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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스포츠신문 연예기사를 낱낱이 까발린 소설 '열정,같은소리 하고있네'






'열정, 같은 소리 하고있네'를 읽고나면 마치 숨가쁘게 빠른 전개의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예계, 그리고 그들을 취재하며 기사를 만들어 내야하는 연예 전문 기자들의

일상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이 단순히 가상이야기의 픽션으로만 그치는게 아니라 실제처럼

와 닿는건 바로 작가의 이력때문인데, 작가 이혜린이 실제 2005년 스포츠신문의 연예부

기자 생활을 경험했고, 이 후 경제신문사, 온라인 매체등을 두루 거친 실제 기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맘먹고 연예계 뒷이야기,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사들의 속성을 파헤치는 글을

쓴것 같다. 새벽부터 밤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신문사, 그리고 연예인들의 일거수 일투족

을 따라다니며 기사거리를 찾는 연예부 기자들의 정신없는 일상이 그야말로 숨가쁘게 펼쳐진다.


간혹 인터넷을 뒤적이며 연예 기사들을 보다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기사들을 볼때가 많다.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과연 기사거리가 되는지도 의문스러울 정도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지면이 채워지고, 때론 똑같은 기사가 제목만 바껴서 나오기도 하고...

소설속에서도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모를때는 그런 기사를 쓴 기자들을

욕했는데 그럴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알게되니 앞으로는 그런 기자들을 욕하지도 못하겠다.



"우지환 조져!"

밑도 끝도 없는 하부장의 한마디. 인턴사원으로 갓 입사한 주인공의 고생문이 시작되는 순간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연예매체들의 연예기사의 냄새나는 뒷이야기들의 비밀을 알려주는

시작이다. 신생 스포츠신문의 출간을 축하하는 인터뷰 요청을 바쁜 스케쥴 탓에 거절한 톱스타에

대해 연일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내서 길들이기 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결국 비난기사와 인터넷

댓글들로 인해 확산되는 이미지 실추를 막기위해 소속기획사 사장이 하부장을 따로만나 비위를

맞추게 되면서 '우지환 죽이기'는 바로 '우지환 띄워주기'로 바뀌게 된다.

그뿐이랴 함께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새내기 사진기자는 첫미션이 '소녀시대' 팬티 사진 찍어오기.

좀더 자극적인 사진들과 무대위 노래하는 모습을 각도만 바꿔가며 얼마든지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기사 열댓개를 뚝딱 만들수 있는 소재다.

주인공 이라희가 처음 맡은 5인조 그룹가수의 인터뷰 에피소드~


난 인터뷰에 쓸 거리가 필요해 이상형을 물었다. 요즘 시대에 누가 이상형을 키우냐고
나를 구닥다리 취급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효리는 어떠냐고 재차물었고, 멤버들은
마지못해 이효리도 괜찮다고 했다. "설마, 우리가 효리누나한테 이상형이라고 고백했다
고 쓰는건 아니죠?" "난 그런 기자 아니라니까"
 
 

그런데 결국 다음날 지면에 나간 기사의 제목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있는 5인조 꽃미남 그룹

로미오가 섹시가수 이효리에게 뜨거운 사랑을 고백했다'이다. 이런 기사가 나가고나면 그 밑에 

달리는 댓글들은 정작 인터뷰 하면서 이효리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던 인기 아이돌 그룹 로미오에

대해 "너희가 뭔데 이효리를 넘보냐", "너희는 군대 언제가니", 지난해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리더에 대해서는 "군대 빼려고 일부러 사고낸 놈"이란 댓글까지 달린다.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화가날까?



박진영이 트위터에 올린 라면먹는 사진 한장 가지고도 기사를 써야했으며(물론 소설속에서),

스포츠 인턴기자는 상부 지시로 인기 블로거의 글을 베껴 기사를 작성한다. 기자 이름을 내걸고

나가는 기사인데도  기업체 홍보기사도 있고, 온라인용으로 작성하는 기사는 기자 한명당 하루에

20건이 배정되기도 한다. 연예인 매니저와 연예부 기자가 손잡고 소속 연예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만들기도 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문구로 제목을 만들어 클릭을 유도하고, 낚시질로 네티즌들을

낚아대고....



이 책을 읽고나니 그동안 스포츠신문의 연예 기사들의 유형이 쫙 정리된다. 

꼭 이럴수 밖에 없는걸까? 아니다... 그런데 우리 연예산업이 이렇다. 이것이 현 주소다.

참 씁쓸하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작가 이혜린은 참 재밌게 글로 옮겨놨다. 행간 곳곳에

유머가 흐른다. 그리고 여류작가가 여자 주인공을 앞세운 소설 곳곳에는 여성직장인들의 

눈으로 바라본 직장문화의 여성차별과 부당함을 고발한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회초년생, 이들이 스포츠신문에 '수습기자'라는 이름으로 입사하고,

실제로는 '인턴사원'인 이들이 받는 급여는 정부지원금 월 50만원. 그러면서 회사는 하루

열다섯시간 이상씩 일을 시키고, 힘들면 그만두라는 위협을 서슴치 않는다. 니들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면서~ 열정을 가지고 내 일처럼 일을 하란다.

열정? 열정 같은 소리 하고있네... 작가가 남기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