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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서인과 남인의 당쟁을 다룬 '윤휴와 침묵의 제국'

조선시대의 역사, 특히 조선 중기 이래로 역사를 얘기하자면 당파싸움을 빼놓을 수가 없다.
후대인 지금에 이르러서 당시의 당파싸움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기가막히고,
코가막힐 일들이 너무나 빈번이 일어나 아까운 인재들이 목숨을 잃어갔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선비니 충신이니, 현명한 유학자로 알고있는 인물들 대부분의 말로가 비참했다.
사약을 받거나, 목이 잘렸다. 이는 당파싸움이 나라를 위한 부득이한 정치행보가 아니라,
오로지 상대편을 죽이기 위해 사화를 일으키고, 모함을 하고, 무고를 한다. 무엇이 진실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를 죽일것이냐를 먼저 결정하고 온 당파가 똘똘뭉쳐 정적을 제거하는데
사활을 건다. 이는 선조이래로 점점 심해지다가 특히 숙종대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된다.




역사서의 일인자라고 할수 있는 이덕일의 신작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 출간됐다.
그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조선왕을 말하다>, <조선왕 독살사건>
등의 대표작이 있다. 역사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여러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책들이다. 소설이 아니다 보니 읽는 이들 중에 역사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겐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수 있다. 반면 어느정도 조선시대 사화나 당쟁의 역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는 독자
들이라면 손에 땀을 쥐게하는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인조, 효종, 현종, 숙종대의 큰 화두는 단연 '북벌'이었다. 송시열로 대표되는
서인들의 정권에서 '북벌'은 당론이었지만 이는 권력유지용 구호일 뿐이었고, 실제로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를 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는 실제로 북벌을 진행하려던 효종과 마찰을 일으켰고,
의문의 죽음을 맞은 효종에 이어 즉위한 현종 역시 송시열등의 서인들에 눌려 기를 펼수 없었다.
서인들과 반목하며 남인을 중용하려던 현종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고, 14세의 어린 숙종이 즉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인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이로서 남인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남인의 영수격인
윤휴가 중앙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남인들은 다시 서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탁남, 북벌을 기치로 왕권을 존중하고, 서인들을 배척하려는 청남으로 갈려 또다시
집안싸움을 하면서 결국 공멸하고 만다. 숙종 재위 원년에 중앙무대에 진출했던 윤휴는 겨우
6년간의 천하를 마감하고 숙종6년 사약을 마시며 사사되었다. 윤휴의 죽음과 함께 조선은 길고긴
'침묵의 제국'이 되고만다. 입이 있고, 생각이 있어도 말할수 없는 나라. 서인들의 눈밖에 나면
죄가 없어도 죄가 되는 시대였으니, 함부러 충언을 할수도 없게 되버렸다.

당시 모든 악의 시발점으로 표현되는 서인정권이 가장 큰 가치로 삼고 있던것은 바로 성리학,
그중에서도 주자학이었다. 유학의 시발은 공자, 맹자였으나 주자 이래로 모든 성리학은 주자학이
조선 서인들을 점령했다. 공자, 맹자가 한 말도 주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다. 또한 임진년에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파견한 이래 명나라는 어버이의 나라로 사대적
인 입장을 스스로 취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청나라와 전쟁을 가져오는 원인이 됐다.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치욕을 당한 이후로도 인조, 효종, 현종, 숙종에 이를때까지 조선 신하들의 유일한 임금은
조선왕이 아니라 명나라 황제들이라는게 서인들의 인식이었다. 이처럼 주자를 맹신하고 명나라를
조선왕실보다 우위에 두는 서인들의 현실인식에 반기를 든 집단이 윤휴와 남인이었던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란 있을수 없다. ~라면은 그저 상상의 즐거움만 줄 뿐이지 바뀔게 없으니.
만약 윤휴가 좀더 노회한 정치가로 서인들과 상대하면서 좀더 오랜시간 정책을 입안하고, 숙종을
보필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윤휴가 숙종대가 아닌 현종대에 일찍 정치에 참여해서 북벌을
추진하고 서인들과 대적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역사가 바뀌고,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상도 달라져
있겠지...이래서 역사속 모든 사실들을 ~라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적용시키는게 부질없는 짓인거다.

너무나도 아까운 인재들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나갔다. 어떤이는 당쟁이 단점만 있는게
아니라 장점도 있다고 하던데, 난 대체 이런 무의미하고 가치없는 당쟁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윤휴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던 그림. 후에 밝혀진 바에는 윤휴의 아버지 윤효전이라고 한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이덕일
출판 : 다산초당 201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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