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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개념으로 똘똘 뭉친 20대 대학생이 쓴 '개념찬 청춘'

 

음... 잘 읽었다. 기대 이상이다. 이 책은 정치서로 분류할수 있겠다. 흔히 개혁성향의 야당 지지자들이 선거때만 되면 2,30대의 투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선거결과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2,30대 투표율에서 찾고 있는걸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다들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걸까? 놀랍게도 저자가 다니는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에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의 지지도를 묻는 설문 조사를 벌인적이 있는데 응답자의 절반이 이명박을 지지했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중에서 또 절반이 박근혜를, 그리고 소수 의견으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이 나왔다. 어른들이 보기에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저자 조윤호는 현재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대학생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이고, 사회를 바꾸려 투쟁해야 할 20대가 정작 가장 무관심하고, 소극적인 양상을 보인다고 나무라는 기성세대들에게 20대를 대변하고 있고, 정치에 무관심한 또래 20대 청춘들에게는 자신의 신념과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정치란 특별한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독립적인 한 분야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생활하고, 소비하고, 공부하고, 취업 걱정하는 모든것들이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알리고 정치적인 사람이 되자고 설득하고 있다. 그야말로 개념이 뿌리까지 가득 찬, 바람직한 청년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대학생이, 처음으로 쓴 책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논리 정연할 뿐 아니라 근대 정치상황을 꿰뚫고 있어서다. 왠만한 정치학자나 시사평론가를 능가하는 지식과 신념과 소신을 지녔다. 그것도 상당히 올바른 정치관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 저자가 처음으로 정치를 접하고,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2년 월드컵때였다고 한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고, 기뻐하고, 소리치고 하는 현장을 함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이후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저자는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광장에서 태어났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시간순으로 효순이 미선이 사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의 당선, 탄핵, 열린우리당의 몰락, 한미FTA,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광우병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차례로 거치면서 확립된 저자의 정치관과 소신, 신념을 설명하고, 자신의 신념을 독자들에게 설득한다. 매 단락의 글을 읽으면서 감명 받았다. 이 어린 청년이, 아니 소년이 어쩜 그렇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또 용기있게 광장에 나가 자기의 신념을 외칠수 있었을까 하는 경외감까지 느꼈다. 그리고 또 설득 당하게 됐다. 그도 그럴것이 정치라는것에 눈을 떳다는 2002년 월드컵때 저자의 나이 14세,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광장에서 집회에 참여했던게 16세,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때가 20세였으니 말이다.

 

월드컵때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정치에 눈을 떳다면, 실제 소신을 갖고 참여하면서, 불의에 맞서기 시작한 것은 두발 자유화 투쟁이었다고 했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두발과 복장에 규제를 가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하지만 학생답다는 전제 자체가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다. 학생의 본분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것인데, 머리가 단정하지 않고,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성적이 떨어지고, 겉돌게 되고, 결국 다른 학생에 피해를 주며, 본인도 불행한 삶을 살게된다~ 라는 거창한 공식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선생님들에 맞서 교육청 앞에서 시위도 하고, 학생들끼리 연합체를 만들어 토론과 홍보도 하고 했던게 본격적인 정치활동의 시작이었다.

 

저자의 정치성향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쪽에 가깝다. 아니 더 정확히는 기성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변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고, 실제 국민들을 대변하지 못할때, 4년을 기다려 선거로서 심판한다는건 너무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민주주의라는 생각이다.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서서, 광장에 나가서, 주장하고, 외치고, 국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다는걸 직접 알려야 한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 굳어진 간접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할땐 예전 초기 그리스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할수도 있지않는가 라는 주장도 편다. 그러면서 기존 기득권 층인 한나라당의 폐혜에 맞서,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고 국민의 뜻을 대변할거라고 기대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을 열렬이 지지했지만,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사업,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김선일씨 처형 방관등을 거치면서 노무현도 기득권층과 마찬가지로 농민,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한나라당과 다를게 없더라는 실망을 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지지를 철회하고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후 몰락했던 친노 진영이 부활하고, 한나라당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으로 현재의 민주통합당이 부각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야권 단일화가 절실한데, 한명숙으로의 단일화에 반대해서 끝까지 사퇴하지 않은 노회찬을 향한 야권의 비난을 이해할수 없다고 했다. 오세훈이 당선되느냐, 한명숙이 당선되느냐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어차피 한나라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진보라고 해서, 한나라당보다는 나을줄 알고 노무현도 지지하고 민주당도 지지했는데 겪어보니 똑같단다. 그래서 실망이란다. 그의 주장은 지금의 통합진보당, 옛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또는 급진 진보주의자의 주장과 일치한다.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상당히 어린 나이에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꽤 정확히 정치인들이나 정당의 활동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2000년대 이후다. 김대중 대통령때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시절이니 저자가 정치판을 알기는 힘들었을테고, 2002년 대선, 그리고 이후 노무현 정부때부터 본격적인 정치에 관심을 가졌을 터이다. 그리고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가졌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했으며, 서민과 농민 노동자의 사람다운 삶을 꿈꿔왔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품고 지지했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농민, 노동자, 서민의 편에 서지않고, 기득권층에 야합(?)하는 모습을 보고 지지를 거두고 비판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저자도 책에서 언급했다시피 한사람의 진보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수십년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언론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보수 기득권층의 국가구도를 바꿀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일시에 모든것을 뜯어 바꾸려고 해서도 안되는 거다.

 

저자가 보기에 차별없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미국의 눈치를 보지않는 자주적인 국가,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가난한 이들도 최저생계를 보장받는 복지국가가 전국민의 공통적인 최우선 가치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가치가 아니다. 집없는 서민들은 집값이 안정되어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반면, 집을 2~3채씩 가지고 있거나, 평생 어렵게 돈을 모아 내집마련을 한 사람들에게는 집값이 하늘높은줄 모르고 올라 소득이 증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쪽에선 고용안정으로 구조조정 걱정없이 안정된 직장생활을 영위하길 바라는 노동자들이 있지만, 또 반대편에서는 유연한 고용정책으로 가능하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시키고, 비정규직으로 꾸려나가야 제대로 기업을 운영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을 발전시켜 수도권의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모든 부와 자원을 서울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내놓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두루 다독여 함께 가는것이 대통령과 정치인, 국가가 할 일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좀더 중요한 쪽을 우선시해야 겠지만 말이다. 점진적인 개혁이 진행되어야지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하면 기득권층의 반발이 매섭다. 노무현 전대통령도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빨갱이다, 종북좌파다는 의혹을 받아야했고, 반대로 진보진영에서는 비개혁적이다, 보수적이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역대 정권과 비교했을때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정권이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때 노무현 전대통령은 최선을 다했다. 저자가 왜 행정권력(대통령)에 의회권력(열린우리당 과반의석)까지 진보진영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아놓고도 임기동안 제대로 된 개혁을 해내지 못했냐고 비난하지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거치면서 여당이 다수당으로 야당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부쳐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걸 얼마나 많이 봐오고, 분노하고, 좌절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열린우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가지고도 수많은 개혁입법들을 처리하지 못했다고, 날치기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폈다고해서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다 똑같다고 했지만, 정작 똑같았다면 개혁입법들은 모두 통과됐을 것이다. 똑같지 않고, 도덕성을 우선시했기에 소수 야당에 밀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그놈이 그놈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똑같다. 이런말들이 술김에 화가나서 내뱉을수는 있을지언정 제대로 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똑같단 말이냐... 그래서 다 똑같기에 서울시장에 한명숙이 되든, 오세훈이 되든 다 똑같단 말인가? 대통령이 노무현이 되든 이회창이 되든 다 똑같다는 말인가? 한국 민주세력들에게 천추의 한이 되는 사건중에 하나가 87년 대선시 김대중, 김영삼 후보단일화 실패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김대중이든, 김영삼이든 다 똑같으니 누가 되도 상관없다고 말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