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주 독서다! 모처럼 여유있는 주말을 맞아 널럴하게 책상에 앉아 맥주 한캔, 육포를 안주삼아 꺼내들고 책을 펼쳤다. 제목은 '은닉'.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뭔가를 숨긴다는 뜻인 은닉이란 제목과 체스판의 말을 형상화한 표지 디자인, 그리고 자~알 생긴 작가의 얼굴이 한데 어울려 이 책을 집어든 거다. 오랫만에 재밌는 소설 한편 읽으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데... 소설이 결코 가볍지가 않다. 어려운건 아닌데 난이하다.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난후 잠시동안 생각에 빠지게 됐다.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지금껏 쉽게 접하고 쉽게 읽었던 여느 소설과 달리 배명훈 작가가 쓴 이 소설은 어딘지 현실적이지 않고 남의 얘기 같으면서도 시선을 잡아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배명훈이라는 이 작가가 범상치 않은 작가였다.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한국의 SF문학의 떠오르는 신성이란 평가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이력이 소설과 쉽게 연관되어지지 않는 전공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수여. 국내 최고 대학에서 외교를 전공했던 학생이 별안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보니 그가 쓴 논문도 우수논문상을 받았다는 말도 있던데... 이쯤되면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 아닌가? 짬짬이 단편 소설에서는 얼굴을 비친 모양인데 이번 '은닉'으로 장편소설로 뛰어들었다. 게다가 추천사에는 영화감독 박찬욱이라는 이름도 보인다.
"소설 <은닉>은 '거짓'의 백과사전이다. 거짓의 온갖 양상이 망라된다. 대표적으로 '위장', 또 '허풍', 그 밖에 등재된 항목들 -없는 주제에 있는것처럼 꾸며 상대를 현혹시키기, 엄연히 있으면서 없는척하기, 있는지 없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불안하게 만드는 요령, 시늉, 연막, 연극, 성동격서, 은폐, 은신 및 변신, 미끼로 유인, 가면, 배신해놓고 시침떼기, 이중스파이, 함정, 꼭두각시, 매복, 위중, 칼을 숨긴 주머니, 음성변조, 억지웃음, 은근히 떠보기, 거울, 가상현실, 흥정, 환각, 조각난 진실의 몇가지 파편들, 소문, 꿈, 그리고 어쩌면 사랑. - 영화감독 박찬욱- "
이게 뭐야. 추천사가 오히려 소설보다 더 어렵다. ㅡㅡ;; 암튼 <은닉>이란 제목과 어울리게 인간의 어두운 면을 모두 꺼내 서로 물고 물리는 심리전을 펼치는 소설이라는 뜻이겠지. 소설을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은 나, 은경, 은수 세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또 단순하지가 않다. 세사람이 함축하고 있는 바가 무겁다. 재미는 있는데 그냥 쉽게 읽고 넘어가서는 안될것 같은 기분이다. 마치 공부하면서 읽어가야할것 같은... 아마도 첨부터 음주독서를 하는게 아니었나 보다...
이 책은 킬러들의 이야기다. 조직의 지시로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게 나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 일은 그저 일일 뿐이다. 그러다 나의 첫사랑 은경이 조직과 나 사이에서 꼬이게 됐다. 기계적으로 타켓을 제거해왔던 나도 이젠 은경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시대적 배경은 언제쯤일까? 추측하기론 2050년쯤? 2050년쯤 되면 소설에 등장하는 첨단과학이나 물리학이 현실이 될까? 복잡한 과학이 등장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실현불가능할것도 아닌것 같은 미래의 기술이 등장한다. 뇌파로 조종하는 초소형 비행기, 텔레파시, 콘택트렌즈로 뇌파를 조종하여 사람을 원격조종하는 기술... 우리 소설에서는 흔히 다루지 않았던 킬러를 소재로 한 미스테리 소설인데다가 위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듣도보도 못한 SF과학이 총망라된 소설이다. 따라서 이게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게 잘 적응이 안된다. 기술좋은 헐리우드에서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들여 영화로 만들면 흥행에 성공할 법도 한 스토리다. 물론 약점도 있다. 그중 최고는.... 어렵다는거. 개연성도 부족하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그럼 최악의 소설 아니냐고 물어볼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엄청 대박 소설은 아닌데 한국에서 이런 류의 소설이 나온다는것도 신선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읽은 후 독자들의 반응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배명훈 작가의 단편 몇개 읽어보고 다시 한번 살펴보면 오늘과 또다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단단한 소규모 팬층도 존재하더라. 재밌으면서도 어려웠던 소설 '은닉'. 읽지는 않더라도 배명훈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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