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재익의 소설을 좋아한다. 처음으로 접했던 '카시오페아 공주'를 읽는 순간 반했고,
두번째로 '압구정 소년들'을 읽고 팬이 됐다. 그후로도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을 읽었고,
'심야버스 괴담'에 이어 '아이린'까지 최근 출간된 그의 소설은 모두 읽게 됐다. 대중의
코드를 잘 읽고, 쉽게 말해 재밌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이재익이다. 그러다보니 다소 글이
가볍고,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지 않아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지 못할것 같은데, 역으로
보면 우리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렵거나 무겁지 않고, 쉽게, 재밌게 읽을수 있는 소설의
재미를 듬뿍 안겨준다고 할수도 있겠다.
카시오페아 공주에서 가능성을 잔뜩 기대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아이린'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소설의 기교를 활짝 꽃피웠다고 할수 있을것 같다. 내가 뭐 문학이나 소설에 대해
워낙에 잘 모르기도 하지만 사실에 기초한 소재 선택,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
설정으로 작품의 사실감을 높였고, 대학생과 기지촌 여성, 카투샤와 미군등 대조적인 인물
들을 서로 엮어놔서 갈등을 고조시켜 나간다. 거기다 마지막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구도까지! 어떤 소설들을 보면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서 갈등을 증폭시켜 나가다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이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용두사미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김진명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재익은 '아이린'에서 마지막까지
허탈한 결말을 짓지않고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이러니 어찌 최고라고 하지않을수 있을까!
단연코 이재익의 지금까지 소설중에 최고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재익의 소설이 갈수록 진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전이란건
소설속에만 나오는게 아니더라~ 마지막 장을 보니 이 소설이 2001년 이미 출간했던
'노란잠수함'이란 소설을 재편집한거라고...살은 더 붙였겠지만 뼈대는 이미 2001년에 쓴
작품이라니 꼭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하고 있다고 볼수만은 없겠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화는 '윤금이 사건'이다. 모두들 기억하고 있을게다. 미군을 상대로 한
집창촌 여성이었던 윤금이씨가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던 사건인데, 사체를 발견했을 때,
그 끔찍함에 치를 떨게 했었던... 알몸 상태로 온 몸엔 폭행으로 멍이 들어있었고, 음부엔
콜라병이 박혀있었지만, 그 안으로 맥주병 두개가 더 있었다. 항문엔 우산대를 박아놨는데
이처럼 잔인하고 끔찍한 살인의 동기가 그저 만취한 미군의 '장난'이었다는게 더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었다. 그냥 이유도 없이 재미로, 그토록 잔인하게 한 여성을 죽인거다.
자기와 동일한 사람으로 보지않았다는 말 아닌가. 그냥 가지고 놀다가 죽여도 되는 미개한
코리안으로 봤다는게 맞을거다. 이 사체 사진을 난 당시 대학교 교정에서 처음 접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한미주둔군 지위협정 SOFA'의 불평등한 조항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펼쳐졌고, 연일 반미 시위가 거리를 뒤덮었더랬다. 그 유명한 '양키고홈'이라는
구호를 필두로 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이 시작되는데 이재익 작가가 실제로 근무했던 카투샤의 경험을
토대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주인공과 미군간의 갈등, 사랑하는 여인인 아이린과의 이루어
지지 않는 사랑을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 때문에 한국이 평화를 누리며,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우리가 아니었으면 한국은 진작에 북한에 적화통일이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인들에게 대접받고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한미군 병사들의
인식과 여기는 한국땅이다. 한국땅에서 근무하면서도 한국인을 멸시하고, 불법을 저질러도
미군이라는 이유로 처벌조차 받지않는, 마치 정복군 행세를 하는 그들을 증오하는 주인공의
시각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뚜렷한 편이다.
표지에 그려져있는 여인이 아마도 아이린이 아닐까 싶다. 기지촌 여성이 백인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백인혼혈아. 숙명처럼 발버둥쳐도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엄마와 같은
양공주 생활을 하게되는 여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표지여성의 그림이 이재익의 첫 단편집
'카시오페아 공주'에 나오는 여성과 흡사하다. 아마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이상형으로
삼는 여주인공 모델의 이미지가 아닐까하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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