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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고3수험생을 응원하는 엄마의 사진일기

고3 수험생을 둔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해줄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사랑해', '힘내', '열심히 해', '화이팅!' 등등...뭔가 일상적이지 않고, 부담주지 않으면서 용기를 붇돋아 줄수 있는 말. 그 말 중에서 '힘 내~' 이 말은 제외해야겠다. 왜? '힘내라는 말은 흔하니까'





저자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광숙씨다. 인터넷 방송에서 DJ를 하기도 했고, 웹진 <줌마네> 편집장을 거쳐 다양한 매체에서 글쓰기를 하고있다. 어느 순간 사진의 매력에 빠져 요즘은 글쓰기와 사진을 병행하고 있다. 소광숙씨에게는 딸이 둘 있다. 큰 딸 채은이, 작은 딸 채영이. 이 책은 고3 수험생이 된 작은딸 채영이의 1년이 사진과 함께, 글로서 고스란이 담겨있다. 고3 채영이 뿐만아니라 고3 수험생을 둔 가족이 겪게되는 일상과 심리가 통째로 담겨있다.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하고, 건들면 터지는 핵폭탄같은 수험생 가족의 생활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흥미진진하고, 또 공부에 신경 안쓴다고 호되게 나무라서 펑펑 우는 딸을 앞에두고 '이 모습을 사진 찍어,말어' 하고 고민하는 저자의 모습에 빵 터졌다. 나 역시 두 딸을 둔 아빠이고, 언젠가는 저자처럼 고3 수험생의 부모가 될 터이다. 그때가 언제쯤일까~ 큰애가 초등학교 1학년이니 약 10년후쯤? 그때 내모습, 우리 가족의 모습을 미리 경험해 볼수 있는 기회가 될것도 같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엄마의 결심과 노력, 끈기 외에도 피대상자인 딸 채영이의 양해와 협조도 큰 몫을 했다. 생각해보면 전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꾸미지 않은 생얼과 생일상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집이 공개된다는데 마냥 동의하고 협조하기만은 어려운 일 아니었을까?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1년간의 수험생 시간과 더불어 꿈을 찾아가는 엄마의 사진과 글쓰기 시도도 존중해주는 모습속에서 대견함을 볼수 있었다. 덕분에 대입 합격이라는 달콤한 열매도, 자신만의 글과 사진으로 번듯한 수험생 학부모 일기를 펴낸 엄마의 성취감도 함께 얻을수 있었다.






그냥 매일같이 일기 쓰는것도 어려운 일인데 1년동안 수험생을 돌보며 써내려간 일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도중에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도 강했을 터이다. 


"부모의 삶도 아이들의 삶도 원하는 것을 하는게 아니라 그저 해야만 하는 것을 하는걸까? 어쩌면 이게 아닐지도 모른다. 더 높이, 더 높은 곳으로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게 사는 일인가?" 이런 마음에 기분이 처져있는데 큰 딸 채은이가 무슨일이 있냐면서 자기에게 털어 놓으라고 한다. 마치 내 언니라도 되는 듯 의젓하게 굴었다. "채은아,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의 문제는 집착에 있는것 같아. 집착 하나만 내려놓으면 되는데 왜 이러고 사는걸까? 모든걸 내려놓고 싶어. 살면서 무언가를 더 많이 갖고 싶었던 거,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던 마음, 너무 아웅다웅 살았던 것 같아.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마음 편히 살고 싶어." 딸은 다 알아듣겠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난 은근히 위로 섞인 말을 기다렸다. "엄마, 다 좋은데, 그래도 채영이 대학은 보내고 그렇게 해."  

채은이는 이제 슬슬 날이 더워지면 고3 아이들이 지쳐가는데 엄마까지 힘 빼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야단을 부렸단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가 어떤 엄만데, 이러다 내일이면 힘내서 또 씩씩하게 잘할걸?"하며 슬쩍 띄워준다. "내가 네 자식이냐?"

 
< 채은이가 어렸을땐 내가 없으면 아이가 어떻게 되는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채은이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될 것만 같
다>




<새벽 1시 40분. 독서실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중략)... 눈은 거의 반쯤 감겨 있는 채로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나는 힘드냐는 말을 건네려다 그만두었다. 당연히 힘들거고, 엎드려 잤을 테고, 배가 고플 것이 뻔했다. 아이에게 건넬 말이 뭐 좀 없을까 생각하다가 만날 하는 말이라곤 "배고프지? 힘들지? 잘래? 공부안해?"뿐이다. 이런 말 말고 근사한 말 어디 없을까?>





엄마와 딸 사이에서만 가능한 대화도 있다. 모든 집에서 이럴거라곤 생각할 수 없지만...
"엄마, 아빠가 엄마의 첫사랑이야?" "아마도..." "뭘 아마도야. 아니면서." "엄마는 어제 처음 해봤어?" "글쎄...꼭 말해야 해? 노코멘트야." "뭘 노코멘트야. 말 안해도 다 알아." 한참 이성에 관심 많을 시기, 사랑과 성에 대해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건전한 이성관을 가질수 있게 도와주는 몫도 엄마의 역할이다. 나중에 첫경험을 할 장소를 상상하며 나누는 엄마와 딸의 이런 대화는 아무리 딸바보 아빠라 한들, 그리고 아빠라면 죽고 못사는 딸이라 한들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어떤 아이가 공부는 엄청 잘했는데 외모가 좀 그랬나봐. Y대하고 K대는 이미 합격하고 S대 합격을 기다리는 중이었대. 그러다가 양악수술을 받았는데 문제가 생겨서 죽었대. 의료사고였다지 아마."

'대학입시에서 벌써 두군데나,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마 오래전부터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성형수술을 할거라고 기대하고 들떠있었을 거야.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입학전에 수술을 했겠지..'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같은 학교 후배들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깝다고 했거나 슬프다고 했겠지 뭐."
"아냐. 그 언니 덕분에 Y대하고 K대에 떨어질 애 한 명 붙었겠다고 하면서 합격했을 그 누군가가 정말 부럽다고 그랬대."
"....."
"우리반에 친구 한명이 있는데 걔가 수능 모의고사 2,3등급 정도 나오거든. 그런데 얼마전 전국에서 1등급 받는 애들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아, 무서운 세상이야."
11월 3일, 수능을 한달하고 일주일 남겨둔 날의 대화 내용이다. 일기 제목은 <무서운 세상>.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책은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대학에 합격했다고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정말 중요한건 인생의 마지막에서 내 삶이 해피엔딩이었을까? 하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겠지.. 위에서 잠깐 언급한 이야기속 주인공처럼 대학에 합격하고 성형수술 하다가 의료사고로 죽은 아이는,  대학 합격까지가 마지막이었다면 목표달성한 해피엔딩이라고 할수 있지만, 정말 해피엔딩은 아니지 않는가. 고군분투 대학에 합격한 채영이도 또 4년후 졸업을 앞두고 또다른 전투를 벌이고 있을터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말대신 어떤 말을 전해줘야 할지...




힘내라는 말은 흔하니까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소광숙
출판 : 오마이북 201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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