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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이성계의 새로운 모습을 그린 '시골무사 이성계'

이성계를 모르는 우리 국민들은 없을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이성계에 대해 우리들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가~하는 반성이 앞선다. 이씨 조선의 창시자, 조국 고려를 배신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 최영, 정몽주등 수많은 충신들을 잔인하게 제거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것 같은 권력욕의 화신,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박정희, 전두환이 생각나 이성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려가 망해가는 나라였다느니, 기득권층이 부패해서 백성들의 삶이 피폐했다느니, 하는 말들은 그저 만들어내기 나름인 말들이다. 항상 힘으로 권력을 빼앗은 반란 수괴들은 백성, 서민, 국민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왔다. 박정희는 안그랬나, 전두환은 안그랬나... 역사가들이 뭐라고 하든 이성계는 반란의 수괴일 뿐이다. 그것도 그를 믿고 군사를 맡긴 고려왕조에 대한 배신이다. 훗날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골육상잔의 비극을 불러 일으키고, 생전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어떤 조치도 취할수 없던 이성계의 말년은 피눈물의 날들이었을 테고, 고려왕조를 멸망시킨 군사독재의 죄값을 치룬것이리라. 이렇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있던 터라 이 소설에 나온 인간적인 면모의 이성계의 모습은 다소 색다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고려왕조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무장의 모습이라기 보다, 고려에 충성을 다함에도 썩은 조정의 수구세력들에 의해 견제받고, 저평가되는 일개 시골무사로서의 이성계의 모습이다.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중원의 판도가 바뀌던 시기, 고려 또한 국운이 쇠하여 간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중앙 정치무대에서의 권력싸움, 백성들의 삶은 철저히 무시되고,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명나라의 압박과 남쪽으로부터는 왜구의 침입으로 위태위태하던 고려는 결국 시대적으로 새로운 강력한 군왕과 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바로 이성계가 그 일을 맡을 적임자였고. 소설은 이성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기에 이성계, 정도전을 신진 개혁세력으로, 정몽주나 최영, 변안열등은 꺼져가는 국운과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못하는 수구세력으로 등장시켰다.

 

고려말 빈번했던 왜구의 남해안 노략질은 그 규모나 폐혜가 조선시대 임진년 못지않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어떤 역사서에는 무려 5백여척의 함선이 상륙해서 성을 빼앗고, 백성들을 살육했다하니 아마도 지상군만도 수만에 이르렀을 터다. 그 왜구들은 최무선의 화포로 배가 부서지고,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지리산 근방에서 전멸됐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황산대첩은 실제 전라북도 남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왜장 아지발도와 싸우는 이성계의 활약상을 담고있다. 이성계는 황산싸움에서 아지발도와만 싸운게 아니었다. 고려를 감시하려는 원나라, 고려를 압박하려는 명나라, 이성계를 견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고려말 집권세력들과 모두 벌이는 싸움이었다. 스펙타클한 상황과 이 날의 전투신이 단 하루에 담겨있다.

 



정작 소설의 이야기보다도 관심이 갔던게 무명작가 서 권의 이야기다. 시골 여고 국어교사로 일하면서 7년의 세월을 거쳐 대하소설 '마적'을 집필했다. 그리고 이 책 '시골무사 이성계'를 쓴게 2009년이다. 아쉽게도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도 못하고 소설 탈고 뒷풀이후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뒤늦게 빛을 본 이 작품은 서권이란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첫작품이지만 습작같지 않고, 시공간적 배경활용이랄지, 작품이 주는 메시지랄지, 글을 풀어나가는 맛이 상당하다. 원,명,고려,왜 4개국의 외교전과 이성계의 야망을 황산싸움이라는 공간에서 하루라는 시간 안에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 아직 출간되진 못했지만 14권짜리 대하소설 '마적'은 또 어떤가. 전업작가가 아니라 교편을 잡고 여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변변한 작업실 하나없이 자신의 승용차에서, 집의 주방 식탁에 앉아서 소설을 써내려간 시간이 7년이라고 하니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욕심과 열정이 새삼 전해진다.

 

얼마전 전주 한옥마을에 들렀을때 경기전 이라는 유적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 가기전까지 경기전이 뭐한는 곳인지도 몰랐었다. 가서보니 조선을 세운 태조대왕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곳이었다. 그곳에서 접한 이성계의 초상은 친근하고 낯익은 모습이었다. 동기가 타당하든 아니든, 어쨋든 조선왕조 5백년을 개창한 인물이라고 존경받아야 하는걸까? 예나 지금이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수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인가 보다. 그나마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했다고 하는 전두환도 지갑속에 29만원만 넣고 다니면서도 초호화로운 노년을 만끽하며 살고있으니 말이다.

 
 

시골무사 이성계
국내도서>소설
저자 : 서권
출판 : 다산책방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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