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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그 분께 헌정하는 판타지소설 '총통각하'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각하'께 헌정하는 소설되겠다. 작가는 헌정이라고 하면서도 그분께 이 책을 바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궁금하면 돈주고 사보시라고... 소설에서 각하는 신랄하게 까인다. 글을 읽는 독자는 누구라도 그 각하가 누군지 알수있지만, 그래서 자칫 명예훼손이 걱정되긴 하지만, 이를 감안한 작가의 신의 한수! 주어가 없다.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 흐흐흐... 이쯤되면 독자들은 일단 두가지가 궁금해질거다. 첫째는 도대체 각하를 어떻게 풍자하며 까대고 있는지, 둘째는 이렇게 용감한 작가가 도대체 누군지~ 일단 두번째 답부터 먼저 해보자면, 배영훈이라는 작가다. 젊고, 잘생기고, 학력좋고, 글잘쓰는 훤칠한 청년이다.

 

 

내 블로그에서도 일전에 그의 전작 '은닉'이란 소설의 리뷰를 올린 적이 있다. 이 글을 쓰기전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당시의 소설을 읽은 소감은 상당히 난해하다~로 표현됐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임에도 소설가로 전업작가 길을 걷고있고, 또 '은닉'에서는 첨단과학을 토대로한 SF 장르면서도 철학과 인문학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었다. 이번 작품도 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풍자소설이다보니 장르가 판타지로 바꼈을뿐 소설의 핵심은 믿음, 소통, 원칙과 같은 철학과 인문학이다. 글을 참 잘쓴다. 그래서 태동기에 있는 한국 SF소설계의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있는 전도유망(?)한 소설가다. 그런데 장르가 그러다보니 대중성이 좀 약하다는 평도 할수 있겠다. 이제 본 소설을 살펴보자.

 

 

장편이 아니고 10개의 각기 다른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첫번째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란 작품을 쓰기 시작한 날이 2007년 12월 20일이라고 하니 바로 대선 다음날이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은 먼 미래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총통선거 즈음하여 지지하던 후보가 낙선하고 이상한 사람이 총통에 당선되자 암담한 재임기간을 견딜수 없다며 남자주인공이 5년간 스스로 냉동상태에 들어간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재밌는건 5년후 해동되어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총통임기가 5년 단임제에서 중임제로 개헌되었고, 뭐하나 이뤄놓은것 없이 맨땅에 헤딩만 하던 그 총통이 어찌된 일인지 인기가 좋아 재선에 성공한 직후였다는~

 

<새벽의 습격>은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빗대어 실감나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전투상황으로 각색했고, <발자국>은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장면이 연상된다. <위대한 수습>에서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고 총통이 뜬금없이 운하를 파는 대공사를 일으킨다는 설정이고, <내년>은 2012년이란 년도를 배경으로 시간이 흘러도 해가 바뀌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12월 31일 다음날이면 다시 2012년 1월 1일이 되는... 이런 이상한 현실에 얽힌 음모를 파해치는 주인공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를 보는듯하다. 각하를 풍자하는 최고봉은 단연 <초록연필>이다. 이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각하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세계의 절대악으로 설정된 악마가 등장하고, 악마를 제거하기 위해 핵폭탄이 투하되는 설정까지 나온다. 열개의 단편이 모두 그 분을 연상시키는 작품만 있는건 아니었다. 혹은 그 분이 관여되어 있는데 내가 연관을 못시킨걸 수도 있고. <혁명이 끝났다고?>와 <Charge> 같은 작품들인데 열개의 작품들중 재미로 따지면 <Charge>가 제일 나았고, 제일 웃겼던건 <혁명이 끝났다고?> 였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대표작을 고르라면 <고양이와 소와 용의나라로부터>를 들고싶다. 별 특별한 내용도 없고, 재미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각하'께 꼭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말이에요,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문서상으로는 분명히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런데 왜요?"

"이상해서요. 고양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길 한가운데에 고양이가 나와 있다고 해서 발로 차서 쫒아내거나 하지 않잖아요. 소를 숭배하는 나라에서는 소가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도 잠을 깨우거나 소리쳐서 몰아내는 법이 없고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래요. 형식상으로나마 용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용이 출근길 교통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 용을 북쪽 하늘로 날려 보내지는 않거든요. 그 용이 바로 주인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까요."

"그런데요?"

"그런데 여기는 좀 이상한것 같아요. 아까 저녁에 시청앞에 있는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걸 봤는데요, 데모 말이에요, 데모."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어. '데모'라고 자기네 말로 똑똑히. 알지, 데모? 군중이라는 뜻. 그러더니 계속 말을 잇는거야. "데모크라시라면서요. 데모가 지배하는 나라, 실제로는 어떻건 간에."

"그렇죠."

"그럼 말이에요. 실제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최소한 그 데모가 길거리에 나와 있다고 해서 발로 차고, 물을 뿌려서 쫒아내버리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물론 정치하는 사람 누군가는 마음속으로야 그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건 불가능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왜냐하면,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자기 입으로도 열심히 떠들고 다녔을 거니까."

 

전반적으로 각각의 단편들이 쉽게 읽히는건 아니다. 배명훈 작품의 특징이다. 어렵다. 아마도 단순히 문맥으로만 읽히지 않은 철학이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올 연말에 있을, 이 소설식으로는 '총통선거'가 기대된다. 우리는 어떤 총통을 뽑아 그의 국민이 될지...

 

 

총통각하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배명훈
출판 : 북하우스 20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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