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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한국판 CSI, 법의학의 역사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했디'

미드 CSI가 인기를 끌며 롱런하고 있다. 지금은 한풀 꺽였지만 얼마전까지 그야말로 신드롬이라

불릴만큼 CSI 열풍이 우리나라에도 몰아쳤지 않은가. 나 역시 CSI 매니아였다. 잔혹한 살인사건,

그리고 그 사건현장에 남겨진 병아리 눈물만한 흔적을 찾아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CSI는 그때까지 우리에게 생소하고, 낯설었던 법의학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키는데 공헌했다.

누구나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것이다. '이야~ 미국 참 대단하다. 그럼 우리는?"

옷조각 하나에서 섬유의 원산지를 찾아내고, 발자국에 묻은 흙의 성분을 분석해서 범인의 직업을

알아내는 과학수사관들... 과연 우리나라 법의학의 현주소는 어디만큼 와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점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는 책이 바로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쓴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했디> 이다. 제목이 좀 특이하다. 아니 많이 특이하다. 좀 더 독자

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제목도 있을것이고, 좀 더 세련된 제목도 있었을텐데 왜 낯선 이북

사투리로 제목을 붙였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문국진 박사의 고향이 이북이기도 하거니와

이 책 자체가 문국진 박사가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며 쓴 회고록이나 자서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고, 오랫동안 출판,편집자로 일해온 강창래씨가 문국진 박사를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오랜시간 나눈 대담을 책으로 옮긴터라 현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대화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한 사연도 책속에 소개되고 있다.


 법의학이란 인권을 보호하는 학문이다.

문국진 박사가 법의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던 1955년 우리나라 최초로 법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헌책방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일본서적의 한 문구에서 시작됐다.

"사람에게는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법의학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발달된 민주국가에서만 발달한다. 따라서 법의학의 발달 정도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나 민주화 정도를 알수 있다."

민주국가가 아닌 독재국가거나, 또는 후진국일수록 범인을 잡는데 과학수사가 필요치 않다.

그냥 고문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법의학이 태동하기 전 유럽이나 미국이 그러했고,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초기 이승만 정부가 그러했다. 의심이 가는 즉,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경우에도

고문을 해서 피의자의 자백만 받아내면 법정에서는 증거로 인정이 됐으니, 애써 돈과 시간을

투자해 과학수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서양의 인권선언등이 나온 후로

법정에서 물증을 우선하고, 증거주의를 채택함으로서 비로소 과학수사가 시작됐고, 법의학이

탄생했다.


책을 읽다보면 도무지 쉴 틈을 주지않고, 흥미진진한 대한민국 법의학의 산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물 자체가 바로 한국 법의학과 과학수사의 살아있는 증인인 문국진 박사의 경험과

기억, 기록에 의존한 인터뷰다 보니, 매 에피소드가 마치 미드 CSI를 보는듯 하다. 그러면서

독재정권 시절,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킨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만날때라든지, 의외로 모든 여건이 열악했지만 당시 인식으로 놀랄만한 수사성과를

거둔 통쾌한 사연이랄지,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피의자를 법의학자들이 시신을 부검하여

진범을 찾아 구해주는 얘기등이 손에 땀을 쥐게한다.


아 참, 위에서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고 했지!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과학수사가 처음 태동하던 시기만 해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부검은 죽은사람을

한번 더 죽이는 '두벌죽음'을 의미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자살하더라도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죽는 방법을 택하던 사회분위기에서 죽음의 원인을 밝힌다고, 죽은 시신을 부검한다는 것은

쉬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밝히기 위해 죽은 청년을 부검하려고 하자

사망자의 할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쫒아와 휘두른 에피소드. 수십년이 지나 지금은 부검이 일반화

됐다고 하지만, 지금도 사망자 가족들은 부검을 피하려는 의식이 강하다.



 

위와 같은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에피소드, 자살로 알려진 예술가들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

영화에서 소개된 법의학과 관련된 살인사건등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못하게

만든다. 읽는 재미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법의학이 인권에 관련된 학문이라는 문국진 박사의

말이 심하게 공감가는 탓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법의학이 없을때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피의자의 자백이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됐다. 그랬기에

정권이나, 수사관들은 진범을 잡는데 관심을 두는게 아니라, 누가봐도 가장 그럴듯한 피의자를

골라내 자백을 받는데 주안점을 뒀다. 힘없고, 빽없는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백이란

칼에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진짜 범인이 권력이라도 갖고있다면 교묘히 피해갈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법의학이 보편화되면서부터는 지위의 높고 낮음, 권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법이 만인앞체

평등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법의학으로 무장한 과학수사를 피해갈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인권을 중요시하지 않는 독재국가에서는 법의학이 발달할수가 없다.


부디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법의학이 발달하여, 범죄가 있는곳엔 흔적이 있다는 문구가

어느곳에서나 통해 억울한 범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래본다.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문국진,강창래
출판 : 알마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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