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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에로티시즘과 외설의 경계, 소설 '크래시'


크래시.

영국 작가 제임스 발라드 원작으로 이 작품이 나온후 영국에서는 호평과 혹평이 오가며 논란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1996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됐었고,

논란속에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흔히 야한 창작활동을 보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말들이 많은 경우를 볼수 잇는데 소설로 따지면 이 작품이야말로 외설적인 3류 소설이냐, 인간 내면의

외설성을 잘 표현한 수작이냐 분류하기가 힘들겠다.





1996년 <크래시>가 영화로 나왔을때 난 비디오방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그때는 원작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고, 또 작품성을 따져 고른 영화가 아니라 심심풀이 시간을 죽일 목적으로 대학친구놈들과 함께

대학가 비디오방을 찾았더랬다. 남자들 서넛이 모여 뭘볼까 한참 망설이다 그럴듯하게 (야~한) 표지의

이 작품을 선택하면서 기대감에 젖었었다. 하지만...



에로티시즘도 동양과 서양의 미묘한 차이가 있는걸까? 홍콩에서 만들었던 '옥보단'엔 환호하며 몰입해

빠져들던 우리들이 '크래시'를 보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저 주인공들을 향해 '뭐 저런넘들이 다 있나~'

했을뿐. 도무지 감정이 몰입되지도, 주인공들이 이해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보지못하고

다른 테잎으로 바꿔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말해 에로티시즘을 표방했지만 적절히

야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난해한 에로티시즘이었다.


이제 15년이 지나고서야 원작 소설로 다시 만났다. 그때 잠깐 봤던 영화와 지금 나이들어 원작을 보면서

어떤 차이가 느껴질지 내심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느낀 소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진 발라드와 캐서린 부부.

그리고 이들에게 나타난 본과 헬런. 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성생활이 아니라 '변태'적인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해낸다. '성욕'이란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일진대 이렇게도 변형이 되고,

변질될수도 있구나. 영화를 볼때처럼 소설을 읽기도 뭔가 불편하다. 특히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작가의

이름과 동일한 제임스 발라드라 붙여 얼핏 독자들에게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착각하게도 만든다.

또 모르겠다. 실제로 원작자가 소설속 주인공과 같은 성적 취향을 가졌는지도... 왠만한 성적 자극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다가 자동차 사고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고 이후 차사고로 생긴 상처를 볼때마다 흥분

하게 된다는 설정, 이를 느끼고 싶어 달리는 차안에서 섹스를 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내가 미처 놓치고 있는 뭔가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 작품이 1996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칸 영화제에 출품됐을때 심사위원장이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이 영화가 대상을 받지못하자 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일화도 있다하니, 전문가, 예술가

들로부터는 인정을 받았다는 뜻일게다. 아마도 인간의 원초적이면서 변태적인 성욕을 극한의 상황에서

끄집어내 당시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할 외설적인 표현을 해가며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데서 주는 후한

평가 아니었을까? 다만, 내가 작품을 접하면서 이같은 위대한(?) 예술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뿐..



아마 책을 접하지 않은 독자가 이 리뷰글을 읽고나면 더 혼란스러우면서도 궁금해질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읽어보시라. 시작부터 끝까지 에로티시즘을 표방하고 있으면서 수도없이 변태적인

베드신이 난무하는 이 작품을~ 하지만, 이 점을 유념하시길.. 에로틱함을 너무 기대하고 봤다가는

나처럼 다소 실망할수도 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크래시
국내도서>소설
저자 : 제임스 발라드 / 김미정역
출판 : (주)그책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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