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본영화,읽은책

탱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아르헨티나

뜻하지 않게 읽게되는 책 중에서 보석같은 책을 발견하곤 한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우연히 접한 책을 통해 어느새 갑자기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 얼마전 읽었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가 그러했고, 오늘 읽은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랬다. 아프리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진짜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사람도,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 책속에는 내가 모르던 아니 정확히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관심했던 아프리카의 불편한 진실이 들어있었다. 괜시리 아프리카인들에게 미안해지는 불편함.. 그리고 이번에 읽게된 탱고 이야기는 또 어떤가!

 

사실 아프리카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듯 탱고라는 춤, 음악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반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탱고하면 춤을 떠올렸고, 남녀가 밀착되어 특유의 격렬한 음악에 맞춰 고난이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댄스, 그게 내가 알고있는 탱고의 전부였다. 이 춤이 어느 나라 춤이고, 어디에서 유래됐고, 동작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지.. 관심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저자 박종호의 글이 자칫 조금이라도 지루했더라면, 혹은 탱고를 설명하는 딱딱한 강의식이었다면 이 책은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을터이다. 그런데 별 기대도 않고 한번 둘러보겠다고 펼친 책을, 3일동안 끝까지 읽고 말았다. 내가, 탱고를 다룬 책을 말이다..  ㅡㅡ;  그리고 한번도 일부러 듣지 않았던 탱고 음악을, 지금 들으면서 글을 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들 한번쯤은 들어본 도시 이름일 것이다. 왠지 낭만적이다. 정열의 대륙 남미,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수도다. 또한 저자 박종호가 2주간 여행하며 탱고의 발자취를 더듬어간 도시이기도 하다. 바로 탱고의 발원지다. 탱고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저자가 탱고에 대한 자료를 찾고자 검색해봤는데 놀랍게도 2008년 당시에 국내에 탱고 관련 서적이 단 한권도 없었다고 한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미 탱고 열풍이 불어 수많은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결국 일본에서 출간된 책들을 읽다가 어느 여류 소설가가 탱고에 꽂혀서(!) 무작정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건너가 2주일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그 2주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을 읽게됐다. 그리고는 용기를 냈다. 그토록 매혹적인 탱고라면 그녀가 했던 그대로 따라하며 나도 영감을 얻어보자~ 이런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났다. 일본의 여류소설가가 묵었던 호텡과 같은 곳을 예약하고, 그녀가 했던 여정을 똑같이 답습하며 2주일을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가 소설을 냈듯 저자는 이 책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쓰게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렇게도 먼 곳이었나? 비행시간만 24시간이 넘는다니! 서울에서 애틀랜타까지 13시간, 다시 애틀랜타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11시간을 비행했다. 상상만해도... 게다가 시차는 정확히 12시간 차란다. 그래서 시계를 재셋팅할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계절도 정반대. 서울은 9월이라 여름의 끝무렵이고 가을이 시작될 시기였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3월의 날씨,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무렵이었다. 이역만리 떨어진 남반구의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저자의 탱고를 느끼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당연히 다들 모르시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v) 탱고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시는가?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신흥 국가로 풍부한 농수산물을 유럽 각지로 수출하며 성장한 나라였다. 따라서 유럽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바다를 건너온 하층민들이 부둣가 도시 라 보카에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은 부두 노동자, 조선소 노동자로 일했는데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폴란드에서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개 가족을 남겨두고 돈을 벌어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왔지만 고된 일과에도 쉽게 돈을 벌어 빈곤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이민생활이 길어지고 라 보카 지역은 빈민촌이 형성되었고, 이들의 외로움은 자연스레 술집과 창녀촌이 발달하게 되었다. 육체적인 외로움은 창녀를 돈으로 사면서 그순간 위로가 되었겠지만 정신적인 외로움은 해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외로움을 가진 남자들끼리, 춤과 노래로 표현하게 된 것이 탱고의 시작이다. 지금의 탱고는 정열적인 남녀의 댄스로 발전했지만, 탱고의 기원은 길고긴 이민생활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달래고자 남자들끼리 시작한 슬픈 노랫말과 춤이었다.

 

 

탱고의 기원부터 발전과정, 그리고 변화와 유행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는 저자의 여행기 형식의 글 속에서 다 들어있다. 뿐만아니라 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어 아르헨티나에 관한 이야기도 읽을거리가 충만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어딜가나 세명의 동상을 쉽게 볼수 있다고 한다. 최고의 탱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 애칭 에비타라고 불리는 에바 페론, 그리고 축구황제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탱고의 기원지는 라 보카와 산 텔모 지역이다. 저자가 묵었던 라 보카에는 어딜가나 수많은 탱고 클럽, 카바레들이 성업하고 있고, 거리에서 탱고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뜨내기 여행객들의 지갑을 노린 소위 '선수'들이란다.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히고 팁을 받는 직업꾼들.

 

 

아르헨티나 빈민촌에서 시작된 탱고는 발전을 거듭하여 유럽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정작 아르헨티나의 부자들이나 중산층들은 탱고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런데 탱고가 새로운 문화로 프랑스 파리에서 큰 인기를 끌며 상류층의 사랑을 받게되자, 파리에서 건너온 것이라면 양재물도 마신다는(!) 아르헨티나 상류층이 그제서야 탱고를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의 탱고는 여러 과정을 거쳐 초기의 탱고와는 다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탱고라고 하면 춤만 생각하지만 춤 이전에 노래와 음악이 먼저 시작됐고, 춤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문화로 보는것이 옳을것 같다.

 

전혀 관심도 없던 탱고에 대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호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쯤에서 탱고 음악을 한번 들어보고도 싶다. 그렇지만 탱고 음악이 나한테 있을리가 만무하고, 그렇다고 한번 들으려고 탱고 씨디를 사기에도 좀 그렇다. 그런데 이게 왠 보너스인가! 책 후면에 미니 씨디가 동봉되어 있다. 바로 아르헨티나 3대성인으로 추앙받는 -좀전에 위에서 언급했다. 카를로스 가르델, 에바 페론, 디에고 마라도나- 최고의 탱고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이 부른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귀향', '포르우나 카베사' 이렇게 세 곡이 들어있다. 그래서 포스팅 서두에 내 평생 처음으로 탱고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

 

 

워낙에 몸치이자 춤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끼가 흐르고 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나서 탱고를 배워보고 싶은 열망에 휩싸일수도 있겠다. 탱고는 정열의 춤이다. 보통 3분에서 길어야 5분 내외다. 그 시간동안 남녀는 함께 몸을 밀착하고, 서로를 탐하면서 열정적인 춤을 추지만, 곡이 끝나면 이들은 헤어지고 새로운 파트너와 새로운 춤을 춘다.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은 3분이다. 그래서 맘에 드는 이성에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춤이 탱고다.. 또 탱고는 상체보다 하체 위주의 춤이다. 상체는 남녀가 완전히 밀착되어 있기에 움직일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춤을 추는 동안 남녀의 상체가 떨어지는 순간은 여성이 턴을 할때 잠시뿐이다. 그것도 턴이 끝나면 남성은 여성의 허리를 감고 다시 강하게 뜰어당겨 상체를 밀착시킨다. 그래서 하체의 움직임이 발달할수 밖에 없다. 장국영, 양조위가 주연한 영화 '해피투게더'의 배경이 된 탱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떤가. 갑자기 탱고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내도서>여행
저자 : 박종호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12.04.23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