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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와인향이 묻어나는 소설 '천사의 와인'

 

 

아~ 머리가 아프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고, 읽고 나서도 그렇다.

작가 엘리자베스 녹스는 이 소설로 뉴질랜드에서 1998년 '독자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고,

1999년 '몬타나 뉴질랜드 북 어워드'상을 수상, 같은 해 오렌지상 후보, 2001년 '태즈메이니아 태평양

지역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됐다고.

이 책을 설명하는 글귀에는

사실적인 묘사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결합된 문체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적인 묘사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소설 전반에 거쳐 흐르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도 맞다. 기존의 가톨릭적 종교관에 입각해 천국과 지옥,

그리고 중간의 연옥이 소개되고, 하느님과 루시퍼, 천사와 악마가 다뤄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안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창조물인 타락천사 '새스'를 만들어내 이야기를 이끈다.

여기에는 작가가 1998년 뇌수막염에 걸렸던 기간동안 실제 경험한 꿈과 환각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하니 일면 이해가 된다.

 

일단 소설의 재밌는 특징을 몇가지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박한 와인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랑스 남동부 부르고뉴 지방을 배경으로 포도농장을운영하며 와인을 제조하는 주인공 소브랑의

이야기를 통해 전문적이고 해박한 와인의 제조방법, 와인의 향, 감상법등이 소개되고 있다.

1808년산이 어떻고, 1810년산이 어떻고, 오크통, 빈티지 이런 생소한 단어들과 함께 뱅 부뤼(햇와인),

클로(포도농장의 구분), 샤또(포도원, 양조장), 비뉴롱(자작농,소작농인 포도재배가)등의 불어와 와인

전문용어들은 다소 어렵기도 하지만 읽고있는 내가 와인매니아라도 된양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둘째, 독특한 종교관이 펼쳐진다.

 

천사 새스는 타락천사다.

하늘에서 하느님께 반기를 들고 전쟁을 벌인 루시퍼쪽에 합류했다가 전쟁에 패하고 지옥으로 쫒겨갔다.

그렇지만 지옥에서 탈출해 하느님과 루시퍼의 '협약'끝에 천국과 지옥과 인간세상을 자유로이 오갈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런류의 소설은 항상 흥미를 끌수밖에 없다. 내가 얼마전에 읽고 리뷰를 남겼던

<루시퍼의 복음>, 또 몇년전 빅히트를 치며 기독교계와 마찰을 빚었던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등은 그 소재가 선과 악, 천사와 악마, 하느님과 루시퍼의 대결을 부각시킨 탓에 더 많은

관심과 흥행을 거둘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셋째, 스케일이 크다.

 

소설이니 뭔들 못하겠냐만은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공간적인 스케일, 아니 유럽에서

아프리카는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공간적인 스케일. 1808년부터 1997년에

190년에 이르는 시간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으니 어마어마 하지 않은가.

 

이에 대비되는 다소 걸리는 부분도 만만치않다.

순전 개인적인 소견임은 물론이다.

 

  첫째, 동성애와 불륜, 천사와 인간의 성관계등이 거슬린다.

 

 주인공 소브랑은 결혼전 친구 밥티스트 칼만과 동성애의 경험이 있다.

부인 셀레스트 이외에도 남작부인 오로라와 플라토닉한 관계에서 에로스로 발전한다.

이것까지는 얼마든지 감당할수 있는데 신적 존재인 천사에게서 성욕을 느끼고, 마침내 성관계를

갖게되는 설정은 쉽게 동화되서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부분이다.

 

  둘째, 유럽쪽의 특색이지만 중복되는 이름들로 인해 캐릭터가 혼란스럽다.

 

요부분이야 소설외 적인 부분이긴 하다.

우리나라는 성이 한정적이고(정해져있고) 이름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성이 같은 경우는

흔하지만 이름이 같은 경우는 드물지 않은가. 물론 좋은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쓰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름이 한정적이고 성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같은 성을 찾기가 힘들고,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은 매우 흔하다. 그리고 찰스라는 사람이 훌륭한 업적을 남기면 아들은 찰스 주니어,

손자는 찰스3세 이런 예를 볼수있듯, 소설에서도 소브랑의 친구 이름이 밥티스트이고 죽은 친구를 

기리고자 아들 이름을 밥티스트라 지으며, 외손주의 이름은 연인인 오로라의 외숙 이름으로 짓고,

또 죽은 친척들의 이름을 계속 짓는통에 뒤에가면 어? 얘는 전에 죽은앤데 또 나오네~ 어? 얘는

소브랑의 딸이야, 손녀야? 이런 부분이 수두룩~하다. 소브랑이 슬하에 자식을 여럿두고, 또 그 자식

들이 결혼해서 손자를 여럿 두는데다 그중에 죽은애 이름을 다시쓰고, 또 쓰고 하다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아~ 캐릭터 고정시키기 힘들다.

 

  셋째,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진다.

 

 

소설의 초,중반 두건의 살인사건이 나면서 범인은 오리무중에 빠지는 등의 긴장감이 형성되지만

소설적 재미로 이어지지 못하고 따로노는 느낌이다. 또한 한 남자의 일생동안 55년동안 천사와의

만남을 서술하고 있기에 숨막히듯 몰아가는 스릴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단지 '재미'로만 따진다면

다소 실망할수도 있는 작품이다.

 

균형을 맞추듯 좋은점과 아쉬웠던 점 세가지 씩을 소개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 하겠다. 마치 펄벅의 '여자의 일생'을 다른 버젼으로 각색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긴 뭐 '소브랑의 일생'이긴 하다. 그리고 천사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 ^^

무엇보다 이 소설이 맘에 드는건 488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임에도 12,000원의 책값을 책정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내내 표지에서 보듯 적갈색의 와인을 함께 마시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책이다.

아래 영화 포스터는 이 '천사의 와인'을 소재로 영화로 만든 '빈트너스 럭'이란 작품이다.

한국 미개봉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