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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쎄시봉 멤버들, 그리고 조영남의 이야기 '쎄시봉 시대'

어느날 운전중에 습관처럼 라디오를 켰는데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가

흘러나왔다. '조영남과 친구들'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게스트로 나온 이들이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였다. 이들이 모이다보니 주로 화제가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추억담이었고, 입담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네사람(조영남까지)이 쉴새없이

터뜨리는 유머와 재치에 한참동안 웃으면서 라디오를 들었었다. 간간이 직접 들려주는 통기타

반주의 노래들도 매혹적이었고...그렇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라디오를 들었고, 프로가 끝났었는데,

아련이 잊어갈 무렵 이번엔 티비에서 다시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거다. 유재석, 김원희가 진행하는

'놀러와'에서였다. 그야말로 쏙 빠져들어 정신없이 박수치며, 얘기에 귀기울이면서 그렇게 특집

프로를 보게 되었다. 아마 설 특집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이같은 현상은 나뿐만 아니었는지 다음날

인터넷이 온통 쎄시봉과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기사로 난리가 난 거다~

그후로도 조영남은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출연을 했고, 이들 쎄시봉으로 명명되는 팀들은

여기저기 꽤나 불려다니며 추억의 포크송을 들려주며 옛추억속으로 시청자와 청취자들을 이끌었다.


이같은 쎄시봉 인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두고 이번엔 각종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각각

원인을 규명하기 시작한다. 쎄시봉 열풍~ 이는 요즘 컴퓨터 기계음에 식상해하고, 똑같이 생긴

남녀 아이돌 그룹들에 질린 젊은층들에게는 60, 70년대 포크송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거고, 30, 40,

50대 중장년들에게는 옛추억에 잠기게 하는 향수를 느끼게 해준게 큰 이유라고들 한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이들 쎄시봉 가수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작사, 작곡을 하는데다, 큰 의미나 가치를 두고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게 아니라 젊은시절, 재미로,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자기들끼리 부르면서

즐기는등 자유로움이 듬뿍 묻어나는것도 큰 매력일게다.


쎄시봉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각종 책들이 서점에 쏟아져 나왔다. 라디오와 티비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지라 나도 쎄시봉의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고싶어 한권을 집어 들었는데 그 책이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였다. 지난번에 블로그를 통해 소개했던 책이다. 그런데

기대했던것과 달리 그 책은 쎄시봉 멤버들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라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중장년층의 대중문화 코드를 그 이전의 트로트 세대, 그 이후 서태지 세대와 비교함으로서 대중

문화의 변천사를 되짚어 보는 책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그런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소개하는 책,

조영남, 이나리 공저 '쎄시봉 시대'와 같은 책이다.


조영남과 일명 '조영남 여친그룹'의 일원이라는 중앙일보 이나리 기자가 함께 조영남과 쎄시봉

멤버들과의 인연, 추억들을 되짚어 가며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종로 음악다방

이던 쎄시봉과의 첫인연,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얽힌 조영남의 추억,

사랑, 음악 이야기를 담고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을 한사람씩 목차에

끼어넣어 글을 썼는데 그들이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김성수 성공회 신부, 그리고

윤여정이었다.


한쪽으론 위대한 음악적 자질과 함께 미술쪽에도 재능을 발휘하는 예술인 으로서의 조영남과

또 반대편에서는 누구의 구속도 받기 싫어하고 천방지축, 안하무인, 아나키스트적인 삶을

추구하는 말썽많은 조영남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기도 하다. 어느 쪽 면을 더 크게 보느냐에

따라 조영남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최근에는 특히 전부인인 윤여정을 자꾸

방송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안티팬들을 더 많이 거느리게 되었다. 무릎팍도사에서 윤여정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자신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고개를 숙이더니, 이 책에서는

아예 한 챕터를 할애해서 윤여정과의 인연을 풀어냈다. 그러나 첫만남과 젊은시절 쎄시봉에서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던 시절들의 회상이지 결혼이후의 갈등이나, 이혼에 관한 얘기는

빠져있다. 어찌됐건 윤여정을 향한 조영남의 지금 심정은 '미안함'으로 귀결되는듯 하다.

윤여정을 소개하는 문구에는 그야말로 최상의 단어들로만 조합되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처음 본 윤여정은 발랄했고, 예뻤고, 귀여웠고, 똑똑했다...(중략)...쭉 뻗은 몸매에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남정네들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들었고, 거기다

그녀는 주위사람들을 즐겁게 해줄줄 아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라든지,

"내가 처음 만난 꼬마아가씨 윤여정을 좋아한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녀는 말 그대로

젊고 예쁘고 착하고 똑똑했다...(중략)...윤여정은 그 몇가지에 한가지가 더 추가된 여자다.

현명함이 추가된 여자다" 라고 하는걸 보면.


또 한명의 공저자 이나리 기자가 보는 조영남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조영남이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장 비슷한 평가가 되겠다.


"사실 조영남을 그저 가수로만 칭하는건 대단히 안일한 발상이다. 그는 다재다능하다.

팔방미인이다. 말도 되고, 글도 되고, 노래도 되고, 그림도 되고, 연기도 된다. 73년 첫 전시회

이래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수십회 가까이 작품전을 열어온 중견 화가다.

책 십수 권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중엔 작가 이상의 시 세계에 대한 유니크한 해석을

담은 <이 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2000년대에 나온 가장 잘 쓰인 미술입문서중 하나인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또 <예수의 샅바를 잡다>같은 신학 관련 서적도 있다..(중략)

..그런데 이런 그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나잇값 못하는 노인네', 과대포장된 딴따라, 심지어

난봉꾼 정도로 여기는 이유는 뭘까. 상당부분 자초했다 볼 수 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2005년 펴낸

책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같은 것들이다. 그의 지인이나 책을 실제 읽은 이들이야

그가 말하는 '친일'이 '대범한 극일'의 또다른 표현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대중이야

어디 그런가. 딴 걸 떠나 굳이 연예인이 친일이니 극일이니 그런 얘길 꺼낼 이유가 뭐냐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것들, 숨김이 없고, 대책없이 솔직하고, 어른인 척 할줄 모르고, 남이 뭐라하든

내 갈 길 가는 고집이야말로 대중이 그를 50년 가까이 소비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힘이다"


지난주말 조영남 전시회에서 보고 온 작품 '여친용갱'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됐을 때에도 참 말이 많았었다. 노인네가 저렇게 많은 여자들을 여친으로

뒀네~부터 시작해서 주책이네, 뭐가 자랑이라고 실제 인물을 공개하느냐~ 등등.. 그런데 참으로

웃기는 얘기다. 실제 이 작품은 유머와 해학의 극치다. 진시황의 병마용갱에 자신과 친한 여자

연예인들의 얼굴을 코믹하게 합성시켜 웃음을 유발하는 익살이 돋보이지 않은가~ 이 '여친'들

속에는 이경실, 이성미, 최유라같은 인물도 있지만 보시다시피 우측에는 장나라 특집으로 꾸며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일부 언론과 악플러들은 이들 모두를 조영남의 정부 취급하듯 글을 쓰고

악플들을 단다. 나 또한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이란 책을 출간 당시 읽었지만, 왜 책

제목을 그렇게 자극적으로 지었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친일선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후로 역시나 일부 언론과 악플러들은 책도 읽어보지 않은채 '조영남은 친일파다'

라고 떠들어 댄다. 애초에 이런 평가를 무서워하거나 신경쓸 사람도 아니지만 말이다.


책은 쎄시봉 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저자가 다름아닌 조영남인 관계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조영남의 시각으로 비쳐지다 보니 조영남에 관한 얘기가 길어졌다. 어쨋든 방송에서 못다한 그시절

재밌는 일화나 뒷얘기들, 그리고 인간 조영남에 대해 궁금증이 있다면 어느정도 해소시켜 줄만한

책이다.

쎄시봉 시대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조영남,이나리
출판 : 민음인 20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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