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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끔찍하게 지루한, 그러나 위대한 소설 '팅커스'

팅커스 (양장) - 2010 퓰리처상 수상작! 팅커스 (양장) - 2010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Paul Harding), 정영목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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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연코 지금까지 수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리뷰를 써왔지만 이 책 '팅커스'만큼 

어렵게 읽은책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제목에 '끔찍하게 지루하다'고

표현했을까!







책은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에 242페이지로 두껍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한번에 두시간을 계속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의당 소설이라 함은 기승전결이

있고, 사건이 있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해결후의 결말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소설의 종류가 추리소설이나 미스테리가 아니더라도

정도만 다를뿐이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팅커스'는 변변한 위기감도, 절정도, 사건의 해결도 없다. 시종일관 죽음을 앞둔

주인공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의 과거 회상과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비롯한 3대에 

걸친 가족들의 얘기만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술되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배경설명과 상황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문장을

읽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내가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를 의문이 몰려온다. 책의 절반을 넘길때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아마도 쉽게

책을 펼쳐들었던 독자라거나 일반적인 소설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필시 책장의 1/3을 넘길때쯤 독서를 포기하고 말것이다. 틀림없다...



그럼 나는 왜 이토록 지루하고, 어렵고, 이해하기도 난해한 비전공자의 박사학위

논문같은 책을 읽은것일까? 



'팅커스'는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퓰리처상은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보도,문학,음악 부문의 시상인데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있는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매년 4월에 수상자를 발표한다. 며칠전

리뷰글을 썼던 동화 '패트리샤 공주는 아무도 못말려'가 '뉴베리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작가 로이스 로리의 작품이라고 소개한바 있는데 아동도서의 가장 권위있는 이 상과

마찬가지로 퓰리처상 역시 수상자격이 미국시민이거나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게 다가 아니다. 이 작품이 미국에서 발표됐을때 쏟아지던

찬사는 이루 표현할수 없을 정도였다.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에서는 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이 소설을 번역한 유명한 번역가인 정영목씨는 심지어

-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라는 구절과

마주쳤다면 이제부터는 아예 딴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신발 끈을 조여맬 것, 아니, 

신발을 벗어버릴 것 - 이라고까지 했으니 이 소설을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기대감을 줬겠는가를 예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 (전략) 그의 언어는 눈부시다. 심지어 새 둥지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짧은 구절조차

눈부시다. 소설가가 왜 장인인지 보여주는 놀랍고 화려한 본보기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 '팅커스'는 진정 주목할 만하다. (중략) 이 작품은 소설이 줄수있는 최고의 특권을

독자에게 부여한다 -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

- 엄청난 힘과 독창성이 넘치는 작품. 이 작품에서는 놀라운 문체의 자유를 엿볼수

있다. (중략) 대단히 깊은 감동을 준다 - (소설가 배리 언스워스)

그리고 처녀작으로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하는 NPR의

<2009년 최고의 데뷔작>에 선정됐다는 사실들로 인해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번이고 중간에 내려놓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마침내 완독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바꼈을까?



미국 최고의 평론가들이 극찬한 이 작품을 한국의 평범하고도 내공이 얕은 일반

독자의 눈높이를 가진 내가 읽었으니 당연히 평가가 같은수가 없다. 오늘 내가 쓰는

'팅커스' 리뷰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단히 독창적인 작품이다.

여지껏 시도하지 않았던(아니 여러작품에서 시도했으되 내가 몰랐을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처녀작인 이 작품에서 보여줬다는 점에서 작가 폴 하딩의 역량을 맘껏 표현한

작품이다. 



둘째, 마치 현미경으로 주위 사물을 보는듯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문장이 돋보인다.

아까 위의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찬사중 "심지어 새 둥지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짧은 

구절조차 눈부시다"고 한 대목에서 알수 있듯 극한의 미사어구들과 형용사, 부사등을

사용해 짧은 한줄의 글을 열줄, 스무줄로 늘려놓는 재주가 돋보인다. 이는 평론가들에게

놀랍다는 찬사를 들었지만 영어권이 아닌 나라들의 일반 독자들 눈높이에서는 놀랍도록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셋째,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20세기 초 미국 동부의 어렵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있다. 그러면서 정신병원에 간 할아버지, 간질병을 앓고있는 아버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암에걸려 죽어가는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의 가족사를 통해 미워하지만

결코 미워할수 없는 가족들간의 애증을 그려냈다. 

조지는 간질병에 걸려 자신의 손을 물어뜯은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죽거나 그러는게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듯 그렇게

사라져 버렸으면..그러면 어머니나 가족들이 덜 고통스러울텐데..그렇게 미워했으면서도

정신병원에 보내질걸 알고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마침내 조지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 환각속에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만난다.



이 책이 어렵게 출간돼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기까지 이야기를 또 하지 않을수 없다.

작가 폴 하딩은 대학 졸업후 무명밴드의 드러머였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밴드가

해체되자 막상 딱히 할일이 없었던 그는 평소 하고싶었던 글쓰기를 실현하고자

창작교육 과정을 이수했고 몇년 동안 이 작품을 써왔다. 하지만 무명의 작가로서

책을 출간하는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는데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다가 간신히

비영리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인정을 받고 소규모 서점들을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키다

비평가와 언론의 주목을 받고 마침내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처음 작품 구상이후

10 여년이 걸린 일이다. 수많은 출판사들로부터 초기에 퇴짜를 맞은 이유가

느리고, 명상적이고, 잔잔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오히려 같은 이유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최고 권위의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됐으니, 만약 초기의 좌절로 주저앉고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영광의 순간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않다.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는 많은 문학도들에게도 그러하겠거니와 일반

독자들에게도 지금의 시련과 좌절에 주저앉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끝까지

도전하면 지금의 시련이 훗날 성공의 큰 밑거름이 되리라는 사례를 보여준다고

할수있다.



자, 너무 길게 왔다. 확실히 특이하고, 놀랍도록 지루한 작품임에 틀림없으나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문학을 접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거나, 또는 퓰리처상 수상작은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다는 문학도들은 기꺼이 이 개성있는 작품을 읽어보기 바란다.

하지만 당신이 일반 눈높이를 가진 독자라면, 지적 수준의 향상을 위해 읽어도 좋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첫장을 넘기길 권하고 싶다.

번역가 정영목씨의 문구를 살짝 각색해서 표현하자면,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라는 구절과

마주쳤다면 이제부터는 내 지적수준과 인내력을 시험해 본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책속에

빠져들기 바란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