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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제발~ 도와주고 싶어요!

우리집 설겆이는 항상 내가 한다. 신혼초에 설겆이를 열심히 도와주다 어느순간 자연스레 손을 놓게됐는데 근래 다시 시작했다. 밥 차리는건 쌈닭이, 치우는건 내가. 그래봤자 내가 집에서 차려준 밥을 먹는 횟수가 한달에 서너번이니 설겆이 하는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서 기쁜 마음으로 하고있다. 남자들만 살던 회사 숙소에 밥해주시던 주방 아주머니가 그만둔 뒤로 직접 밥을 해먹고 살고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밥하고, 설겆이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져 생활한다. 직원들이래봐야 서너명이라서 식사준비를 후임들 두명이서 하고, 나머지 한명이 설겆이를 하는 식인데 제일 고참인 나도 후배들을 도와주러 자주 설겆이를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회사에서는 아뭇소리 않고 설겆이를 당연스레 하면서 왜 집에서는 설겆이 하는것을 귀찮아 하는걸까? 하는 철든(!) 생각을 하게됐고, 그 이후 집에오면 바로바로 설겆이를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주부독자들 중에 어느날 남편이 갑자기 안하던 집안일을 돕는걸 봤다면 바로바로 오버하며 칭찬해줘라. 남자는 애나 어른이나 단순해서 칭찬받으면 신이나서 더 하려하는 본성이 있다. 기왕 하는 말이라면 "당신이 웬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하는 비아냥 보다 "오빠가 도와주니 정~말 좋다" 거나 "나 설겆이 하기 싫었는데, 정말 고마워~" 이런 말이 훨씬 낫지 않은가. 거기다 콧소리까지 살짝 섞으면 남편은 싱크대 깊이 처박혀 있던 냄비까지 꺼내들고 광을 내려 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더 나아가 청소까지 시키고 싶으면 "한 김에 청소도 해" 라고 말하기보다 "미안한데, 나 빨래 널어야 하는데 그동안 청소기좀 돌려줄거야?"  하는게 더 잘먹힌다. 여우같은 아내들은 이미 알고있는 상식 아닌가~ 남편들 살살 간지럽히며 원하는 바를 얻는 이런 방법. 내가 왜 주구절절 이런 말을 하고있느냐 하면...

우리집 쌈닭은 아무리 집안일을 도와줘도 고마워 하질 않는다. 누워서 티비보면서 "나 커피 한잔" 요건 애교에 가깝다. 살짝 눈을 흘기면 "아니, 고작 그거 하나 못해줘?" 이러면서 눈을 부라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난 더 자야하니까 애들 밥좀 챙겨줘" 이런다거나 거실로 나가면서 "빨리 이불 털고 청소해", "세탁기에 빨래 돌려놨어. 그거 가져다 널어" 모든 말들이 짧고도 명령형이다. 행여나 청소하다가 빨래 너는걸 잊어버리기라도 할라치면 오전 내내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러니 집안 일을 도와주면서도 흥이 안난다. 그래서 한번은 일 시킬때 가능하면 청유형으로 해달라고 해봤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아니 왜? 왜 당연한 일 하는걸 도와준다고 생각해?"다.
아내 생각은 남편이 가사일을 분담하는건 당연한 일이지, 아내를 도와주는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을 이해할수 없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한 일을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해야하는데 꼭 시켜야 하고, 그나마 시킨 일도 제대로 못하니 한심하고 짜증이 난다고 한다. 내 반응은 "그래도 난 시키면 하지 않느냐, 시켜도 안하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줄 아느냐"다. 아내의 눈이 커진다. "아니 그런 남편이 어디있어? 내 친구들 남편들은 다 오빠보다 잘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물론 아내 말이 맞다. 애를 혼자 낳는것이 아니고 같이 낳았으니 키우는 것도 같이 하는게 맞고, 결혼생활도 혼자 하는게 아니라 둘이 함께 하는것이니 집안일도 둘이 같이 하는게 맞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상식'을 인지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 그걸 깨우쳐 주기에는 남자들은 너무 이해력이 부족해 쉽게 수긍하지도,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아내들이 원하는걸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게 더 나을까? 호통치고 주눅들게 남편들을 몰아세우는 방법이 효과를 거둘지, 아니면 은근히 자존심도 살려주고, 부성애도 자극하며 연약한척, 너무 감동받은 척, 칭찬하는 방법이 더 나을지..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일 아닐까?

지난 주말에, 귀여운 딸들은 무슨 일이든 심부름을 하고싶어 안달이 났다. 뭐 좀 시켜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끝내 중요한(?) 일을 시켜주지 않자, 아빠가 하고있던 설겆이라도 대신 하겠다고 나섰다. 너무 커서 손에 잘 맞지도 않은 고무장갑을 끼고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설겆이를 하는 주원이. 물론 도와주는 의도는 고맙지만 성에 차지 않아 죄다 다시 설겆이를 해야만 했지만..
내가 하는 집안일도 아내가 보기에는 이럴까?


 

 


설겆이를 하고 아빠한테서 칭찬받는 언니를 그냥 두고볼 주하가 아니다. 저도 하겠다고 떼를 쓰다가 의자를 끌고 와서 올라섰다.





지금 사진을 보니 저 핑크색 발레복은 집에서 애지중지 입고 다니는 일상복이다 ^^
목에는 스카프를 맸고, 진주 귀걸이도 했다. "우와~ 우리 주하 설겆이 정~말 잘한다", "주하가 다 해버리니 아빠는 할게없다. 고마워" 이런 추임새에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 좋아한다. "아빠, 더 할거 없어요?" 없다고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해도 "네? 네? 제발요~ 도와 드릴게요~"를 연발한다. 이걸 가만 보고있자니 빨리 아내를 불러와서 보여주고 싶었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칭찬해 주는 아내와 신이나서 뭐든 더 도와주고 싶어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내들이여, 남편과 언쟁을 벌여서 굴복시키고, 이기려고 하지말자. 설령 당신 말이 백번 맞다한들 말이다. 그대신 여자의 장점이자 남자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라. 가끔은 눈물을 글썽이며 부성애를 자극하고, 가끔은 살살 간지럼을 태우면서 허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것이 정작 바라는걸 얻는 빠른길이 아니겠는가.

※ 오늘 포스팅 내용을 돌이켜보니 아내의 시퍼런 검열의 마수가 뻗쳐오는게 시간문제다. 강압적으로 삭제를 요구한다면 MBC, KBS 기자들 마냥 나도 파업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