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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도시개발 길을잃다' 개발 만능주의에 울리는 경종

이 시대에 꼭 들어맞는 키워드를 내세운 책이 나왔다. 김경민 저 '도시개발 길을잃다'

하버드대학에서 부동산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개발과

부동산, 금융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인 저자 김경민은 놀라울 정도로 세부적이고, 정확한

대형 프로젝트 개발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냈다.


이명박, 오세훈 시장의 지난 10여년간 서울은 각종 개발정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한정된 예산과 역량을 복지나 환경보존, 주거환경 개선에 치중하는게 아니라

천문학적인 자본이 퍼부어질 대형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쏟아부었던 세월들이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송도 국제도시, 뉴타운사업, 가든파이브, 한강르네상스...

이들 사업들은 모두 요란한 비젼과 구호로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추진되었고, 사업이 완성되면 대단한 가치를 지닌 명물로 남게된다며 거창하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들중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은 불과 손에 꼽을뿐이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과도하게 벌여놓은 여러 개발사업들이 전시행정이란 비난을

받고 사퇴하여 오늘날 이처럼 혼란스런 정치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국책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하고,

중단되거나 보류되고 있는 근본 원인을 경험없는 사업주체에 있다고 진단한다.

용산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용산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회사는 드림허브(주)라는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는

실체가 없이 서류에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다. 그러다보니 실질적인 공사진행을

위해서 또다른 개발회사가 필요한데 용산역세권개발(주)라는 회사가 드림허브 산하에

설립됐다. 결국 드림허브나 용산역세권개발이나 다같은 곳이나 다름없는데 이 회사에는

금융업, 공기업, 자산운용회사, 건설업, 보험, 호텔업등의 회사 30곳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들을 아울러 사업을 총괄하는 주체가 없다보니 각 회사들은 이 사업

이후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진행시켜나가 궁극적으로 서로의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각자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나눠

갖고자 치열한 싸움과 갈등의 고리를 안고있다는게 문제다.


용산역세권개발(주)은 용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건설회사를 선정하고 공사를

맡겨야 하는데, 자신들 컨소시엄 안에 대형 건설사들이 포진하고 있기때문에 경쟁 건설사에

사업을 맡기기도 어렵다. 그래서 컨소시엄에 포함된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할 경우, 건설사

입장에선 공사비를 부풀리는게 이윤이 많이 남는 방법이지만, 건설사가 참여하고 있는

컨소시엄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낮추는게 이윤이 남는 방법이다. 이렇듯 서로 상충되는

현실앞에서 건설사는 불확실한 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보다는 바로 앞의 현실적인 공사비

증액에 욕심을 갖게되고, 그러다보면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는 다른 주체들 역시, 사업의

성공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당장 눈앞의 커다란 파이를 나눠갖는데 관심을 두게된다.

결국 요란하게 시작했지만 초기 계획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속속 불거져 나와

사업이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한다. 이같은 문제는 용산프로젝트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굵직한 국책사업의 대부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결국 성공적인 사례도 부족할뿐더러 개발의 주체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는 거다.


또한 어떤 개발사업을 진행할때 참여사들이 자신들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하는게 아니라

PF, 즉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시작하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작년초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시작한 사업이 중간에 예기치않게 발생한 문제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될 경우, 막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건설사들이

부도를 맞게되고, 그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또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다보니

부실해지는 악순환을 맞고 있다. 흔히 선진국에서 건너온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제도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금융위기를 조장하는 나쁜 제도가 되었는지도 알아보자.


외국에서는 은행들이 PF자금을 빌려줄때, 그 사업의 적정성과 미래가치를 따져보고 돈을

투자한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업의 가치보다도 참여하는 회사들의 신용도를

보고 돈을 빌려준다. 즉, 별 가치가 없는 사업을 벌였어도 현대, 삼성등 굴지의 건설사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사업에는 쉽게 돈을 빌려주고, 신용도가 낮거나, 이름없는 건설사들이

벌이는 전망좋은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나중에 사업 자체가 중단되거나,

삐걱거릴 확률도 크고, 그럴때 건설사들과 은행들이 입게되는 충격도 커질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책은 너무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 그리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도시개발 정책등에 깊이 들어가다보니 전문적인 용어가 수두룩하고, 비전공자일 경우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작금에 실제로 야심차게 시작

했던 대형 프로젝트 사업이 곳곳에서 삐걱대고, 정지되고, 실패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는 아주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책 뒷면의 문구가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다.

"상상조차 힘들만큼 거대한 규모의 이 부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구의 돈으로 갚아지고 채워질 것인가? 답은 바로 우리 모두의 세금이다"


도시개발, 길을 잃다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김경민
출판 : 시공사(단행본) 201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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