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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현시창'

 힐링 열풍이다. 여기저기서 힐링이니 멘토니, 위로니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88만원 세대를, 이 시대를 살고있는 청춘들을 너도나도 위로하기 위해 야단이다. 현실이 이렇게 어려우니 어른으로서, 또는 사회명사들로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거겠지. 어쩌면 이런 사회를 만들어온 어른으로서 일종의 의무감일 수도 있겠다. 그래 너희들 힘들지? 미안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수만은 없잖아? 힘들더라도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다시한번 일어서보자! 이게 바로 힐링이고 청춘위로다. 그런데 이런 세태를 비웃듯 아주 음울한 제목의 책이 한 권 나왔다. 힐링? 위로? 꿈? 희망?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단어들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정말 21세기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신들이 알고는 있는가? 하는 까칠한 질문을 한겨례신문 기자 임지선이 던지고 있다. 청춘을 위로하려면 청춘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한 이후라야 가능할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그리고 멘토라 자부하는 이 시대 어른들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한다.

 

 

<현시창>이라는 제목이 이색적이다. 이는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로, 가수 에미넴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노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속에서 신음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저자는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창을 들라"라는 의미로 각색했다. 또는 "지금, 노래 부르며, 창의적으로"현실을 이겨나가자고 해석할 수도 있다.

 

 

24가지의 사연들이 소개된다. 이 책에 소개된 각각의 사연들은 모두 저자가 직접 취재한 사건들을 토대로 구성됐다. 저자가 언론사에 입사한 이후 걸어온 길을 보면 저자의 성향과 사건들이 어떤 내용들일지 대략 짐작할수 있다. 2006년 한겨례에 입사해 <한겨례21>에서 30주 연속으로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인권OTL' 시리즈를 만들었고, 식당 노동자로 위장취업해 여성 빈곤 노동의 현실을 알린 '노동OTL' 시리즈, 국내 최초로 영구임대 아파트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영구빈곤 보고서'등을 취재하여 2008년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 2009년 한국기자상, 2010년 민주언론상과 다시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고, 2012년 언론인권상을 수상했다. 즉, 저자의 주 전공분야가 노동, 여성, 빈곤과 인권사각지대다. 이러다보니 그간 얼마나 많은 사회 밑바닥 삶을 보아왔겠는가. 또 이들에게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꿈을 가져라 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뜬구름 잡기 말일지 실감했을 터다.

 

 

책을 읽다보면 나 자신도 함께 암울한 기분에 휩싸여 도대체 이 놈의 세상이 어찌 이렇게 잔인한지, 우리가 희망을 가질수는 있는건지 끝없는 좌절감에 싸이게 된다. 어쩜 이런 일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 버젖이 자행되고 있는걸까.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자부심인 삼성, 현대등의 대기업들은 어쩜 이렇게도 잔인하게 노동자들을 착취해 올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린 이런 일들을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면서도 모르는체 살아왔던 터라 스스로 부끄러워 진다.

 

그럼에도 좌절감에 싸여 주저 앉아 있을수 만은 없지 않겠는가. 이것이 현실이라고 해서 체념만 하고 있을수는 없다. 힐링이란게, 위로라는게 사치일지언정 그래도 우리는 청춘을 위로하는 가식적인 말과 행동을 반복할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조금이나마 이 사회가 바뀔거라 믿을수 밖에. 이 책을 읽고나서 그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는 양심이라도 갖게된다면 다행이리라.

 

 

현시창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임지선
출판 : 알마 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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