 살인자가 되는것도 이상할테니 말이다. 3인칭으로 표현해야 등장인물을 죽이기도 쉽고 주인공이 살인범이 되기도 쉽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단편들에서는 그런 선입견을 간단히 없애버렸다. '나'가 등장했지만 죽는걸로 끝나고, 또 '나'가 잔인한 연쇄살인범이기도 하다.

나름 단편들을 내 기준에서 순위를 매겨보자면 가장 반전이 돋보였던 작품은 '괴물이 있다'와 '유령의 집에서'이고, 가장 무서웠던 작품은 '사자와의 하룻밤'. 가장 잔인한 작품은 '묵도의 밤'과 '만월의 살인귀'라고 하겠다. 반면 가장 시시했던 작품은 '침입자들'과 '자살 주식회사'. 대체적으로 하드고어 작품들이라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폭력성은 별 다섯, 선정성은 별 없음. 즉, 무지하게 폭력적이고 잔인하지만 야한 장면은 하나도 없는 공포소설이다.

호러픽션
국내도서>소설
저자 : 양국일,양국명
출판 : 청어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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