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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화제의 인기작가 최문정의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요즘 화제의 작가 하면 단연 최문정을 들수 있다. <바보 엄마>가 SBS 주말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책 역시 베스트셀러로 뜨고 있다. 3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숙명적인 여자 이야기가 여성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살짝 소외된 남성 독자들의 마음을 읽었을까? 곧바로 <아빠의 별>이란 작품을 내놓았다. 발레리나 딸과, 직업군인 아빠, 사랑하면서도 그 표현이 서툴렀던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어졌던 딸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 역시 이 땅의 수많은 딸바보 아빠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있다. 그런데 마치 무명에서 스타가 된걸 확인이라도 하듯 또 다른 신작이 출간됐다. 이번에는 로맨스, 가족소설이 아니라 역사 팩션소설이다. 작년 겨울 <바보 엄마>의 개정증보판이 출간된 이후 반년만에 세번째 소설이니 새로운 다작 작가의 리스트에 올라가려는가? 그런데 잘 살펴보니 대부분이 전에 출간했던 작품들을 각색해서 재출간하는 작품들이다. 이 책 <태양의 여신>도 2006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란 제목으로 발표했던 작품이었다.

 

 

이 책은 역사 팩션 소설이다. 팩션소설, 많이 들어보셨을거다. 영어로 fact와 fiction이 결합된 신조어다. 사실과 허구가 결합된 소설.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면서 거기다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스토리를 덧칠한 작품들을 분류하는 용어다. 대부분 소설들이 처음부터 허구로 시작되는 반면 팩션소설은 모두가 알고있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햇갈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왠지 논픽션 같은 분위기에 더 빠져들게 하는 매력도 가지고 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한국에 팩션소설의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할수 있겠다. 또한 최근 몇년간 사극 열풍을 일으켰던 <성균관 스캔들>,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등의 작품들이 모두 역사 팩션이다. 최문정 작가의 신작 <태양의 여신> 역시 역사소설이면서 팩션소설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역사를 다루고 있는게 아니라 일본역사가 소설의 배경이다. 일본인들이 태양신이라고 추앙하고 있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히미코가 백제에서 건너간 한국인이라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그런데 살짝 불편한 점도 있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인 히미코가 백제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백제인임을 알면서도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히미코에게 살짝 반감도 든다. 백제의 감로국(속국)이던 일본의 독립을 위해 백제 왕자와의 사랑도 배신한채 백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결국 백제를 이겨 독립을 쟁취해 낸다는 스토리. 거기다 스스로를 태양의 여신이라 칭하고, 일본 백성들을 극진히 사랑하여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여왕으로 묘사된다. 일본 백성들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백제를 일본땅에서 몰아낸다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은 히미코를 위해 사랑도 접고, 목숨마저 내놓으며 그녀를 위해 희생한다. 차라리 그렇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라도 히미코가 스스로 백제계임을 알리고 백제와 다시 화친한다거나 천황가가 사실은 백제계에서 유래되었다거나 하는 식의 언질이라도 줬다면,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재밌게 읽었는데 "뭐야, 그러니까 작가가 일본인도 아닌데 왜 일본의 시각으로 소설을 썼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역사소설은 특히 쓰기 어려운 장르다. 일단 역사소설을 쓰기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기때문에 수십권이 넘는 사서들을 섭렵해야 하는데, 특히 삼국시대 같은 우리나라 역사는 삼국사기에만 치우쳐 있기에 같은 시기를 서술한 중국사서와 일본서기들을 비교하며 공부해야 하는 작업이 따른다. 그러기에 남성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그런데 최문정 작가는 여성작가면서 이 금기를 깼다. 거기에 더 나아가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 일본의 역사에 대해 심층적인 공부를 통해 <태양의 여신>을 집필해 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또한 역사소설들이 주로 전쟁사에 치우친 반면, 최문정의 역사소설에서는 전쟁과 함께 남녀 주인공들의 감각적인 로맨스가 추가되어 있다. 아가페적인 사랑,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절대적인 헌신, 이런 면 때문에 역사를 싫어하는 여성독자들까지 매료시킬만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앞서 팩션소설이라고 했던 이 작품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일까? 일본 건국신화를 보다보면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는듯 하다. 상당히 유사하다.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줏대없고, 철없는 인간과 신의 중간적인 단계의 신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중에 하나인 태양의 신, 그리고 여러 궁중 의식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거기까지다. 그것 말고는 전부 허구거나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각종 역사적 설들을 인용했다.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일본에서는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공물로 바쳤다고 주장한다) 칠지도가 소설에서는 히미코를 사랑하는 백제왕자가 징표로 선물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참고로 우리 역사학자들은 고대 왜나라는 백제의 실질적 통제하에 있던 속국이었다는 설이 많고, 반대로 일본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을 근거로 고구려를 제외한 한반도 이남의 백제, 신라, 가야국들이 모두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최문정 작가의 역사 팩션소설, 그것도 특이하게 일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태양의 여신>은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남자라면 절대 공감하지 못할, 여자라면 평생 로망으로 품고갈 그런 사랑이야기를...

 

태양의 여신 1
국내도서>소설
저자 : 최문정
출판 : 다차원북스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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