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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영국의 역사를 바꾼 희대의 여성 앤 볼린과 '천일의 스캔들'




어제 잠깐 언급을 했었던 앤 볼린에 대해 이야기 하자니 시작부터 두려워진다.
글이 무지 길어질것 같은 불안감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영국역사 이야기가
어디까지 꼬리를 뻗어갈건지... 지금 글을 시작하려는 나도 모르겠으니까~
먼저 책 소개부터 해야겠지.
필리파 그레고리의 '천일의 스캔들'이다.

천일의 스캔들 1
국내도서>소설
저자 : 필리파 그레고리(Philippa Gregory) / 허윤역
출판 : 현대문화센타 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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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런 책도 있었다.

천일의 앤 불린 1
국내도서>소설
저자 : 필리파 그레고리(Philippa Gregory) / 허윤역
출판 : 현대문화센타 200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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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여러 버젼으로 제작되어졌는데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아마 영국 전체 역사를 통틀어 이 시기가 가장
극적인 시기였지 않나 생각된다.

영국 볼린가의 언니 앤 볼린과 동생 메리 볼린, 그리고 두 여인을 사랑했던 왕 헨리8세
와 함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형이 죽은후 형수 캐서린과 결혼해 살던
헨리8세는 아들에 대한 욕심이 많았었나보다. 캐서린과 사이에 딸만 두고 있었는데다
나이많은 형수보다 젊고 매혹적인 여성들에게 자주 눈을 돌렸다. 그런 헨리8세를
이용해 가문의 부흥과 영화를 누리고자 앤 볼린은 헨리8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정작 헨리8세가 마음을 빼앗긴건 동생인 메리 볼린이었고, 이들은 불륜의 동거를
하다 메리가 임신을 하게되었다. 그런데 유산의 위험때문에 헨리8세와 동침이 어려워
지는데 이때 언니 앤 볼린은 다시 헨리8세를 유혹하고 마침내 헨리8세의 마음을 뺏는데
성공한다. 왕비 캐서린, 자기 아이를 가진 메리 볼린, 두 여자도 헨리8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앤 볼린을 취하려 몸이 다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꼭 앤은
몸을 주지 않았다. 정비가 아닌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봤자 아이는 왕의 아들이면서
불쌍한 삶을 살지 않겠냐며 캐서린과의 이혼을 요구하는 앤 볼린...

하지만 당시 로마 교황청의 영향 아래에 있던 가톨릭 국가에서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톨릭에서는 한번 결혼하면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헨리8세는 캐서린이 원래 형의 부인이었으므로 결혼 자체가 성립될수 없는 것이
었으니 무효라고 주장하는데 끝내 교황은 정상적인 결혼이었고, 이혼을 허락할수 없다고
하자 헨리8세는 과감하게 로마 가톨릭에서 독립하여 영국 성공회를 만들어 버렸다.
이는 당시에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로서 이 일로 유럽 가톨릭국가들로부터 영국은
이단의 나라로 배척받게 되는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앤 볼린을 왕비로 삼고자 했던
헨리8세의 앤을 향한 사랑과 집념은 무서운 것이었다. 한편 헨리8세의 아이를 임신했던
메리 볼린은 아들을 낳았지만 역시 앤 볼린에 눈이 먼 헨리8세에는 사랑했던 여자도,
자신의 아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나 보다. 왕비 캐서린과 함께 메리 볼린도 내쳐진다.

마침내 앤 볼린은 자신의 야욕대로 헨리8세를 움직여 왕비가 되었으나 아들이 아닌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아들을 바라는 헨리8세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아들을 바라며 두번째 임신을 하였는데 이번엔 유산이 되고 말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앤은 세번째 아이를 갖지만 사산...1533년에 헨리8세와 결혼해 그 해 딸 엘리자베스를 낳고
1536년까지 3년간 아들을 낳으려 노력했지만 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고, 유산과 사산을
반복하자 헨리8세의 애정도 식어만 갔다. 1536년 아들을 사산한 후에도 무리해서 계속
임신을 하려했지만 마음이 떠난 헨리8세는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았는데 그러자 앤은 
친 남동생을 궁으로 불러들여 잠자리를 갖으려한다. 얼핏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일이지만
왕궁에 외간 남자를 들이기가 어려운 반면 가족은 가능했고, 헨리8세도 형수와 결혼한걸
보면 그당시 왕족간의 근친은 지금의 도덕관념보다 더 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같은 소문이 돌다 마침내 헨리8세의 귀에 들어갔고 대노한 왕은 앤과 이혼하려
하지만 앤이 끝까지 동의하지 않자 부정한 행위를 이유로 앤과 남동생을 함께 처형해 버린다.
1533년부터 1536년까지 3년간의 왕비생활이었고 이를 가리켜 후에 '천일의 앤'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앤 볼린. 소설과 영화등에서는 야심이 강하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거칠게 없는 여성으로 묘사되지만 일각에서는 정말로 헨리8세를 너무너무 사랑했던 여인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에 소개된 내용이다. 또한 친동생과의 
불륜은 앤을 처형시키기 위해 설정한 누명이었다는 말도 있다. 멀쩡한 왕비를 처형하려면
극단적인 죄명을 씌여야 했는데 근친불륜이 그 죄목으로 적합해서 그랬다는...
그런데 여기까지는 이제 1막에 불과하다...

아무리 애정이 식었기로서니 자신의 아이를 낳고 삼년이나 같이 살던 부인을 처형시킬
정도로 무서웠던 헨리8세는 사실 이 시기에 다른 여인에게 마음이 팔려있었다. 끊임없이
눈을 돌리며 한여자에 만족을 하지 못했던 남자이자 그만큼 아들을 원했던 왕이었다.
캐서린에게서 아들을 얻지못하자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볼린에게 눈을 돌렸고, 앤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하자 다시 앤의 시녀였던 제인 셰이모어라는 여자와 눈이 맞은것이다.  
그리고 제인과 결혼하기 위해 앤과 이혼하려고 했으나 앤은 죽을지언정 이혼만큼은 할수
없다고 버텼고 이것이 결국 죽음을 맞게 된 이유였다. 1536년 헨리8세와 결혼한 제인은
마침내 1537년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에드워드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열흘만에 산후 후유증으로 죽고만다.



헨리8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왕이었다. 정식으로 결혼한 왕비만
여섯을 두었는데 여성편력이 심해서 결혼하지 않고 곁에 두었던 여성들까지 따지자면
몇이나 되는지 셀수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제인 셰이모어와의 사이에 낳은 에드워드를
빼면 아들이 없었다. 그나마 유일한 아들이었던 에드워드도 헨리8세가 죽자 9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15살에 병사하면서 대가 끊겼으니 결국 헨리8세의 아들욕심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또 재밌는게 아내 여섯명중 두명이나 처형시켜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앤 볼린과 뒤에 나올 캐서린 하워드.  제인 셰이모어가 죽은 1537년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제인이 죽은후 네번째 왕비는 1540년에 결혼한 또다른 앤이었다. 클레브스의 앤이라고 
불리는데 가톨릭에서 독립한뒤 영국은 가톨릭 국가 프랑스로부터 전쟁위협을 받고있었고,
벼르고 있던 신성로마제국도 호시탐탐 영국을 침범하려 하고있었기에 막강한 힘을 가진
개신교 세력을 끌어들이려 나라를 보호하려 했다. 그래서 독일지방의 클레브스 공국의 
공주였던 앤을 네번째 부인으로 맞았는데 두사람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나보다.
일화에 의하면 결혼전 왕궁의 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을 클레브스 공국으로 보내 앤 공주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고, 마음에 들어 결혼을 했는데 실물을 보고는 실망하며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애정없이 한 정략결혼이었고 인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결혼생활이 오래갈리가 없었고 6개월만에 이혼하게 된다. 이 시기에 눈치 챘겠지만 헨리8세
에게는 또다른 여인이 마음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인데 궁녀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하기 위해
앤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앤 역시 별다른 애정이 없었기에 이혼에 합의하고 궁을 나간다.
다섯번때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도 비운의 여인이었다. 첫번째 부인과 다섯번째 부인이
이름이 같은 캐서린, 두번째 부인과 네번째 부인도 이름이 같은 앤이었던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아~ 마지막 왕비였던 여섯번째 부인의 이름도 캐서린이었구나...
이 비운의 왕비 캐서린 하워드도 결혼 3년만에 남편 헨리8세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다.
결혼 당시 49세였던 헨리8세와 19살이었던 캐서린 하워드는 열렬이 사랑했다고 한다.
그랬기에 국가의 안위를 위해 행했던 정략결혼을 6개월 만에 이혼으로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뒤늦게 알고보니 이 캐서린 하워드가 궁녀시절 매우 문란한 성생활을
했다는게 밝혀지고 말았고, 결혼후에도 헨리8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궁중 악사, 요리사,
시종, 심지어 자신의 조카들과 끊임없이 외도를 해온걸 들켜 1541년 결혼 1년만에 런던탑에
위폐되었다가 1542년 참수 당한다.

마지막 왕비가 되는 캐서린 파도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1543년 헨리8세와 결혼했는데
이미 결혼전 두번 결혼한 전력이 있었고, 두번 다 남편을 사별했다. 두번째 남편은 1542년
죽었는데 1년만에 헨리8세에게 세번째 시집 가게 된것이다.  그리고 결혼전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헨리8세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제인 셰이모어의 오빠 토마스 셰이모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캐서린 파는 헨리8세가 죽을때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조하며 살았고, 1547년 헨리8세가 죽자마자 바로 그해 토마스 셰이모어와 네번째로
결혼한다.

앤 볼린에서 시작된 얘기가 헨리8세들의 여인 전체 얘기로 번져가버렸다. 이만큼 길어졌으니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만 끊어야 하는데 아직도 재밌는 이야기가 많으니...
아쉽지만 이만 접고 내일 포스팅에서 다뤄야겠다.
내일 이야기는 헨리8세의 자식들이자 후임 왕들의 얘기 위주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