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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양준혁의 팬이 되고말았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두명의 '신(神)'이 있다. 기아 타이거즈의 종범신과 삼성 라이온즈의 양신!

롯데 자이언츠의 손민한까지 포함시켜 민한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의 경지를 넘어선 기록, 그리고 훌륭한 인격을 두루갖춘데다 오랜 시간 그라운드를

누비는 꾸준함까지 겸비했다는 점을 들수있다. 또한 이들은 단지 소속팀 팬들의 사랑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야구팬들도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신'이라는 호칭을 받을수 있을게다.

이처럼 신적인 대우를 받던 한 축, 삼성의 양준혁이 작년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 나이로 마흔둘, 그때까지 야구선수중 최고령 선수로 활약했던 양준혁은 은퇴를 선언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실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지도 않았고, 본인 스스로도 선수생활의 의지가

강했기에 선뜻 수긍하기 힘들었지만, 구단의 은퇴 권유를 깨끗하게 받아들이고 화려한 은퇴식을

거행한후 그렇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난 기아팬이다. 그런탓에 항상 양준혁과 라이벌로 비교

되는 이종범이 그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종범 역시 최근 2,3년새 부쩍 은퇴압박을

받고있고, 본인의 강한 의지로 인해 선수생활을 1년씩, 1년씩 연장해오던 차라 이종범과 함께

최고령 기록을 써나가던 양준혁의 은퇴는 꽤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왜? 아직은 건재하던데?

의아할수 밖에. 보통 나이가 들어 실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거나 팀에 기여도가 떨어질때

은퇴를 생각하게 되는데 반해 양준혁은 그 전년도인 2009년만해도 3할2푼9리의 수준급 타격을

보여줬다. 삼성 구단측에서는 은퇴를 권유하면서 만약 승복하지 못할경우 조건없이 타팀에서

뛸수있게 풀어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준혁은 선수생활에 대한 욕심을 접고

삼성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그 이면에는 이런마음이 있었겠지.

"정상에 있을때 떠나자", 구차하게 팀들을 떠돌며 선수생활을 연장하느니 프랜차이즈 스타로

대구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영원한 삼성맨으로 남겠다~는 의지였을 게다.

 

여기서 야구팬들이라면 양준혁이라는 이름 석자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당연히 알겠지만 한번 더 짚어보기로 하자. 은퇴 시점에서 그가 남긴 역대 기록들이다.

 

 통산 최다경기 출장 2,135경기    통산 최다타수 7,332타수

 통산 최다홈런 351개                 통산 최다루타 3,879루타

 통산 최다안타 2,318개              통산 최다2루타 458개

 통산 최다타점 1,389점              통산 최다사사구 1,380개

 통산 최다득점 1,299점              9시즌 연속 3할 기록, 13년 연속 올스타 선정

 

어떤가! 가히 이쯤되면 현역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라고 안할수가 없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구단에선 은퇴를 종용하고, 본인 스스로도 야구생활을 회상하며

자신은 단 한번도 1등의 자리에 서본적이 없다고 회고하고 있다.

 

1993년 해태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함께 입단한 이후로 이종범이 1998년 일본리그에

진출할때까지 이종범의 그늘에 가려 2인자로 머물렀고, 이종범이 가고나자 1995년에

입단한 이승엽이 일약 1인자의 위치에 올라서는 바람에 양준혁은 매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도 항상 2인자의 소리를 들어야했다. 조금은 이해할수 없었던 그의 은퇴.

그리고 올해 양준혁의 책이 나왔다.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 정말 멋진 선수다. 난 이 책을 읽고 양준혁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화려한 선수시절보다 은퇴한 이후에 팬이 한명 더 생긴 셈이니, 비록 섭섭한 은퇴였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 누가 아는가, 이 책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명

의 팬이 새로 생길지...

 

보통 성공한 사람들이 회고록을 내고, 자신만의 책을 내듯이 양준혁도 언젠가 책을

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다 올해 나오길래 기다렸던 터라 냉큼 읽게 됐는데 이전에

은퇴했던 마해영의 책을 읽을때와 또 다르다. 양준혁의 야구에 대한 열정, 사랑,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날지 아는 사나이다운 매력이 책 전반에 철철 넘쳐 흐른다.

제목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은 양준혁이 젊은 선수들, 특히 야구선수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고언이다. 나중에, 미래에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할수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라는 당연~한 말을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충심으로 전달하고 있다. 역시 옛 어른들 말이 틀린거 하나없다.

 

양준혁은 선수시절 평범한 땅볼 타구를 치고도 최선을 다해 1루까지 전력질주 했다고

한다. 솔직히 그건 몰랐다. 삼성팬이 아닌지라 그의 플레이를 자세히 지켜보지 않았으니.

아마 삼성팬이나 양신의 팬이라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소위 이름값 있는 고참선수의

경우 죽을게 뻔한 땅볼 타구때는 설렁설렁 뛰다가 아웃되면 중간에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준혁은 그러지 않았단다. 죽을게 뻔한 상황에서도 전력질주

하다보면 상대 수비가 당황해서 볼을 더듬을수도 있고, 악송구가 나올수도 있다.

그러면 내야안타가 되는건데 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않다. 그런데 양준혁은 2할9푼

타자와 3할 타자가 이런 내야안타로 구분되어질수 있다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해서 한 시즌에 20개 가량 내야안타를 얻어낼수 있다면 2할9푼

타자가 3할타자가 되는거다. 2할9푼 타자와 3할 타자의 차이는 엄청나다.

 

흔히 야구선수나 야구팬들은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길 좋아한다. 가만 들여다보면

야구경기가 우리 인생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거다. 이기고 있다고 방심하다가 역전패

하는 경우도 있고, 내내 질질 끌려가다 9회말에 역전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참

잘나갈때 예기치 않게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누구나 저 선수는 이제 틀렸다고 할때

기적처럼 재기해서 그라운드로 돌아오기도 한다. 지금은 실패속에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아직 인생 끝난게 아니다. 인생은 9회까지니까..

화려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사회인으로 돌아온 양준혁은 스스로를 가리켜

이제 1루를 돌아 2루에 다다르고 있는중이라고 표현한다. 나이 마흔둘, 인생을 80까지

라고 봤을때 이제 2루에 섰다는거다. 앞으로도 3루를 돌아 홈까지 가야하기에 할일이

많다. 누가봐도 성공적인 생을 살아왔다고 하겠지만 앞으로 홈까지 가는길에 넘어질

수도, 혹은 홈에서 아웃될수도 있다. 홈에서 세잎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을 멋지게

살아왔다고 할수있을거다.

 

이런 비유는 스포츠의 여러 분야에서 인용된다.

마라톤 선수는 마라톤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골프 선수는 골프

게임이 우리 인생과 흡사하다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만큼 끊임없는 노력없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연아, 박태환 선수들이 괜히 정상의 자리에 설수 없었

듯이 공부로 승부를 걸든, 연기로 승부를 걸든간에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때, 죽도록

힘들때 그 위기를 이겨내고(마라톤), 중간의 벙커와 연못을 조심하면서(골프) 나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것이 인생일 테니까...

 

양준혁은 은근히 이승엽을 향한 질투로 힘들었던 시기를 고백한다. 자신은 의식하지

않음에도 주위에서 끊임없이 이승엽을 거론하며 자기를 2인자 취급하는 것이 처음에는

싫었다는 거다. 이승엽이 워낙 괴물같이 홈런을 쳐대서 그렇지 양준혁의 성적도 평범을

뛰어넘는 성적인데 항상 이승엽의 그늘에 가려져 저평가 되는데 대해 질투심을 가졌

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순간 이승엽을 뛰어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2인자의 자리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고백은

바로 결혼문제다.

 

양준혁은 마흔둘이지만 아직 총각이다. 주위에서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닥달할 것은

뻔한 일인데 이제까진 '야구가 좋아서~' '팀이 우승하고 나면~' '최고가 되고나면~'

이런 이유로 결혼을 미뤄왔는데 이제는 더이상 댈 핑계가 없어졌으니 어떡할건지..

자기는 혼자 사는게 편해서 굳이 결혼의 필요를 못느끼겠다면서도 나이가 몇이되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가십성 멘트를 책의 에필로그에

제목으로 할애하면서~

 

 

 

참 솔직하고, 멋진 남자다. 나, 양신의 팬이 되고 말았다.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양준혁
출판 : 중앙북스 20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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