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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잃어버린 왕국, 찾고싶은 왕국 '대백제'






나는 백제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요즘 연예계에 비유하자면 난 백제 왕팬이자 백제홀릭인 셈이다.

원래부터 국사가 좋았다. 학창시절 가장 좋아하던 과목도 국사였고, 당연히 시험점수도 높았다.

국사, 그 중에서도 왕조의 건국과 패망의 역사, 전쟁사가 주관심사였는데 그 중심에는 백제가 있었다.



삼국시대가 성립하기 전 남쪽에는 삼한이 있었는데 마한, 진한, 변한이 그것이다.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여 대국이 되었고, 신라는 진한을 흡수, 통합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잡았으며,

변한지역에서는 가야가 건국했다. 후에 가야는 신라에 병합되어 이로써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형성된다. 흔히 우리는 고구려는 대륙의 기질을 가진 큰나라, 중국의 왕조와 어깨를

나란히 한 강대국으로 인식하고, 신라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삼국의 승자로 배워왔다.

그런데 백제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바도 없거니와 기껏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주색에 빠져 나라를

잃은 의자왕이 백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일 뿐이다. 실제로는 의자왕이 '해동증자'로 불릴만큼

효성이 지극하고 현명하며 용감무쌍한 왕이었고, 삼천궁녀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삼국중 가장

문화가 발달한 국가었다는 사실은 조용히 묻혀버린체 잊혀진 국가로만 남아있다.



사실 삼국시대에서 가장 국력이 약하고 뒤떨어진 나라는 신라였다.

드라마 '주몽'이나 최근의 '근초고왕'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고구려와 백제는 그 뿌리가 부여국에 

있어 서로 형제국과 다름없었으나, 전통적으로 적대국이었고(드라마에서는 소서노가 주몽에 배신당해

쫒겨온 탓에 백제는 처음부터 고구려에 원한이 깊은것으로 나온다), 서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걸림돌

로 치부될 뿐이었다. 백제로서는 대륙진출의 걸림돌이 고구려였고, 고구려로서는 중국과 상대하는데

후방의 골칫거리가 백제였을 것이다.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꽃피우는 루트도 서로 달랐다.

고구려는 북방의 문화를, 백제는 수로를 통한 남조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정작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군사력이나 문화가 가장 약했던 나라였고, 고구려가 그토록 지켜왔던

중국의 한반도 침략을 오히려 배후에서 당나라를 끌어들여 한반도 공략의 빌미를 제공하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혹자는 신라가 당나라를 이용해 삼국을 통일했다고 하나, 이는 천부당만부당 한 얘기다.

신라가 당나라를 이용한게 아니라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던 당나라가 신라를 이용하여 한반도를

점령한 것이다. 하마터면 백제와 고구려 멸망이후 신라까지 당에 병합됐다면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만 남게 될뻔한 것이다. 다행히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여 그 넓은 고구려땅을

다 내주고 백제,신라 영토만 수호한 것도 천만다행이라 할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삼국통일 당시

신라가 가장 약했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백제 의자왕으로 수시로 침략을 당했고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지자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막아내려던게 결국 우격다짐으로 삼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항상 국력이 약해 한때는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막고, 또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며 백제를 근근이 막아내던 신라가 정작 후세 역사에서는 승자의 위치를 맘껏 누릴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 역사의 근간이 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신라의 입장에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신라입장에서 볼때 고구려는 대국이었고, 백제는 눈엣가시였으니 잔인하고, 미개한 나라로 볼수밖에.

뿐만아니라 철저히 백제의 문화유산은 파괴되고 유린당해 지금껏 제대로 전해오는게 없을 지경이다.

지금도 경주를 가보면 찬란한 신라의 문화가 잘 보전되고 도시 자체가 관광도시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충남 공주를 가보라. 아니 부여를 가봐라. 남아있는 백제 문화가 뭐가있는지...

700년동안 이어져온 찬란한 백제문화는 이제 중국사서 속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수 있게되었다.

백제의 요서경영설. 정작 우리나라 사서에서는 언급조차 안돼있고, 오늘날 주류 역사학자들로부터서도

근거가 부족하다고 일축받은 백제의 요서경영설이 중국측 사서에는 꽤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울 뿐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문헌 발굴과 현지답사등이 절실해 보이는데 주류사학자들

에게는 관심밖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백제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계기는 최인호의 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만나고서 부터다.

말은 소설이지만,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 형식을(물론 작가의 가설과 주관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취하며 백제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소설이었는데 이제껏 학교에서 배워왔던, 또는 역사책들에서

봐왔던 모든 사실이 흔들리고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쇼킹이었다. 어찌 소설가가 이 방대한

문헌을 조사하고, 답사하며 고대 왕국의 흔적을 찾아낼수 있었을까 하는...

훗날 존경받는 어느 노사학자 한분이 후배들을 꾸짖으며 그랬다고 한다. 한낱 한명의 소설가가

해내는 일을 전문가라고 칭하는 젊은 사학자들이 못하고 있다고.



SBS 대전방송이 역사스페셜 다큐멘터리로 잃어버린 왕국, 백제에 대해 심도있게 조사해서

방영했고, 방송자료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왜 우리는 백제를 가리켜 자꾸 잃어버린 왕국이라 칭할까? 700년이나 한반도의 주축이 되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임에도 오늘날 그 어떤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정확히 백제의 영토는 어디까지였으며, 소서노를 따라 남하한 비류와 온조는 왜 함께하지

못했으며, 왜 큰아들 비류가 아닌 작은아들 온조가 백제의 왕이 되었으며, 중국 문헌에 기록된

백제의 요동경영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일본 천황이 백제의 후손이라는 사실등이 왜곡되어

알려지거나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문화유산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된 백제의 모습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 '대백제'는 그 예전 최인호의 소설에서 봐왔던 백제의 또다른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해

다시한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백제가 건국 당시부터 비류백제와

온조백제 두 나라로 건국되었고, 우리가 아는 백제는 온조백제며 비류백제는 미추홀(지금의 인천)

에서 건국했다가 웅진으로 천도후 해상세력을 규합하여 요서로, 왜로, 월주로 진출한 주체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다 광개토대왕의 백제 침공당시 온조백제(한성백제)는 조건부로 항복하고, 

비류백제(웅진백제)는 패망한다. 패망한 비류백제의 지도층은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가를 정벌하고

백제계 천황시대를 개막하는데 그게 오진왕조다.

실제 현 아키히토 천황은 2001년 "내 몸에 백제 무령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라고 밝혀 일본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24대 천황이었던 칸무천황은 "내 어머니는 백제 직계 왕족이다"라고도 했다.



'대백제' 책이 백제 재조명의 화두를 던진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고, 신빙성있는 역사적 가설들을

수박 겉핧기 식으로 소개만 하고 넘어가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 할수있다. 다만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좀 더 활발한 백제역사의 연구가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백제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출판 : 차림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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