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기억속으로' 책 제목과 꼭 들어맞는 소설이다. 처음엔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건 전개에 혼란스러웠다. 시간순으로 전개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혼란스럽게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지라 읽으면서도 몇번이고 지금은 몇년도 이야기지? 하며 앞장을 되돌아 보게됐다. 마침내 '나'가 등장하며 주인공이 명확해진 후에도 2003년과 2007년을 계속 반복하며 오가는 이야기에 햇갈리긴 마찬가지. 소설의 주인공은 캐서린이라는 여성인데 2003년에는 '리'라는 남자와, 2007년에는 '스튜어트'란 남자와의 밀당이 펼쳐진다. 하지만 2003년의 캐서린과 2007년의 캐서린은 다른 인물이다. 2003년의 캐서린은 활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멋진 남자를 보면 유혹하고 싶어하는, 섹시한 보통 20대의 여성이지만 그사이 무슨일을 겪었는지 2007년의 캐서린은 강박증에 사로잡혀 아파트의 공동현관문, 출입문, 창문등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그래도 불안해서 몇번씩 문단속을 확인하는 강박증 환자로 묘사가 되고 있다. 강박증이라는게 참 무섭다는걸 느끼게 한다. 출근하기전 문단속 하는걸 한번 보자.
침실부터 거실의 창이란 창은 몇번씩 잠겼나 확인하는데 단순히 잠군것을 확인하는데서 끝나질 않는다. 잠군후 안열리는지 확인하고, 풀었다가 다시 잠궈서 확인하고, 다시 풀고, 이 과정을 정확히 여섯번씩 되풀이한다. 그러다 중간에 잠깐 방심했다거나 집중하지 못했다고 느껴지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싱크대 포크와 나이프의 위치도 한결같이 똑같아야 하고, 창을 잠근후 커튼은 항상 절반만 각을 맞춰 셋팅한다. 그렇게 집안을 단속하고 나온후에도 출입문 역시 그 과정을 되풀이한다. 거기다 문틀에 손가락을 넣어서 혹시나 벌어진 틈이 있지나 않은지 확인, 그리고나서 1층으로 내려와 여러 입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현관문을 같은 방법으로 점검하고 집을 나선다. 그래서 아침 출근은 항상 지각하기 일쑤다. 퇴근후 집에 들어가는 과정은 출근의 역순일텐데 거기다 골목길에서 집 창의 커튼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추가되고, 또 매일매일 똑같은 길로 퇴근하지 않는다. 전철을 이용했다가, 걷기도 하고,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리거나, 지나쳐서 내린후 돌아오는 방법으로 퇴근한다. 한마디로 매일매일 일상이 누가 나를 감시하지는 않는지, 누가 나를 뒤따르고 있진 않는지, 겁에 질려 사는거다.
이런 과정을 보고있자니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말이 딱 와닿는다. 그 활달하고 자신만만하던 캐서린은 2007년 현재, 왜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그 짧은 시기, 캐서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로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다.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그 피해자인 여성이 어떤 심리적인 파탄을 거쳐 일생이 불행해지는지... 여성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미혼인 여성들, 혹은 청소년들이 말이다. 남자를 만날때 혹은 고를때 꼭 참고하도록.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뉴스기사중에 한토막이 결혼에 반대하는 연인의 부모를 상대로 해꼬지 하거나, 만나주지 않는다고 칼을 들고 찾아가 위해했다는 기사들이지 않던가. 얼마전 발생한 울산자매 살인사건도 그렇고.
이 소설은 지금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점들을 한꺼번에 나열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스토킹, 강박증, 낯선 사람과의 데이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또한 멋진 남자라고 해도 내면까지는 알수없다는 당연한 진리 등등. 소설속에서 캐서린이 경험했던 일들이 우리에게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처음 혼란스러웠던 이야기는 금새 제자리를 찾고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괜히 '아마존 영국 2011년 최고의 책 1위를 차지한게 아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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