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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깜짝놀랄 거장들의 연애사, '거장들의 스캔들'

읽는 내내 저자의 해박한 문학계 거장들의 뒷이야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문학계 거장들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 애정행각,
이성관계에 관한 스캔들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거나, 혹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놀랍다.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빅토르 위고, 보들레르, 루 살로메,
에드거 앨런 포, 보부아르, 사르트르. 특히 러시아의 여성작가 루 살로메 편에
이르면 그녀를 사랑했거나, 그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매달렸던 남자들의 이름이
화려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융,
리하르트 바그너, 파울 레, 레오 톨스토이, 헤르만 에빙하우스, 크누트 함순 등등.
문학의 문외한인 나에게도 낯익은 이름들이 수도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 거장들이
루 살로메 라는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위해 모든걸 바쳤다고? 도대체 이 여자가
어떤 여자길래...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인물이지만, 하도 후덜덜
하게 숱한 거장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루 살로메에 대해 잠깐 소개해본다.

후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와 연애를 9개월만하면 아무 재능도 없었던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예술적인 영감이 뭉클뭉클 샘솟아 대작 한 권을 거뜬히 쓸 수 있다고 한다. 어떻길래?
그녀와 눈빛만 마주쳐도, 그녀와 대화를 한마디라도 나누면 금새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마는 여자.
그랬기에 그 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수많은 거장들이 그녀에게서 헤어나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역설적으로 그녀는 철저히 남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데이트는 즐기고, 남자들의
구애를 즐기면서도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고. 그녀의 사랑을 애원하며 곁에 머물던 남자들이
끝내 그녀의 간택(!)을 받지 못하고 떠난 후에는 하나같이 그녀를 잊지 못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니 진정한 팜므파탈의 여인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녀가 아름다웠다는 얘기는 없다.
예쁜 외모로 남자들을 사로잡은게 아니라 천재적인 문학의 소질, 재능, 솔직하고 순수한 영혼,
학문에 대한 지적 호기심, 우아하고 기품있는 용모로서 당대 거장들을 쥐락펴락 했다고 하니
역시 거장들의 세계는 여자를 볼때 외모만 따지는 나하고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녀 인생에서 첫번째 남자는 목사였던 길로트였다. 길로트는 러시아 황제 자녀들의 후견인
을 할만큼 당대 최고의 박학다식한 학자였다. 신학, 유럽의 문화와 역사,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해박한 지식은 연애기간동안 그대로 루 에게 전해졌다. 2년간 지속된 두사람의 관계에서
길로트는 루에게 신이었고, 아버지였고, 남자친구였다. 길로트는 유부남이었는데 루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까지 했으나, 루는 그를 떠났다.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던중에 철학자 파울 레와 니체를

만났다. 파울 레가 루를 사랑했는데 모든면에서 루보다 열등감을 느꼈던 레가 친구이자 스승인

니체를 끌어들인 것이다. 세사람은 한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두남자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

기를 하는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루는 두사람 누구에게도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루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차인 니체는 루를 떠났고, 얼마후 루가 레와 함께 동거생활을 이어
가는걸 알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열흘만에 탈고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좀 오버다 싶긴 하더라. 그 작품이 순전히 질투심에 씌여진 작품은 아닐지라도
한 몫을 하긴 한 모양이다. 이후로도 니체는 평생동안 루를 잊지못하고 괴로워하다 아편중독과
정신착란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럼 루는 레를 선택했을까? 그것도 아니다. 2년동안 이어진 동거기간에도 두사람은 우정관계만

유지했을뿐 루가 레에게 몸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다시 안드레아스라는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 루가 안드레아스를 사랑하는걸 알고 레는 루를 떠났다. 그리고 15년후 레는 루와 추억이
깃들었던 인 강의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자살했다.

스물여섯살의 루는 안드레아스와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전 각서를 만들어와 사인을 요구했는데

내용이 이렇다.
"일체의 구속을 거부한다. 섹스는 불가하고, 다른 남자와의 자유로운 연애도 허락한다"
이런 조건을 내세웠음에도 안드레아스는 루와 결혼하기 위해 서명을 했다. 그리고 그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그저 말뿐인줄 알았겠지만 실제로 결혼이후에 루는 다시 다른남자들과
어울려 다녔고, 각방을 쓰면서 안드레아스와 동침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이후에 남성편력이
극에 달해 매일매일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고, 그녀를 한번 만난 남자들은 헤어나지 못하고
매순간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결국 폐인이 되고 말았다. 이즈음 루가 만난 이가 유명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다. 스물두살 혈기왕성한 청년 릴케가 열네살 연상인 루 살로메를 사교모임
에서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 그녀 곁을 맴돌았다. 릴케는 서정성 높은 주옥같은 시를 남겼
는데 그가 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생은 조금 평안했을지언정 지금처럼 세계적인 서정시인
으로 사랑받지 못했을거라는 평이 있다. 그의 창조성, 예술적 영감, 감성이 루를 만나 완성
됐다고
한다. 릴케의 원래 이름도 르네 마리아 릴케다. 그런데 루가 르네라는 이름이 너무
여자같다고
싫어하자 남성스러운 라이너로 바꿔버렸다. 이들의 사랑은 4년간 이어졌다.

이처럼 수많은 남자들과 동거, 결혼, 연애를 지속하면서도 루는 순결을 잃지 않았다고 알려
졌다. 그러다 나이 40 이후에는 그동안의 금욕적인 생활을 보상하듯 많은 남자들과 육체관계
를 가졌다. 남의 일이라 알순없지만 그녀의 '첫남자'는 의사였던 프리드리히 피넬레스 였다.
릴케와 사귈때도 만나왔던 의사였고, 루는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런데 유산했다. 그 후
또다시 임신을 했지만 역시 석연찮은 이유로 유산했다. 자신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으로
판단한 프리드리히는 루를 떠난다. 그가 떠나고 만난 남자는 그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평소에도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있던 루가 프로이트를 만나 스승과 제자, 연인 사이를 넘나
들었다. 그러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빅토르 타우스크는 루를 짝사랑 하게됐는데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로 생을 마쳤다.

지금껏 긴 글로 루 살로메의 스캔들에 대해 소개했다. 그녀가 어떤 여자였길래 이렇게나 많은
스캔들을 만들었을까. 역시 그녀의 남자중 한사람이었던 정신분석학자 비에리가 루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루가 비범한 여자라는걸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의 의식세계
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엄청난 정신집중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지적
성장을 도와주었고, 불꽃이 일어나도록 해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토록 빨리, 그토록 완벽하게
나를 파악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니체는 그녀가 악마 같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녀가 나의 일상생활과 결혼을 파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창조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누구라도 그녀와 마주하고
있으면 자신이 더욱 위대해졌다고 느꼈다."
바로 이런 마력이 있었기에 남자들이 그녀에게서 헤어나지 못했을 법 하다.
우리가 문학계의 거장들로만 알았던 명사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랑이야기, 스캔들을 살펴
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거장들의 스캔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홍지화
출판 : 작가와비평 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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