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간의 관계에서 연인이든, 부부든간에 만나는 기간이 오래되고,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성격차이'로 인한 트러블로 고생하는 커플들을 자주 볼수 있다. 이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향해
'말이 안통한다'고 답답해하고, 상대를 비난한다. 말이 안 통하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것이 아니라 자기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듣지를 않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잘 설명
하고 설득해도 도무지 말이 안통하니, 아예 입을 닫고 말을 하지않고 살기도 하고, 결혼전이라면
이를 '성격차이'로 간주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라는 책도 나왔겠는가! 도무지 지구언어를 못알아듣는것만 같은 서로를 가리켜 다른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인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남녀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아 불화가 생길때 흔히 주위에서 해주는 조언이라곤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사이가 안좋을수록 더 많이, 더 자주 대화를 해서 상대입장을
들어보고, 내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여라는 취지다. 말은 일면 맞는 말 같다.
근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불화를 겪고있는 커플들이 과연 대화가 부족해서 사이가 벌어진걸까?
아닌것 같다. 대화는 하는데 도통 말이 안통하는 거다. 서로가 자기 할말만 하고, 그나마 어느
한쪽에서 받아들이면 다행인데 서로간에 도무지 상대의 말은 말도안되는 헛소리일 뿐이니 이해
해줄수가 없는거다. 말이 안통하니 말을 안할수 밖에. 그런데 거기다 대놓고 말을 하라고, 하라고,
조언해대니 별 감흥이 없게된다.
상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이자 국어문화원장인 구현정 교수가 <소통 불통 먹통>이란 대화의
기술에 관한 책을 냈다. 이 책을 읽기전에 제목을 보고, 대충 머릿말을 훑어보고서는 으례 상투적인
대화기법에 관한 원론적인 글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저자의 유머감각과 더불어 인용한
사례들이 어찌나 현실감이 있는지 깔깔깔 소리내서 웃게 되버렸다.
남녀간에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건 그사람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거나 서로가 생각하는게 틀려서가
아니란다. 원래 남자와 여자의 언어에 대한 개념 자체가 틀려서 그렇다는거다. 따라서 지금 상대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살짝 다를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옛사람이나 새사람이나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말이다. 일단 저자는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역할의 차이로 인한 언어의 쓰임새부터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정의한다.
남자 : 주로 사냥을 담당. 여러 사람과의 협동심보다는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성향.
많은 언어가 필요없으며 말을한다면 정확한 정보의 전달에 치중하는 경향.
ex) 저쪽으로 가면 사냥감이 많아, 멧돼지가 저쪽으로 도망갔어 등등..
여자 : 남자가 사냥을 떠나면 주거지에 남아 음식과 가족을 돌봄.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유대관계 구축위해 말을 많이하게 됨.
남자는 다른사람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하관계를 구축하려하고, 상대가 나보다 위에 군림하려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된다. 하루에 사용하는 단어도 2천~4천개 범주에 있고, 대화의 목적은
최대한 유용한 정보의 전달에 있다고 한다. 반면에 여자는 상하관계보다는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관심을 받으려, 다시 말해 유대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말을
많이하게 되고(하루 단어 사용량도 4천~6천), 감탄사랄지, 동의를 구하는 그렇지? 등의 부가의문문
사용이 많다. 위의 대화1에서도 여자가 김과장의 옷입는
스타일에 대해 흉을 보는것은 그 목적이 김과장을 까려는 의도보다도 남자와의 대화에서 제3자의
흉을 보면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남자가 내편이라는 확인을 받고자 함이 무의식적인 목적이란다.
그런데 거기다 대놓고 남자가 하는 말이 그런말은 김과장한테 해줘야 다음부터 옷입는 스타일을
바꿀거라고 대답하고 있으니, 여자가 의도한 바와 동떨어진 대답인거고, 그래서 여자가 서운해
하는 예다. 남자 입장에서야 말이라는게 정보전달의 목적을 우선하고 있으니 김과장의 옷입는
스타일이 이상하다면 김과장한테 직접 말을해줘서 바꾸도록 해야지, 왜 자기한테 그 얘기를
하는건지 이해할수 없는거고.
대화2에서 남자가 퇴근후 집에오면 여자는 남자가 하루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도 얘기하고,
다정하게 여자의 일상도 물어보고 많은 말을 나누기를 원한다. 그런데 대뜸 티비나 보고있으면
나에게 애정이 식었다거나, 이사람에게 나는 밥이나 해주고 살림이나 하는 가정부와 다름아닌
대우를 받는다고 토라지게 된다. 하지만 또 남자 입장에선 퇴근후 집에와서 딱히 새로운 정보의
전달 필요성을 못느끼는 거다. 만약 할말이 있으면 그사람이 먼저 말을 하면 되는거지..
이같은 현상을 두고도 학계의 용어가 있다. 여자는 언어를 '친교적 기능'으로 주로 사용하고,
남자는 언어를 '정보전달의 기능'으로 사용한다. 특별히 전달할 정보가 없으면 남자는 말을 안한다.
하지만 여자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말을 한다. 여자에게 있어서 말하는건 친교의 목적이기
때문에.
이밖에도 너무나 공감가는 언어와 대화의 속성들이 자세히 언급되고, 소개되고 있다.
내용 자체는 다소 지루할수 있는 소재인데, 예시로 든 대화들과 일러스트가 상당히 재미있고
마치 우리집 얘기를 하고있는듯이 가깝게 느껴져 재밌게 읽을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언어에
대한 기본인식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고, 배려한다면 좀 더 대화가 잘 되고, 서로 오해를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번씩 읽어보라고 강추하고 싶은 도서다.
(저자 구현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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