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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한국천주교의 박해사 '조선이 버린 사람들'

얼핏 역사소설이라고 집어든 분들도 있을터이다. 하지만 역사 팩션소설의 인기작가 이수광의 이번 작품은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 논픽션이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소현세자 독살사건>, <조선명탐정 정약용>, <이토록 아찔한 경성> 등 인기소설을 펴낸 작가인 이수광은 이번 작품에서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등을 통한 한국 천주교회사를 고찰하고 있다. 조선말기 4대박해 과정에서 수천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했고 이들중에서 분명한 기록이 남아있거나, 증언의 신빙성이 인정되는등 교회법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의 사례를 증거함과 동시에 정조시대 이후 세도정치하에서 자행된 당파싸움과 쇄국정책의 희생양인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독교 국가다. 흔히들 기독교와 개신교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는 크리스트교 즉, 예수님을 믿는 종교를 말한다. 이는 가톨릭으로 대표되는데 중세 유럽에서 부패한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단행한 이후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뿌리는 같은데 두 집안으로 분리된 셈이다. 이후 가톨릭계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잘못된 교회역사에 대해 사과하고 낮은 자세로 오늘까지 임해오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는 공격적인 전도방식과 독선으로 개신교가 지탄을 받고있어 대조적인 모습이다.

 

세계역사상 한국의 가톨릭은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전래되었다. 보통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총과 칼을 앞세운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식민지배전략의 일환으로 가톨릭이 전래된데 반해, 한국은 외세의 위협없이 서학이라는 학문연구를 통해 자생적으로 종교가 받아들여졌다. 조선 중기이후 남인들이 주축이 된 실학파들은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을 통해 발전된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고, 이와함께 천주교 서적들이 국내로 유입됐는데 이를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레 서학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원론적인 철학적 사고에서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사농공상과 같은 신분서열, 양반과 천민의 신분계급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서학과 가톨릭 교리는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벽,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등은 마태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와 가톨릭 서책을 보고 교리를 연구하다 서학을 학문에서 신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1770년 성호 이익의 제자였던 홍유한이 천주교 책을 통해 천주교의 사상에 감명을 받고 주일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을 안식일로 정해 일을 하지않고 경건하게 보냈다고 전해진다. 무려 13년동안 백산에 숨어 살면서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하니 체계적인 교리공부도 받지 않고, 신부님을 만나지도 않은채 독학으로 오늘날 신자들과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은 한국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처음에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시작됐다. 영조의 지원을 등에업고 정국을 장악한 노론세력을 견제하고자 정조는 실학을 강조하는 남인을 중용했는데, 이때문에 천주교의 교세가 커질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을 실시한 정순왕후는 다시 노론과 손을 잡았는데 노론세력은 남인을 축출하고자 천주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신유박해, 기해박해를 거쳐 고종시절 대원군이 편 병인박해는 가장 피해가 심했는데, 당시 국제정세는 유일한 대국으로 믿고있던 청나라가 아편전쟁등에 패해 영국과 프랑스에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영불 연합군이 북경까지 침공해 청나라 황제가 피난을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러시아가 두만강을 넘어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등이 통상을 요구하며 자주 조선 연안에 침몰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대원군은 국내에 천주교 신자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전복하려 한다는 불안감을 갖고있었고, 쇄국정책과 맞물려 대대적인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다.

 

천주교인들은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살인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배교하지 않으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수많은 신자들이 살려준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순교를 택했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하느님에 부끄러운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믿음과 신념의 표출이었다. 보통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집안 모두가 교인들인 경우도 많았고, 또는 마을 전체가 교인인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경우는 한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 박해때는 망나니들이 목을 베는 처형방법으로 진행됐는데, 수천명의 교인들이 처형장에 나오자 나중에는 여럿을 밧줄에 묶어 수장시킨다거나,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 하는 식의 처형방법도 등장한다. 이런 끔찍한 사례들은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신부들을 통해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병인박해때는 국내에서 활동하던 아홉명의 프랑스인 신부들중 여섯명이 순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병인양요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신자이면서도 이들 순교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너무 어렵기만 하다. 과연 목숨을 내던질만큼 확고한 내세에 대한 신념이 나에게는 있을까? 변변한 교육이나, 전례도 없던 이 시기에 무엇이 이들을 깊은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주일 미사를 드리고,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했을까? 종교활동이라곤 일요일 아침 유일하게 미사 참석하는것 밖에 없으면서도 그것도 시시때때로 귀찮은 마음이 앞서는데 말이다. 천주교인들은 꼭 읽어야할 종교서이자,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선말기 시대와 정치적인 상황에 흥미를 느낄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