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얼핏 떠오른 생각은, 작가가 스무살 소녀 감성을 갖었다는 것이다. 실제 여성작가인가?하고 살펴봤는데 그렇진 않다. 2006년에 29이었다는 글이 살짝 들어있으니 35세, 의젓한 청년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예쁜 그림과 감성을 가졌단 말야? 다시 보게된다. <마음으로 읽고 그림으로 기억하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지혁이 쓴 독서감상문이다. 주옥같은 30편의 도서들을 읽고 느낀 솔직한 감상을 자신이 그린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참 인상적이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마음으로 읽고 그림으로 기억하다'일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김지혁 일러스트레이터의 팬층이 상당이 두터웠다. 이 책 뿐만아니라 여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작가들의 책에 일러스트를 맡는다던지, 문화센터 등에서 강연을 한다든지 하면서 남긴 그림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감정 충만한, 소녀 감성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이 알려졌다. 재능이 다양하기도 하지, 그렇게 부러운 그림솜씨에 덧붙여 이번엔 서평책까지 내놨으니~
그림과 함께 소개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재밌는 대목 하나! '어린왕자'에 관한 서평에 등장하는 얘기다. 원작에서 어린왕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보여주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리고는 어린왕자가 설명을 해줘도 쉽게 수긍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이번 일러스트를 준비하면서 평소에 궁금해했고,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실험(?)이 있어서 어린왕자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놓고, 맑고 밝고,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고, 때묻지 않은(ㅡㅡ;) 친구 아들 녀석들과 조카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고~ "이게 모자지 어떻게 뱀이에요?" 요즘 어린이들이 셍텍쥐베리 시절의 세속에 찌든 어른들을 닮아가는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백이면 백 모자로 보이는걸 어린왕자가 극구 뱀이라고 억지를 부린건지~~ 그래서 저자는 어린 친구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했단다. 책과는 반대로 ^^ 관련 일러스트가 있으면 올리려 했는데 안타깝게 보아뱀 일러스트는 없었다.
이번엔 가장 공감갔던 대목 하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서평이다. 저자의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으셨고 어릴때부터 많은 책과 접할수 있게 세계문학전집류를 많이 사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재미를 느끼고 빠져서 봤던 책들은 만화책 아니면 <톰 소여의 모험>, <15소년 표류기>, <파브르 곤충기>와 같은 책이었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같은 작가들의 책은 재미없고 따분하기 이를데 없었고, 어떻게 이런 작가들이 세계문학의 거장이라고 추앙받는지 이해할수 없었다고... 그 때문에 이후 학창시절 내내 '러시아 작가들은 세상에서 제일 따분한 존재야' '고전문학은 지금 시대에 읽기엔 너무 구식이야' 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 스무살때 우연히 읽게된 <죄와 벌>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무려 1,500 페이지에 이르는 깨알같은 원작소설을 단숨에 읽게 되었다. 이후로 <죄와 벌>은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됐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읽는동안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가빠지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에 숨소리조차 낼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단다.
그런데 왜 어려서 읽었던 <죄와 벌>은 그렇게 밋밋하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을까? 그때는 너무 어렸으니까~ 라고 흔히들 생각하기 쉽다. 이런 문학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진가를 알아볼수 없었을거라고.. 그런데 저자는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때 읽었던 <죄와 벌>이 '어린이용'으로 나온 번역본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완역판이 아닌 소설은 '가짜'라고 말해도 좋을만큼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버린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같을뿐 원작을 쉽게 풀어쓰고, 1,500페이지 분량을 아이들이 읽기 쉽게 150페이지 분량으로 압축시켜 버렸으니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버렸다는 거다. 이같은 대표적인 경우가 흔히 '장발장'으로 불리는 <레미제라블> 이란다. - 원작과 번역본이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 대부분의 어린이 문학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왜 꼭 그래야만 하나. 어렵고 너무 길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작품을 접해줄게 아니라 아이때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어린이 문학을 접해주고, 성인이 되갈때 비로소 명작 고전문학을 접해주는게 훨씬 낫지 않을까?
이상은 김지혁 작가의 의견이고, 전적으로 동감하는 내 의견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유치원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를 바라보는 내 시각도 우호적이지 않다. 성경의 구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로마신화는 자세히 뜯어보면 내용이 너무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비윤리적인 글들로 가득하다. 어느정도 옳고 그름의 가치관을 형성한 이후에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천태만상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대변하며 여러 파생문학,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고, 교훈을 얻기도 하겠지만,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유치원생들에게 아들을 잡아먹는 아버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하는 아들, 근친상간, 동성애, 성폭행, 혼외정사 등의 비도덕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신화를 접해주면서 뭘 얻어내려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 일종의 유행같다. 그리스 로마신화가 붐을 일으키고 유행을 타니 다양한 버젼으로 춣판되고, 내용을 순화시켜 어린이용으로도 나오게 된것이다. 다 적당한 시기가 있다. 뭐든 앞서려고 욕심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책은.
이처럼 진솔하면서도 섬세한 독서 감상문을 이렇게 예쁜 그림들과 함께 풀어놓은 <마음으로 읽고 그림으로 기억하다>. 간혹 블로그에 책 리뷰 글을 올리다보면 적지않은 독자들이 "독서는 하고싶은데 맘처럼 되지가 않아요",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문의를 해오고는 한다. 그럴때 내 대답은 한결같이 베스트셀러나 그럴듯한 책을 고르지말고,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제일 쉬운 책을 골라라고 조언한다. 독서의 초보자가 아니라 중급 이상자라면 그런 대답대신 이 책을 참고하면 되겠다. 이 책을 보고 여기에 나온 명작들을 저자 김지혁의 감상을 참고삼아 읽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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