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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소설가 김별아의 심리치유 산행기



풋~ 웃음이 난다.

우연의 일치인지,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김별아란 소설가의 책을 이번에 두번째로 읽게되는데 두 작품이 모두 작가의 자전적 내면 고백 에세이다. 도대체 몇년전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아마 십년도 넘었으리라) 시간날때 서점을 서성거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던 취미가 있던 나는 시내 대형서점에서 어슬렁 거리며 소일하다 '내마음의 포르노그라피'란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보게됐다. 소위 '빨간책'이라 불리며 사춘기 남학생들을 두근거리게 만들던 포르노그라피란 단어를 버젖이 책 제목으로, 그것도 여류작가가 내세운 것이다. 김별아라고 하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이었다. 뭔가 자극적인 내용을 기대하며 그자리에 서서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기대했던것 만큼 야한 내용이 충족시켜주지도 못했지만) 그 책으로 김별아란 작가의 이름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후 잊고있었다.

 

2005년 책 '미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다시 김별아란 이름을 듣게 되었다. 난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 신인 여류작가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있었나 보다. 얼마전 드라마로도 방영된 '선덕여왕'은 미실의 일대기를 그려 다시한번 소설 '미실'을 불티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비로소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김별아의 신작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읽게 됐다. 서두에 왜 내가 웃음이 났을까.

김별아의 저서는 아주 많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신촌부루스>, <삭매와 자미>, <김순남>, <개인적 체험>, <축구전쟁>, <논개>, <영영이별 영이별>, <크라잉 넛>, <톨스토이처럼 죽고싶다> 등 아직 소개를 다 하지 못했을 정도로 많은 책을 펴냈다. 주로 소설이 많고, <크라잉 넛>처럼 대중문화 비평서도 있다. 그리고 또 자전적인 에세이도 있는데 하필 내가 읽은 두 권의 김별아 책이 모두 작가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를 소개하고, 불행했던 과거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심리를 치유하려는 에세이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영원히 내 머리속에 김별아란 작가는 멋진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라기보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을 평생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는 히스테릭하고 예민한 여성작가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참 재밌게 읽었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도통 무슨 책인지 감이 안온다. 얼핏 보면 아픈 청춘들에게 바치는 자기계발서인 것도 같고 심리 에세이 같기도 하다. 어쨋든 지금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책인듯 싶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책을 통해 김별아는 아픈 과거와 단절하고,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있는건 맞으나 엄밀히 이 책은 산행기다.

백두대간이라 불리우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산맥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산행을 하며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통해 삶을 정리해보고 머릿속을 정리하려던 작가의 희망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산행은 생각을 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는게 아니라 아무 생각도 나지않고,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오만가지 상념과 고통을 싹 비우는 계기가 된것이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당장에라도 쓰러질것만 같은 극한상황, 걷고 걷고, 또 걷는 산행에서 과거와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아무생각없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걷다가 보면 머릿속이 싹 비워지고, 깨끗해지고 그러다가 산 정상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삶에 희망을 갖게되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이번 산행을 하기 전까지 작가 김별아는 등산을 무지 싫어했다고 한다. 아니 싫어했다기 보다는 무의미한 고생이라고 했다. '뭣하러 산에 올라요? 결국 내려올 것을...' 아마 김별아 뿐 아니라 많은 여자분들이나, 또는 산을 싫어하는 분들의 생각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단순한 고생이라고 생각했던 등산에 대해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생각이 미친다.


'뭣하러 사랑을 해요? 결국 헤어질 것을...'

'뭣하러 살아요? 결국 죽을 것을...'


산에 오르는것은 결코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었다. 결국 내려오고 말것을 굳이 뭐하러 고생하며 올라가냐는 물음은 죽을것을 뻔히 알면서 뭣하러 아둥바둥 살아가냐는 질문과 다름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산을 오르면서 작가는 많은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읽다보면 작가가 순탄치만은 않은 굴곡진 삶을 살아왔음을 알수 있었다. 그때 무심코 야한 내용을 기대하며 읽었던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도 이 책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줄기차게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싶은 얘기였던 것이다. 그 얘기가 무엇일까? 산행기라는 형식을 빌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위에서 소개한 문구 아닐까? 산에 오르면 어차피 내려올거 뭣하러 오르느냐에 대한 답.

 

그래도 사랑을 해야한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