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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애잔한 감동 수필집, 목성균의 '누비처네'


"오빠, 처네 살건데 이거 어떤가 봐줘봐."

한참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여기저기 손품을 팔던 아내가 티비를 보고있던 나에게 던진 말이다.

"응? 처네? 처네가 먼데?" 하자  "처네 몰라? 애기 안거나 업을때 매는거 있잖아~"

"그건 포대기 아냐?" 쌩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내. 그때 난 ’처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됐다. 그냥 나 어렸을땐 포대기로 통했는데 원래 이름이 처네였나 보다. 그런데 이게 또

요즘에는 현대식으로 개량되어 나온다. 예전 투박한 네모모양에 양쪽에 긴~ 줄이 달린 모양이
아니라
아기띠처럼 어깨나 허리에 둘러 맬수 있게, 디자인도 색색들이 예쁘게 변형되어 나와
있다.
2007년 12월 태어난 둘째 딸을 아내는 그렇게 처네에 업어 키웠다.





그리고 오늘 ’누비처네’라는 책을 만났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우리 아이들을 업어 키우던 생각을 먼저했고, 그 옛날 포대기에 싸여

어머니 등에 업혀서 자라던 추억도 생생히 생각이 났다. 사실 수필이란게 학창시절 막연히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붓가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글’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좋아한다. 왠지 수필을 읽으면 따뜻해지는것만 같아서...그런 이유로 지금도 나는 수필이나 에세이류의 책들을 좋아한다.

 

수필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피천득을 들 수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수필작가일텐데 목성균을 아느냐고 물으면 수필을 좋아한다는 독자들중

몇이나 목성균 이름 석자를 알고있는 사람이 있을까? 문예창작과를 다니다 중퇴한 후 산림직

공무원으로 2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한 후 나이 57세에 비로소 등단한 작가..

2003년 65세 나이에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을 냈고, 다음해 3월 그 작품으로 ’현대수필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제 막 수필작가로 이름을 떨치려 할때 5월 발병한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다.

그런데 정작 살아계실때 빛을 못보던 그의 작품들이 돌아가신 후 빛을 보기 시작했으니 죽은후

유작들을 모아 <생명>이 두번째 수필집으로 출간된다. 대표작들을 추려 만든 선집으로는

<행복한 고구마>, <돼지불알>이 있다.

 

지금 소개하는 책 ’누비처네’는 목성균의 수필을 총망라한 전집이다. 이 책 안에는 <명태에 관한
추억>,
<생명>, <행복한 고구마>, <돼지불알>에서 소개된 수필들이 모두 모여있다. 이 한권
으로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수 있게되어 참 다행이다. 왜 다행이냐.. 이 책의 발간사를
쓰고 해설을
맡은 김종완님이 목성균을 그야말로 극찬하고 있다.

 

 

  아직도 목성균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간단하게 그를 소개한다면 수필계의 기형도라 할 것이다.

  기형도가 죽을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지만 사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후배시인이

  거의 없다고 평가되듯이, 수필계에서는 목성균이 그러하거나 그리 될 것이다.

 

 

  

왜 그의 작품들이 사후에 빛을 보게되었는지, 어떤점에서 그의 글이 매력이 있는지 알아내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글들을 읽다보면 자주 나오는 한자단어나, 필체가 현대 작가들의

글이 아니라 근대문학에서 자주 보던 문체다. 어? 일부러 학식있게 보이려는 어줍잖은 시도
인가?
싶다가도 일제시대인 1938년에 태어난 작가가 그것도 60이 넘어 쓴 글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내등 가족들 얘기부터 바람이
불면 바람을
보면서, 해가 지면 지는 해를 보면서, 때론 길가의 군고구마를 사가면서 써가는
모든 일상들이
소설이 되고, 시가되어 읽혀진다. 수필을 읽다보니 예전 문학인들의 수필은
오늘날 블로그와
같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맛집, 육아, 일상다반사, 책, 문화,
교육등 모든분야에
걸쳐 책을 통해 블로깅을 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 글들이 가볍거나
유쾌하지만은 않다.
제목에 쓴대로 왠지 애잔한 기운이 느껴진다. 삶의 끝자락에서 인생을
회고하는 듯한..
그러고보니 예전 피천득을 읽을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것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불현듯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