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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잊어서는 안될 항일투쟁사 '압록강 아리랑'

압록강 아리랑... 책 제목이 압록강 아리랑이다. 처음 제목과 표지를 봤을때 생각났던건 북한의 어려운 경제난으로 인해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몰려든 꽃제비, 또는 탈북자들의 애환을 그린 책이 아닐까 하는 거였다. 왜 그렇지 않은가. 아리랑~ 하면 기쁜과 희망, 환희보다는 슬픔과 한이 먼저 생각나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슬픔과 애환,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저자의 분노가 제목에 함축돼 있는건 맞았다. 반면 북한의 꽃제비와 탈북자 이야기일 거라는 추측은 틀렸다. 일본 식민 통치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목숨을 내놓고, 항일운동을 펼쳤던 무장독립운동사의 흔적을 되짚고 사료를 찾아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고있다. 그 시작은 신의주와 철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국경도시 단동에서 부터다.

 

사실 일제치하 36년간 '독립운동'이란 활동 자체도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엄연히 '독립전쟁'이 맞다고.. 이를 한낱 운동으로 폄하해 버렸고, 이를 지금도 우리는 당연한듯 사용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독립운동은 3.1운동과 같은 캠페인이 아니라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1945년에는 조선 본토로 진격작전을 펼 정도로 조직화된 또 하나의 전쟁사다.

 

대한독립청년단, 의성단, 대한독립단, 광복군, 신흥무관학교, 의열단,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 대한통의부,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 국민부, 조선혁명군 등 수많은 이름으로 집결해서 싸우고, 이뤄낸 통쾌한 결과물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그동안 무지했다. 그리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밖엔 아는게 없다. 신문지상에 독립군 후손들이 어렵게 살고있다는 기사를 볼때만 울분에 찬 척 했고,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산다는 기사를 볼때만 분개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중국 만주땅은 그 전체가 항일 독립투쟁사의 장이다. 가까운 단동시부터 멀리는 하일빈, 길림, 장춘까지. 파란 눈의 영국인이면서도 어느 의사 못지않게 독립운동 단체들을 후원하고, 지켜줬던 조지 쇼우란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됐고, 안중근, 윤봉길 등 밖에 알지 못했던 의사, 열사들도 그 폭을 넓히게 됐다. 정정화, 편강렬, 이명하, 함석은, 안경신, 오동진, 신팔균, 윤희순 등등등... 이제껏 알지 못했던 의사들의 활약상을 읽으면서 가슴 뿌듯했다. 특히 안경신 의사는 임신한 몸으로 국내작전에 투입되어 평양시청을 폭파하고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투옥됐다가 옥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키웠다고 하니 정말 상상하기 어렵다. 1920년 7월에 상해 임시정부는 오동진이 총영장으로 있던 광복군 총영에 지시하여 미국의회 의원단의 우리나라 방문에 맞춰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계획했다. 이에 안경신 장덕진, 박태열, 문일민은 평양으로, 정인복은 신의주로, 임용일, 이학필은 평안북도 선천으로, 김영철, 김최명, 김성택은 서울로 잠입해 들어왔다. 안경신 일행은 8월 3일 평양 관청과 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건물을 파괴하였고, 정인복도 신의주 정거장 부근 주요건물을 폭파했다. 임용일, 이학필은 선천읍내의 경찰서와 군청을 폭파하였는데 가장 핵심임무를 맡은 조인 서울팀이 거사 3일전에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서울 거사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위와같은 사례들이 수두룩하게 책에 실려있다. 다만 저자가 안타까워 했던 부분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똑같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이들인데 남과 북으로 갈려있다 보니 남한에서는 좌익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평가가 인색하거나 잘 알려져있지 않고, 북에서도 마찬가지로 우익계통의 독립운동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김일성을 비롯해 박헌영, 여운형같은 거물들과 위에서 언급한 안경신, 오동진, 박태열 같은 인물들이 모두 북에서 출생하고 자랐고, 거사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기록도 평양이나 신의주에 남아있다보니 자료발굴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동삼, 김좌진과 함께 무장 독립투쟁계의 3대 맹장으로 꼽히는 오동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3.1운동후 일본경찰에 쫒기던 오동진은 가족이 모두 만주 관전현 안자구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광제청년단'을 조직하고 활동하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결성에 참여했다. 점점 이름이 높아진 그는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군소 무장단체들의 연합체인 광복군 사령부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가장 높은자리인 광복군 총영장이 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진두지휘했다. 이어서 1922년 대한통의부 군사부장 겸 사령장, 1924년 정의부 군사부위원장 겸 총사령관, 1926년 고려혁명당에서 활동하다가 1927년 친일경찰 이성근과 김덕기에 의해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34년에는 복역중에 20년형으로 감형되었으나 조국의 광복을 눈앞에 둔 1944년 고문과 오랜 옥고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도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건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잡아들여 일본경찰에 넘기면서 살아왔던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여 군과 경찰, 경제계, 법조계에서 승승장구하며 사회지도층을 형성해 왔다는 점이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인, 경제인들,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중 상당수가 친일파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과거청산, 친일파 척결등의 말이 나올때마다 미래지향적, 화해와 용서, 국론분열등의 이유를 갖다대며 여론을 조작한다.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이들 독립운동가들과 단체들이 근거지를 형성하고 활동하였던 지역과 건물들이 중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만주땅까지 개발의 붐이 일어나면서 독립운동의 훼손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소중했던 독립운동사의 발자취들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유적지를 찾고 보존되도록 국비로 땅을 매입한다거나, 중국정부에 보호요청등을 해야할 우리 정부는 그런 노력에는 눈을 감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건물 하나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말해 무엇하랴. 이 책의 저자 최범산 작가의 노력도 입이 쩍 벌어질 일이다. 수없이 중국땅을 방문하고, 현지인들에게도 잊혀져 가는 항일역사의 흔적을 찾는 일에 모든것을 걸었다. 5년간의 노력과 희생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증언하는 귀한 사료가 될것이다.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압록강 아리랑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최범산
출판 : 달과소 201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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