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본영화,읽은책

어린왕자가 생각나는 그림소설 '공간의 요정'

참 독특하다.

문화잡지 <1/n> 편집장 이라는 김한민의 새작품. 만화도 아니고, 소설이라고 보기도

힘든, 그래서 가벼운 '그림소설' 정도로 표현해야 할것 같다. 이전에도 <혜성을 닮은 방>

이라는 작품을 펴냈다고 하는데 난 이번 <공간의 요정>을 처음으로 접한 셈이다.

 

 

 

항상 무겁고,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고, 스케일이 큰 소설들만 보아오다가 이처럼 작고,

귀엽고, 가볍고, 상상력이 풍부한, 유아틱한 성인소설을 읽으니 이 또한 참 매력이 있다.

등장인물은 나, 요정연구가인 아빠, 아빠의 비서이자 요정을 사랑하는 우직한 청년 우고,

온 도시를 정비하고 개발하면서 똑같이 획일화된 외관의 성형도시를 추구하는 시장,

그리고 아빠의 여친 아줌마가 등장인물의 모두다.

 

  

 

일단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다. 요정이란 소재를 택한 것도 그렇지만, 요정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이 무한한 상상속에서 탄생했다. 이른바 '공간의 요정'

사람이 어떤 특정 공간을 좋아하게 되면 그곳을 자주 찾게되고, 그러다가 좋아하는 공간

에서 잠을 자게되면 사람과 공간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난다. 그 아기들이 요정인데, 아주

작아서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지만 공간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요정들의 생존환경은

까다로운 편이어서 고기냄새, 통유리건물, 엘리베이터, 군중, 휴대폰, 하이톤 여자목소리,

가래뱉는 소리, 확성기, 너무 밝은 조명, 전자음, 텔레비젼, 담배냄새, 공사장소음, 자동차

소리들을 못견뎌하고, 태어난 공간을 떠나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 이들이 먹는건

시지렁이가 쓰는 '시'를 먹고사는데, 그럼 또 시지렁이는 뭐냐..

 

일반 지렁이에게 아침, 저녁으로 시를 읽어주며 키우면 1년에 한두번, 만마리당 한마리

꼴로 시지렁이로 변하게 되는데 이 시지렁이가 지나간 자리를 살펴보면 미세하고 고운

가루물질을 발견할수 있고, 이걸 요정들이 먹고 산다는 설정이다. 참 해괴하면서도 독특한

상상력의 극치 아닌가~

 

하지만 짐작하다시피 도시성형전문가인 신임시장이 당선된 후로 도시 곳곳의 추억이 깃든

건물들이 무너지고 획일화된 모습의 고층빌딩으로 이루어진 똑같은 외모의 도시로 변해

가면서 요정들은 살던 집을 잃고 죽어나가게 된다. 또 요즘 현대사회가 얼마나 감정에 메말라

있던가~ 자극적인 영화에만 집착하지 누가 시를 쓰고, 누가 시를 읽고 산단 말인가~

이러다보니 시지렁이들도 줄어들게 되고, 요정들은 갈수록 개체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평생을 요정연구에 몸바쳐온 아빠는 인공적으로 요정들을 번식시키려는 시도를 하게되고

이 과정에서 아빠의 조수 우고와, 아빠가 동물원의 특정공간과 사랑에 빠져 낳았다고

고백한 나(사실은 나도 요정이다) 사이에 둘만의 비밀스런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찌보면 황당무계하고 소설같지 않은 상상력의 낙서같은 이야기지만 이 역시 기존의

자극적인 소설들에 익숙한 시각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가끔은 동심으로 돌아가 이같은

소설을 즐기는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꼭 셍떽쥐베리의 '어린왕자'만 최고라고 할게아니라

김한림의 '공간의 요정'에서도 어린왕자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을것이다. 이번 휴가기간에

간단하게 한권 읽을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공간의 요정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한민
출판 : 세미콜론 2011.06.10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