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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보여주는 고백서 '경성천도'

이 책은 일본인 도요카와 젠요가 1934년에 쓴 책을 '남왜공정'의 저자 전경일의 편역과 감수를 거쳐  다빈치북스에서 출간한 책이다. 아마 책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라면 근래 부쩍 '경성천도'라는 책을 리뷰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는걸 느낄것이다. 일전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고하는 '남왜공정'이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적이 있다. 그 후 출판사로부터 '남왜공정'과 맥을 같이하는 일본 군국주의자가 쓴 이 책 '경성천도'를 소개받고 리뷰를 청탁받았다. 아마도 몇몇 블로거들도 같은 계기로 서평을 쓴 분들도 계실터이다. 책을 주제로 블로깅 하다보니 가끔씩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서평을 부탁받기도 한다. 그래도 나름 원칙을 가지고있기에 모든 책을 덜컥 받아놓고, 감언이설로 형식적인 서평을 쓰지는 않는다. 일단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여야 하고, 솔직한 서평(비판이나 혹평)이어도 상관없다는 약속을 받은 연후에야 책을 읽고 글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출판사는 양해를 해주시는데 반해, 무조건적인 홍보글을 바라는 일부 출판사, 또는 저자들과는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책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받아 읽게 되었다. 역사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고 있었기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대변동, 군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침탈, 중일, 러일, 독일, 미일간의 전쟁을 일본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 책은 꽤나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한일합병이랄지, 중일, 러일전쟁이랄지, 괴뢰 만주국 설립, 만주사변등의 행위를 아시아 식민지 건설 및 군국주의 부흥으로 보는 우리 시각과는 달리 대동아 공영권 건립, 아시아 블록경제권 설립, 서구 군국주의로부터의 아시아 수호라는 일본의 시각을 그대로 들여다 볼수 있어서 아주 귀한 사료라고 할수있다. 책이 씌여진 1934년이면 일본의 침략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이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발발한 태평양전쟁은 1941년에 시작되었는데 이미 7년전 한낱 교사에 불과했던 저자 도요카와 젠요는 미국과의 일전불사 의지를 불태웠고, 더 나아가 미국과의 전쟁은 피할수 없는 운명이라며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기까지 하고있다. 실제 역사는 저자의 에측대로 흘러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의 미국공격이 실현되었지만 결과는 저자의 바램과는 달리 일본의 허망한 패전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책을 읽는동안 여러차례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첫째로는 그 시절 일본인들이 자국의 정세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등 열강들의 의중, 군사력, 또 중국의 내정, 국민들의 동향, 국제정세 등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세계 어느나라와 겨뤄도 지지않는다는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를 거쳐 공격이 가능한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미국과의 전쟁은 필히 태평양 전쟁이 될수밖에 없으며, 미국이 항공모함이나 폭격기등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와 전쟁을 일으킬때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게 허를 찔러 일본이 미국을 먼저 공격할 경우 어떤 전황이 전개될지 예측해 놓은 부분에 이르러서는 흠찟 무서움까지 느끼게 된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바다쪽에서 공격할경우 태평양을 향해 일본 동부 연안에 자리잡은 도쿄로서는 전쟁수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들어 수도를 경성, 즉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이 경우 식민지 조선과 만주국의 통치가 수월해지고 전쟁 수행시에도 일본 본토에서 지휘하는것보다 경성에서 지휘하는 것이 잇점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단순히 수도를 도쿄에서 서울로 천도하는것 뿐만이 아니라 일본 본토의 일본인들을 대거 조선과 만주로 이주시켜야 진정한 대동아건설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원래 부여족이 고구려와 백제를 건립했고, 지금의 일본으로 흘러왔기에 조선이나 만주족들은 일본민족과 다른 민족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있다. 바로 식민시절, 내선일체를 주장의 근거가 되는 학설이다. 이렇게 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이 한뿌리에서 기원된 한민족이므로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식민지 개척이 아니라 근본을 찾아 한식구가 되는것을 뜻하며, 힘없는 중국, 조선, 아시아를 대표해서 힘있는 일본이 서구 국가들로부터 아시아를 지켜주는 고마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아래 지도는 촘촘하게 건설된 만주와 조선의 철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부터 전쟁물자나 병력등이 쉽게 아시아 각국으로 조달될수 있도록 구상하는 안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사상을 적극적으로 정부정책을 입안하는 고위층에 전달하고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저자의 생각대로 진행되는 일들도 있었고, 이 시절 대외적인 일본의 외교정책은 저자의 구상과 거의 흡사하다. 저자는 태평양시대의 중요성을 일찌기 간파하고 앞으로 국제질서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재편된다고 봤다. 그 태평양 시대의 중시은 극동지방이고 바로 러시아, 일본, 조선, 중국등이 중심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조선반도가 핵심지역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일본인들 뿐만아니라 미국, 영국, 러시아등의 서구 열강들도 동일한 인식이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이에 "조선반도를 지배하는 자는 전 극동지방을 지배하고, 전 극동을 지배하는 자는 전 태평양을 지배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만년을 조선반도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대한민국, 당시 조선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인은 4천년동안 조선반도에 거주해 왔을 뿐 지금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적이 없다"

즉, 조선인들은 조선반도에서 거주만 했을뿐 실질적인 조선반도의 지배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전략적 요충지에 터를 잡고 살면서도 평화를 사랑하고, 먼저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는 우리 민족은 허수아비처럼 보였음에 틀림없다. 힘으로, 무력으로 침탈하고, 빼앗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지배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보인다. 또한 이 책에서 인용한 친일파 이용구의 <한일합병 건의문>을 보면 당시의 친일파의 행각과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있어 충격과 심한 울분을 느낄수 있다.

(전략)... 이 땅이 하늘의 은혜를 입어 이와같이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2천만 민중이 빈약함에 울며 문명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으니, 이는 건국의 기본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나라 경영의 근본을 세우지 못한 바가 그 원인이다. 매번 강대국의 기세에 의지하며 백성의 생활은 버틸 재간이 없어 가련하고 미련하게도 배 위에서 칼을 떨어뜨리면 그 떨어진 자리를 배에 표시하고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른다. 대 일본 천황 폐하의 지극한 은덕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미 일찍이 망하였을 것이요, 조선의 군신은 오늘날 하늘을 우러르지 못했을 것이며 훗날의 문명을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황 폐하께서 보호제도를 펼치시어 조선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이미 서로 의지하고 정치와 교육이 서로 화합하여, 한일관계는 실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게 되었다....(중략)...  그러므로 우리의 만세 불변할 대업의 기초는 지금 이렇게 태평한 때에 한일합병을 창립하는 길 뿐이리라. 이는 조선 스스로를 지키는 방책일뿐아니라 일본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이같은 친일파의 망언에 대해 저자는 "실로 이치에 맞으며 감탄을 자아내는 명문이 아닐수 없다"고 칭송한다. 이용구는 후에 한일합병후 일본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막대한 재산도 수여받았다. 해방후 이승만,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친일파 청산작업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이같은 친일파의 재산이나 하사받은 땅은 지금도 국가에 환수되지 않고, 그들의 부 축적에 기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일파의 자손들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대기업을 일으키거나, 민족지라는 가면을 쓰고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거나, 사학재단을 설립해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감추고 사회지도층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울분이 터지는 일이다.

경성천도. 비록 저자의 바램과 강력한 주장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다행히 끝났지만, 끝이 끝이 아니다. 편역, 감수자이자 '남왜공정'의 저자인 전경일에 의하면 전후 패전국에서 다시 일어나 또다시 아시아 제패의 패권국을 꿈꾸는 일본이 먼 미래 언젠가는 또다시 시도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제시대 도요카와 젠요의 주장대로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 앞서 일본이 수도를 도쿄에서 서울로 천도했다면, 어쩌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이 우리 서울땅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가정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점을 잊지말자.

경성천도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도요카와 젠요 / 김현경역
출판 : 다빈치북스 201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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