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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기묘사화'를 읽으며 조광조를 추억한다


 


조선 4대사화중 세번째 편인 '기묘사화'를 읽었다.

4대사화란 무엇을 말하는걸까. 사화(士禍)란 '사림(士林)의 화' 의 준말이다.

조선중기 신진 사류들을 사림이라 칭하였는데 쉽게 비유하자면 젊고, 소신이 강한,

개혁파 선비들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이들과 대칭되는 쪽에 있던 무리는 훈구파라

할수있는데 기득권을 가지고 보수적인 성향을 띤 공신들쯤? 사화는 사림들이

개혁을 주창하다 훈구, 척신들에게 정치적 탄압을 받아 많은 이들이 죽거나 귀양을

가는등 큰 화를 입은 사건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크게 4번의 사화가 있었는데

1498년 연산군 4년때 무오사화가 첫번째고, 1504년 연산군 10년때의 갑자사화,

1519년 중종 14년때 기묘사화, 1545년 명종 1년때의 을사사화가 바로 그것이다.

  

 기묘사화와 조광조

  

기묘사화하면 특히 연관지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조광조다.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도

굳건한 심지를 가지고 극단적인 개혁정치를 실현하다 왕과 훈구세력의 미움을 사

죽게되는 조광조의 이름을 한번씩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데 종종 중종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주요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사를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삼국시대를 논할때는 핵심적인 부분이 3국

간의 전성시대 영토확장과 전쟁사이고, 통일신라 시대때는 찬란하면서도 오늘날

기준으로 문란했던 문화가, 고려시대때는 수많은 외침을 극복해내고 자주국가를 지향

하는 과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조선시대는 역사 자체가 당쟁과 당파싸움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붕당정치의 폐혜를 빼놓을수 없겠다. 얼마전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조선의 숨은왕'이란 책이 있었다. 조선중기 이후 자리잡은 당파싸움의 기원을 밝히고

당시 역사적 인물들의 사상을 다룬 책이었는데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등으로 갈려

국론이 양분되어 가는 과정이 담겨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정당정치와 크게 다를바

없어 보이기도 했다. 기묘사화가 일어난 시기는 중종때로 아직 당파싸움이 시작되기

이전이지만 '당'이 형성되지 않았을 뿐 이때도 여전히 떼거리 정치는 진행되고 있었다.

 

중종은 반정으로 왕이 된 인물이다. 성종의 둘째아들로 진성대군으로 봉해져 살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박원종, 성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반정을 일으키고 왕으로

추대된다. 자력이 아닌 신하들의 도움으로 왕이 된 탓에 재임기간 내내 반정공신들을

누르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기묘사화 역시 이로인해 발생하게 된다.

조광조는 훈구세력을 소인배로 규정하고 훈구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왕권을 통한 왕도

정치 실현을 추구하면서 중종의 신임을 얻게되고, 향악실시, 미신숭배 타파를 위한

소격서 폐지, 과거제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 현량과 설치를 착착 실현시키며 민심을

얻는다. 그러나 철인 군주의 이상을 왕에게 설교하려 하고, 왕이라 하더라도 소인배가

아닌 대인이 되어야 하며, 왕도 도덕적으로 완벽할 것을 요구하고, 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소위 계급장 떼고 활발히 논의하는 경연의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중종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조광조의 영정. 출처(
한양조씨정통대종회, 김유봉의 '사는 이야기'에서 퍼옴)

 

조광조의 개혁정치의 근본은 기존 기득권 세력인 훈구세력을 몰아내려는데

있었기에 자연스레 훈구세력과는 적대관계가 형성되었고, 조광조의 추천으로

현량과를 통해 관직에 임명된 수많은 젊은 사림들이 조광조를 중심으로 모여

급진적인 개혁을 펼치자 훈구세력들은 긴장할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왕의

총애가 깊어 어찌 하지 못했는데 결정적으로 훈구세력의 존재이유이자 정당성인

중종반정 공신들의 위훈삭제 사건(1519)이 기폭제가 되어 훈구세력이 폭발하게

된다. 이들은 폭군 연산군을 쫒아내고 중종을 왕으로 세운 공을 인정받아 그간

호위호식하고 왕권과 맞먹는 권력을 누려왔는데 조광조는 이들 공신 가운데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많으므로 이들을 가려내 위훈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전체 공신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76명의 위훈을 삭탈하고 제공됐던 토지와 노비를

환수해 버렸다. 이에 존립의 위기를 느낀 훈구파의 남곤과 심정, 홍경주등이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준비하게 된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

  

남곤, 심정등의 훈구파는 홍경주의 딸인 희빈홍씨를 통해 궐내 동산의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이라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한 후, 이를 천심이라고 소문을 내어 중종의 귀에

들어가게 한다. 주초위왕의 주초(走肖)는 조(趙)를 풀어쓴 글자로 주초지왕은 '조씨가

왕이 된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백성들의 민심이 조광조를 향하고, 젊은 사림들은

왕권의 권위에 도전하며, 심지어 왕을 가르치려 드는데 반감을 가지고 위협을 느끼던

차에 주초지왕 사건으로 인해 중종은 완전히 조광조에게 등을 돌리고 만다.

조광조가 역심을 품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리하여 조광조에게 역모의 혐의를 물어 귀양을 보냈다가 사사시켜 죽이고, 김정,

기준, 한충, 김식등의 사림들은 모두 귀양가서 사형당하거나 자결하였으며, 수십명이

유배를 가고 파직당했다. 이 때 희생된 사림들을 '기묘명현'이라 칭한다고 한다.

 

책 '기묘사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매우 상세하고 흥미롭게 풀어냈으며

조광조를 포함해 기묘사화때 희생된 기묘명현들의 얘기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곳에서 예전 티비 드라마로 봤던 SBS의

'여인천하'가 생각난다. 문정왕후 역의 전인화와 정난정 역의 강수연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지만 중종과 조광조, 그리고 심정,남곤등의 훈구파들의 열연도 돋보였던

드라마였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시대에 조광조가 활동했다면 그가 추구했던

이상향이 급진개혁으로 분류되지도 않을거라고 하는 얘기도 있다. 오히려 중도좌파

쯤 되지 않겠냐는..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활동했던 시대에서는 아마 급진좌파로

분류된 모양이고 훈구파들에게는 좌파, 빨갱이로 보였나 보다.

그가 추구했던 개혁정책을 이 시대에 대입해 보면 대충 이런 식이다.

 

1. 대통령도 국민의 한사람이다. 청렴해야 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국민을 떠받들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철인군주의 꿈)

2.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소통하는 정치를 해야한다.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되고

   정책 입안부터 제도 개혁까지 모든분야를 장관 및 부서 실무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토론하자!(경연제도 활성화)

3. 사교육에 치우친 현행 입시제도를 개혁하고, 수능 점수만이 아닌 학교장 추천이나

   체험학습이나 특성화 점수를 반영하도록 대학 입시제도를 개선하자!

   (과거제 폐지 및 현량과 설치)   

4. 농가 부채를 탕감하고 농협등의 과다한 이자비용을 낮춰주며 농민들이 자생할수

   있도록 지원하라!(향악 설치 및 조세제도 개혁)

5. 국가유공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엉터리 가짜 유공자가 남발되는것을 막고

   부정하게 유공자에 책정되어 혜택을 받은 이들에겐 그간 받은 혜택을 회수하자!

   (반정 위훈 삭탈)

6. 인사청문회를 강화하여 자질이 부족하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은 고위공무원에

   임명이 안되도록 하자!(공직자 도덕성 강조)

 

어떤가? 이정도면 급진 좌파에 빨갱이로 불릴만 할까?


기묘사화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한국인물사연구원
출판 : 타오름 201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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