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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무슨짓을 하는데?

 책 제목이 은근이 낚시질이다. 서재라는 지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딴짓'을 교묘히 매치시켜 마치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전혀 책과 어울리지 않을만한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다. 이런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을 낚으려는 의도였다면... 대성공이겠다. 여기 파닥파닥 한명 추가됐으니~ 나 역시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됐으니. 헌데 이 책, 제대로 된 물건이다. 참 잘 낚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딴짓이 아니라 딱 서재라는 단어의 이미지와 부합되는 지적이고, 남자답고, 개성있는 열두명의 진짜 남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자라면, 그것도 중년의 남자라면 가장 갖고 싶은게 뭐냐는 질문에 번듯한 내 집, 중후한 멋을 풍기는 중형차 한 대, 그리고 집 한 켠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허락된 나만의 공간, 서재를 갖고 싶다고 대답할 거다.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마찬가지. 작은 평수여도 내 집이 있고, 중형차는 아니지만 소형차는 있으니 이제 남은건 서재라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할지 모르지만 나만의 공간, 그런 서재를 갖고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두 남자들을 섭외할때 1순위가 어떤 형태로든 서재를 갖고있는 남자였다. 남들은 온식구가 함께 생활할 35평의 지하실을 통째로 서재로 쓰고있는 사진작가 윤광준이 있는가 하면 손바닥만한 다락방을 서재로 개조해 그 속에서 소설을 쓰는 차인표도 있다. 어쨋든 서재라는 이름의 공간을 소유하고 있으니 모든 남자들의 부러움을 받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이들에게 서재는 밀실이자 살롱이고, 남자만의 베이스 캠프다. 그곳에서는 누구의 아빠이자 남편도 아니고, 사회적 직함이나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나만의 망명정부, 일상의 여백, 삶의 충전소... 그게 바로 서재가 내포하는 의미다. 그래서 정말 나도 서재가 갖고싶다..

 

 

이 책은 인터뷰어 조우석이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열두남자를 찾아 그들과 나눈 대담을 옮겨놓은 책이다. 광고인 박웅현, 사진작가 윤광준,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 수학자 강석진, 전 국회의원 홍정욱, 피디 송창의, 배우이자 작가 차인표, 만화가 이원복, 영화인 김동호, 화가 이왈종이 선택받은 그들이다. 내가 아는 이름은 조영남, 최재천, 홍정욱, 송창의, 이원복, 김동호뿐이고 박웅현, 윤광준, 마영범, 강석진, 이왈종은 처음 접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이분들 참 정말 진국이더라. 광고인 박웅현이 누구인지 아는 분은 손들어 보시길. 모른다면 다음과 같은 광고 카피를 떠올려 보시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엔 도전한다" (KTF)

"다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만듭니다" (풀무원)

"진심이 짓는다" (e편한세상)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빈폴)

"생각이 에너지다" (SK에너지)

"잘 자~ 내꿈 꿔~", "사람을 향합니다"

이게 다 박웅현이 이끄는 카피팀이 짜낸 명 문구다.

 

 

 

 

거장 임권택 감독이 보스로 모신다는 남자, 세계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는 '타이거 클럽'을 이끄는 사람, 1만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거대한 서재, 부산 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 김동호. 그의 집은 전체가 서고다. 이정도면 서재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하다. 그냥 서고라고 봐야겠다. 무려 1만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젊은 시절의 그를 잘 몰랐지만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부 하에서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 전당 초대 사장, 문화부 차관까지 역임한 분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계의 거물이자 산 증인인 그가 꼽는 '내 인생의 영화 베스트5'는 뭘까? 임권택의 <만다라>,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창동의 <박하사탕>,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꼽았다. 베스트5인데 네편 밖에 없다. 나머지 하나는 고를게 없다는 건지, 너무 많아 고를수 없다는건지 알 수 없다. '내 인생의 영화'를 꼽는데는 어려웠지만 '내 인생의 책'을 꼽는건 수월했다.

<세계 영화사 - 잭 엘리스>, <흙속에 저 바람 속에 - 이어령>, <두시언해 - 두보의 시 번역서>,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박정희 대통령 연설문집>을 꼽았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그는 지금껏 겪은 여러 대통령중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고,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이 책은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조영남과 차인표 편도 기대된다. 아직 못읽었다. 게다가 잘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것도 기대가 크다. 열두명의 인터뷰가 담겨있지만 네 편만 읽은 상태다. 책이지만 '읽는다'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다'라고 표현하는게 더 잘맞는 표현같다. 요즘 이렇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간의 대담식의 책들이 유행인가 보다. 이번 추석연휴 기간동안 읽으면 제격이겠다.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국내도서>인문
저자 : 조우석
출판 : 중앙M&B 201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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