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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강풀원작 - 살인마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모두가 이웃사람

어제 하루종일 인터넷과 매스컴에서는 나주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 새로운 글들이 끊이질 않았다. 바로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부모가 있는 집에서 밤에 잠을 자다 마치 보쌈이라도 당하듯 이불째 들쳐매고 납치당해 쏟아지는 폭우속에서 성폭행 당하고 버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왜 문단속도 하지않고 잠을 자느냐,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새벽에 게임하러 PC방에 다닐수 있느냐 하는 불편한 댓글들도 눈에 띄지만 이 사건에서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잠에서 깬 아이가 살려달라고 소리치자 "삼촌이야. 괜찮아" 하면서 끌고갔다고 한다. 실제 이 범인은 피해자 집과 한동네에 사는 '이웃사람'이었다. 


신문을 보다보면, 뉴스를 보다보면 간간이 들려오는 비극적인 살인사건, 또는 성폭행 사건들중 상당수가 가까운 이웃사람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층간소음때문에, 빨래건조대 사용하는 문제 때문에, 시끄러운 애완견을 둘러싼 다툼때문에 티격태격 하다가도 느닷없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풀 원작 만화 '이웃사람'이 김휘 감독, 김윤진, 마동석, 천호진, 김새론, 임하룡 등을 캐스팅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했다. 이 작품은 강산 멘션에 살고있는 이웃사람들의 얘기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치고, 지나치는 이웃들중 살인마도 있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알면서도 숨기는 사람도 있고, 사건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위는 영화 포스터, 아래는 원작 만화의 표지. 사람들의 표정마다 뭔가 비밀을 안고있는 음습한 분위기를 풍긴다. 원작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강풀의 만화를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놀랄만한 스토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작화 실력은 안습이다. ㅠ.ㅠ  화려하고 현란한 요즘 만화가들의 그림을 보다가 강풀의 만화를 보면 마치 한글을 막 뗀 유치원생의 필체가 연상된다. 



김윤진을 제외하면 크게 빅스타가 출연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워낙에 유명한 원작을 영화화 한데다 요즘 이웃들간의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 탓에 관객들의 주목을 끌만한 영화다. 하지만 이해가 안되는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도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도 아니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연쇄살인과 뒷처리 과정에서 다소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런점을 뛰어넘어 안전불감증을 경고하고,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하다. 나 같으면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고 싶기까지 하던데...


      


일주일전 살해당한 딸이 일주일째 같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딸의 귀신을 못견디게 두려워하는 새엄마. 이처럼 영화 '이웃사람'은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로 시작했다가 이내 하드고어 스릴러로 진행되고, 마지막에 다시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로 끝이난다. 하지만 원작에서 죽은 딸의 귀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그다지 큰 비중이 없다. 귀신이 무섭게 그려지는게 아니라 그 귀신을 통해 모녀간의 오해가 풀리고, 이웃간에 마음을 열게되는 매개체로 활용이 되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다시말해 이 영화에서 귀신은 무섭다기보다 안쓰럽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그런 존재다. 그런데 엔딩씬에서 느닷없이 범인이, 자신이 죽인 여중생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설정은 다소 황당하게 다가온다.


상식적으로 자신이 죽인 여중생이 밤마다 되살아나 살해당한 지하실에서 걸어나와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그 옆에서 그 모습을 매일같이 보게된다면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극도의 공포심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수 없어야 맞다. 그런데 영화에서 살인마는 여중생을 살해한 후로도 끝없이 다음 희생자를 노리고, 알수없는 이유로 살인을 계속해 나간다. 전혀 두려움 없이. 그런데 엔딩씬에서 살인마가 귀신이 두려워 벌벌떤다는 설정은 와닿지가 않더라...또한 살인의 동기를 찾을수 없다는데서 또 당황스럽다. 살인마의 연쇄살인에는 어떤 동기가 있는건지, 왜 그토록 이웃들을 죽이려는건지 이유가 없다. 또 하나 천호진이 연기한 경비아저씨의 비밀스런 과거에 대한 설명도 부실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집중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는 탄탄한 원작의 구성과 감독의 연출에 그 이유가 있다. 자칫 느슨해지지 않게 두시간여동안 쉼없이 갈등구조를 만들고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끌고가서 관객들을 종착역에 내려놓는다. 그래서 영화는 재밌다. 그리고 우리 딸이기도 하고, 옆집 이웃이기도 한 여중생의 죽음에 한없이 미안해지고, 울컥하게 만든다. 특히 딸과 화해하고 미안한 맘을 전하면서 오열하는 김윤진의 연기는 너무나 슬펐고, 임하룡의 자연스런 가방가게 주인 연기는 깔맞춤이었다.




영화가 시작할때 죽은딸이 집에 오는 시간마다 십자가를 손에쥐고 겁에 질려하던 새엄마의 모습과 마침내 오해를 풀고, 이해하게 되면서  마치 살아있는 딸이 집에 돌아온것마냥 따뜻하게 맞아주고,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예전에 영화 '이끼'를 보고와서 원작과 비교해보고 싶어 원작 만화를 찾았더니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어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나 이번에도 원작 만화를 읽으려 했더니 그때와 다르게 이 작품은 유료로 서비스 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강풀 만화는 유독 영화화가 자주 되는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난 느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거... 

살면서 무슨 일 있기야 하겠어? 이런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는거... 

밤시간에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고, 위험한 환경은 스스로 피해야 한다는거...

이웃들과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는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낯익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믿지 마라고 가르쳐야 한다는거...  서글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