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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다소 실망스러웠던 늑대소년

극장엘 갔더니 아직도 광해의 열기가 살아있더라.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대부분을 아직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객은 예전같지 않아서 CJ엔터테인먼트의 신기록 달성을 위한 무한 밀어주기 의도가 보인다고 할까~ 광해의 손길을 피해간 나머지 상영관의 대부분도 '늑대소년' 차지였다. 개봉한지 얼마 되지않은 탓에 관객은 압도적으로 늑대소년이 많았다. 오늘 인터넷 기사를 보니 역대 수능일 당일 최대관객 기록을 깼다고 한다. 34만인가 하면서. 개봉 11일만에 3백만을 돌파해서 광해의 기록보다도 앞서는 추세란다. 보고나니 과연 흥행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천만관객은 어려울듯 하고 8~9백만 정도의 스코어를 기록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보련다. 지금 기세로 봐서는 천만달성도 시간문제일것 같은데 왜 나는 부정적인가~는 잠시 후에 언급하기로 하고...



이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건 송중기의 연기변신이다. 대사 한마디 없는 -마지막에 한마디 하긴 한다- 연기임에도 살아있는 눈빛연기와 으르렁거리는 늑대소리는 얼마나 연기에 전념했는지 짐작케 한다. 게다가 꽃미남이라는게 어떤건지 제대로 보여주는 천진난만 하면서 티없는 깨끗한 피부는 남자인 내가봐도 반할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점은 여성팬들의 환호를 불러옴과 동시에 극의 사실성과는 동떨어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늑대와 인간의 유전자를 섞어 만든 전투병기, 무시무시한 힘과 스피드, 야생의 거친 폭력성을 표현하기에 송중기의 얼굴과 외모가 극중 배역과 얼마나 싱크로율이 맞아 떨어지는지.



          나, 늑대소년이야~ 살인병기로 만들어진 위험한 생체실험의 결과물이지.. 조심해.


다음으로 눈에 띄는 점은 박보영의 자연스러운 연기다. 야생의 늑대와 다름없던 송중기를 길들이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나중에는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갖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송중기와 박보영의 연기가 이 영화의 80퍼센트라고 본다. 이외에 박보영의 엄마로 출연하는 배우 장영남이 인상적이었다. 장영남이라고 하면 누구지?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정작 얼굴을 보면 아~ 저 배우~ 하는 배우다. 알게 모르게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얼굴을 보여와서 대개 친근한 이미지일 뿐 아나리 늑대소년에서는 뜨거운 모성애를 가진 엄마와 천연덕스러운 시골아줌마다운 연기를 능숙하게 해냈다. 가슴 뭉클한 감동도 있다. 박보영을 향한 송중기의 복종심과 일편단심을 확인하게 되는 극 후반 오열하는 순이(젊은시절 박보영)를 따라 눈물을 훔치는 여성관객들을 쉽게 찾아볼수 있다. 바로 이 대목이 이 영화가 갖는 유일한 힘이다. 




대부분의 여성관객들은 강한 몰입감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된다. 야생의 위험한 늑대소년이 송중기와 같은 멋진외모를 갖고있고, 나에게만 복종하고, 나를 지켜주고, 나를 사랑해준다...그것도 십년, 이십년, 사십년이 지나도록 오로지 나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내 한마디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고, 내가 위기에 부딪치면 목숨을 걸고 나를 지켜주는 듬직한 남친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이 연상되기 때문인데 일종의 모든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고있다. 이러한 장점 한가지를 논외로 하고나면 남는건 수많은 단점들만 눈에 들어온다. 내가 남자라는 점과, 송중기의 외모에 별 영향을 받지않는 중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지금부턴 단점과 함께 실망스러운 부분을 집중적으로 나열할테니.



일단 가장 먼저 실망스러웠던 부분이 극의 개연성이 너무나 떨어진다는 점이다. 제목이 늑대소년이다. 제목만 듣고 떠오르는 배경은 인간의 손이 닿지않는 자연속에서 야생의 늑대들과 함깨 자란  소년의 모습이다. 거칠고, 위험하고,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영화의 도입부 역시 이런 위험한 '늑대'를 다루기위해 이중, 삼중으로 잠근 철문속에서 사육하는 모습과 한번 대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호신용 무기를 가질수 밖에 없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송중기는 단순히 야생에서 나고자란게 아니었다. 전투용도로 쓰기위해 늑대의 유전자를 인간과 접목한 생체실험을 통해 탄생된 인간병기였다. 이러니 얼마나 위험한 개체겠는가~ 그런데 이런 개체가 사육지를 탈출하고 만나는 순이네 가족에게는 순한 양의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박보영은 애견 길들이기 책자 하나로 송중기를 완벽하게 길들여 버리기까지 한다. 아무리 영화니까~라고 해도 너무하다. 우여곡절 끝에 사회화를 학습시키고, 글과 말을 가르치고 교감하게 된다~는 필연적인 코스를 너무 쉽게 생략해버렸다. 


두번째는 수많은 예산을 투입한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로 탄생한 인간병기임에도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점이 옥에 티다. 연구를 위탁받은 사람도 심장마비로 죽은 교수 혼자고, 그 교수가 죽자마자 송중기는 손쉽게 탈출하고, 그럼에도 다시 회수하기 위한 정부의 어떤 노력도, 시도도 없다. 그냥 송중기 혼자 우리를 떠났다가 자신이 생활했던 창고 주위로 돌아와 서성이다 그 집으로 이사온 순이네 가족과 어울려 함께 생활하는게 다다. 미국영화를 보면 이런경우에 탈출한 늑대소년을 잡아들이기 위해 첨단무기와 함께 수십명의 특수부대를 투입했을텐데.. 심지어 늑대소년의 정체가 알려져 이를 잡기위해 파견된 군인들도 김준현 닮은 대령 한명과 군인들 서너명에 불과하다. 그 흔한 총격씬 하나, 자동차 추격씬 하나 없다.(아니 총격씬은 있었다. 코미디같은..) 


세번째는 앞서 잠깐 언급한대로 영화 전편동안 유일한 송중기의 대사 한마디 "가지마"에서 찾을수 있다. 박보영이 잠깐동안 말과 글을 가르쳤는데 돌아올테니 기다려란 쪽지 하나만 보고 40년을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온 송중기가 할머니가 된 박보영과 재회하고나서 했던 말 "가지마". 근데 이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탈이다. 늑대소년이 내뱉는 첫번째 말이라면 어눌하면서 거친 발음이 더 자연스러웠지 않았을까? 너무나 완벽한, 부드러운 억양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늑대소년은 한마디로 '로맨틱 하이틴 무비'라고 할수있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것도 아닌듯하고, 출연진이 화려하지도 않다. 소재가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헐리우드에서 수차에 걸쳐 영화화시켰던 소재니까. 인기절정의 꽃미남 송중기를 캐스팅해 50점은 먹고 들어갔고, 기대이상으로 송중기와 박보영의 연기가 뒷받침되면서 20~30점을 추가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부족한 개연성, 어설픈 특수효과, B급 캐릭터들. 오랜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타이타닉과, 화가나면 몸이 부풀어 괴물로 변하는 헐크가 혼합된 한국식 영화가 늑대소년이다. 한국영화에서 천만관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대상 관객층이 폭넓어야 함은 필수요소다. 예외적으로 실미도같은 남성취향의 영화도 있긴 했지만 나머지 괴물, 왕의남자, 도둑들, 해운대는 모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극장가로 불러모은 영화들이다. 그렇다면 늑대소년은 어떨까? 대다수의 관객층이 젊은 여성들이다. 10대 여중, 여고생, 20대 여대생, 직장여성말고도 이 영화에 흥분하며 몰입할수 있는 대상이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송중기가 얼굴만 곱상한게 아니라 연기도 잘하는 배우구나~ 박보영도 풋풋한 매력이 살아있는 귀여운 배우구나~ 이렇게 저예산으로도 시나리오만 잘쓰고 연출을 잘하면 천만관객을 노릴수 있는 영화가 나올수 있구나~ 라는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