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의 대가 이수광 작가의 신작이다. 병자호란 이후 청의 속국이 된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소현세자의 친청파와 인조를 포함한 반청파 대신들이 맞서는 가운데 소현세자가
독살을 당한다. 조선시대를 돌이켜보면 숱한 왕들과 왕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사했다.
이들중 상당수가 정적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추측되는 바, 이는 후대에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소재가 되어 수많은 영화나 소설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분야에서 작가 이수광은
반은 역사적 사실에서, 반은 픽션에서 모티브를 따와 픽션 역사소설 분야를 개척해 낸 대가라고 할수있다. 그동안 그가 써온 작품들중 <나는 조선의 국모다>, <왕을 움직인 소녀 차랑>, <신의 이제마>, <왕의 여자 개시>, <조선 명탐정 정약용>, <무사 백동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등은 대중 역사서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애매한 픽션 역사소설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소현세자 독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소설이 시작하지만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구별이 안간다. 이런 장르는 그냥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소설 자체로 즐기고, 다 읽은후에 역사적 사실을 찾아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현세자 독살사건>은 특이하게도 소현세자가 소설의 중심이 아니다. 소설 초반부에 별다른 존재감도 없이 곧바로 죽어버린다. 소설을 끌어가는 축은 가공의 두 인물 북촌 항아 이진과, 남촌 항아 이요환이라는 두 무림 여검객이 주도하고 있다. 어찌보면 역사소설이라기 보다
중국 무협소설에 가깝기도 하다. 무협소설에서 흔히 단골소재로 사용되는 무림의 최고비서가
등장하고, 신비에 싸인 사부님은 주인공에게 전설속의 무림비법을 전수해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흔히 이런 무협소설에서는 강력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법인데 이번 이수광의 소설에서는
특이하게 여자가 주인공이다. 앞서 소개한 북촌항아 이진과 남촌항아 이요환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했다가, 서로 적이 됐다가, 다시 친구가 되면서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그녀들을 통해 조선의 정세, 북벌론, 당파싸움, 궁중암투, 인조와 소현세자간의 갈등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다소곳해야할 사대부 규수들을 왈가닥 왈패에다 무림고수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도 재미있고, 경공이랄지 검술의 초식이랄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설정들이 꼭 무협지를 읽는 재미를 준다. 다만 애초에 인조와 소현세자의 갈등이 된 동기, 북벌이냐 화친이냐 등의 중요한 역사적 갈등관계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한 재미를 추구한 대신에 소설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다소 황당하고 경박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이전까지 내가 알기로는 소현세자의 죽음이 독살설이 있다~ 정도로만 기록되고 있는줄 알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했다고 대놓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사서에서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단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外人)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하였다.
당시 종실 진원군(珍原君) 이세완(李世完)의 아내는 곧 인열 왕후(仁烈王后)의 서제(庶弟)였기 때문에, 세완이 내척(內戚)으로서 세자의 염습(斂襲)에 참여했다가 그 이상한 것을 보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한나라의 세자가 죽었다. 그런데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것도 정적, 특히 그의 아버지가 독살의 배후에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이게 사실이라면 인조는 세자를 뒤주에 갇어 죽인 영조와 더불어 천륜을 저버린 비정한 왕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증거로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한 배후라고 할수있는지 살펴보자.
1.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으로 청나라 장수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던 인조는 이날의 수모를 갚고자 죽을때까지 청나라를 증오하고 북벌의 꿈을 키웠다. 반면에 볼모로 청에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오랜세월 청나라에서 살면서 그들의 발전된 모습과 서양문물을 보고 조선이 당장 필요한건 승산없는 싸움보다 청과 화친을 통해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청나라 입장에서도 친청파인 소현세자가 조선의 왕위를 잇는게 득이 됐으므로 볼모생활을 끝내고 소현세자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제왕수업을 쌓게했다. 인조는 눈에 가시같은 자기보다는 소현세자로 왕위를 교체할거라 보고 불안에 떨며 소현세자를 미워한다.
2. 소현세자의 처음 병명은 학질이었다. 학질은 중병이 아니고 쉽게 치유되는 병으로 알려져있는데 끝내 치유되지 못하고 죽었다. 그때 세자의 치료를 전담한 어의 이형익은 어의가 된지 석달째였고, 세자빈 강씨와 정적관계에 있던 인조의 후궁 조소용의 천거로 어의가 된 인물이다. 또한 세자가 죽은후 어의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전례를 따르지 않고 인조는 이형익을 사면한다.
3. 세자의 시신을 염한 종친들이 전한 말을 토대로 사서에서 독살을 의심하고 있다.
4. 세자에게 후사가 있을경우, 세자가 죽으면 세손이 왕위는 잇는것이 당연하나, 인조는 세자빈 강씨마저 사약을 내려 사사시키고, 세손들을 귀양보낸 후 차남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운다.
이 때문에 소현세자의 죽음뒤에 인조의 사주가 있었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얘기하면서도 세인들 사이에서 가장 '만약에~'로 가정되어지는 역사중
하나가 바로 '만약에 소현세자가 죽지않고 왕위를 이어받았다면~' 일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조선보다 훨씬 앞선 군사력과 과학이 발달하고 있었고, 소현세자는 이런 청나라와 적대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를 맺어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정책을 펴고있었으므로
어쩌면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하기 훨씬 이전에 조선이 먼저 근대화 할수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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