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일본의 사과와 너무 닮은 박근혜의 사과

" 과거에 있어서 폐를 끼치고 참해(慘害)를 입힌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결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1984년 일본의 나카소네 수상이 한국 언론인들의 방일시 기자회견을 통해 한 사과 발언이다. 나카소네 수상의 과거사 사과 발언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에 맞춰 오찬사에서 이렇게 발언한다.


"우리나라가 귀국에 힘입은 바 많았던 한·일 교류사 가운데 유감스럽게도 금세기의 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귀국 및 귀국 국민에 대해 다대한 고난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정부 및 우리 국민이 이 잘못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되새김과 아울러, 장래에 이런 일이 없도록 굳게 결의하고 있음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일본 정부 및 일본 국민은 전후 이러한 과거의 반성에 서서 성의를 갖고 새로운 양국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고 작년 본인의 귀국 방문도 마찬가지로 이 반성에 입각한 것으로, 일·한 양국간에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려는 국민의 소망에 발하여 실행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1989년 당시 총리였던 다케시타 노보루는 일본 중의원 의회 답변에서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과거에 큰 손해를 입힌 데 대하여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라고 사과 발언을 했다. 일본 각료, 특히 수상들의 이런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 발언은 이외에도 숱하게 많다.


1989년 우노 소스케 수상은 역시 중의원 답변에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자였던 것을 알고있다. 일본 군국주의가 한국 등 인접국에 고통을 준 데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이들 국가가 관련된 어려운 역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고, 아키히토 일왕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때 만찬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음"


이라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에도 대략 간추려보면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 우리 일본 국민은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의 한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께서 일본의 행위로 말미암아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셨던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임. 저는 총리로서 다시 한번 귀국(貴國) 국민께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함."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한반도의 여러분이, 예를 들어 모국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기고, 타국어의 사용을 강요당하고,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군대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한 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드리고자 함."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전후 50주년을 앞두고 본인은 일본의 침략행위 및 식민지 지배 등이 동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난과 슬픔을 주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며,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부전(不戰)의 결의하에 세계 평화의 창조를 위해 노력할 것임.
· 이러한 견지에서 아시아 근린제국 등과의 과거 역사를 직시함과 동시에 차세대를 짊어질 사람들간의 교류 및 역사연구 분야를 포함한 각종 교류를 확충하는 등 상호이해 심화 필요성에 따라 금후 이의 구체화를 위해 서두를 것임."
 오부치 게이조 총리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갖고, 지금 여러 전시·시설·고문의 흔적을 참관하였는 바, 이는 총리대신으로서라기보다는 한 명의 정치가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러한 고통과 희생을 강요당했던 분들의 원통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감안하고 또한 반성해 나가면서 이러한 고난의 역사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서로 협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통감함"

 

이렇듯 숱하게 많은 사과를 해왔다. 여기에 소개된 발언은 빙산의 일각일뿐 이외에도 아키히토 일왕도 여러차례에 거쳐 한국민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고, 역대 수상들도 계속해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했다. 그런데 한국민들은 2012년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한다. 일부 일본의 정치가와 국민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하는가", "한국은 끊임없이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기조의 연속으로 이번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에서 보여준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과거 일본정부의 사죄발언들을 모두 부정하고 나서는 실정이다.

 

그럼 이 시점에서 가만히 생각해보자. 한국인인 당신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아시아 주변국들과 고통을 당한 국민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이제는 더이상 과거사에 묶여있지 말고 쿨하게 일본을 용서하고 그들과 함께 밝은 미래를 함께 꿈꿔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왠지 뭔가가 찜찜하다.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외치는 독도문제는? 지금도 매주 수요일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열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라고 외치는 80넘은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는 어떡하고? 더이상 얼마나 사과해야 하느냐고 묻는 일본인의 말대로 그동안 일본 정부는 사과만 따지고보면 할만큼 했다. 그런데 일본의 사과를 '진짜' 사과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별로 없는것 같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라면 진정성이 느껴져야 하는데 일본의 사과는 립서비스 그 이상도 이하고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는 미안하다, 사과한다 라고 해놓고 뒤돌아서서는 그래도 식민지시절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일본의 도움으로 산업화에 성공했으며,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행위였고, 독도는 일본땅이다~라고 외치고 다니는데 이를 어찌 사과라고 볼수 있겠느냔 말이다.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오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가 일으킨 5.16쿠데타, 유신헌법, 인혁당 사건등의 과거사에 대해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당시로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리고 그 결과 산업화에 성공해서 오늘날 많은 발전의 초석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받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 5.16과 유신이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킨 결과를 초래했다고 인정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불과 며칠전만 하더라도 5.16은 '구국의 결단이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발언한 박근혜였다. 간첩단으로 조작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사형시켰던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후대 이 사건이 조작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한 재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재판부에서도 서로 다른 두개의 판결이 있었으니 훗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녀다. 과거 아버지의 독재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할 의향이 없냐고 물어보면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과거를 지우고 미래만 강조했던 박근혜였다. 마치 일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랬던 그녀가 불과 며칠도 안지나 180도 다른 역사인식을 갖게 된 모양이다.


 

 

사람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박근혜의 과거사에 관한 사과를 보면서 일본의 수많은 과거사 사과 발언이 떠오른다. 진정성이 없는 그저 말뿐인 립서비스들... 정말 박근혜가 아버지가 일으킨 5.16쿠데타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킨 행위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산업발전 속에서 수많은 야당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이 아버지의 탄압으로 인해 희생되고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걸까? 그렇지 않다. 그런것들쯤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희생될만한 사소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떨어지는 지지율에 다급해진 것이겠지. 당장에 인혁당 사건의 유가족들이 "박근혜 후보는 제발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달라"고 혹평했을까.


 인혁당 사건 피해자를 대변하는 4.9통일평화재단은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인혁당 유족들과 관련자들은 박 후보의 이런 사과에 다시 한 번 너무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며 "지지율이 하락하여 수세에 몰리게 되자 오로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새삼 마음에 전혀 없는 말로 사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들을 호도하려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우리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비판은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모양이다. 사과의 시기가 너무 늦었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진작에 이렇게 얘기하면 됐을텐데 굳이 옹호하다가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런 사과를 하는것은 너무 속보이는 짓이다, 이렇게 얘기하기 전에 지난번에는 왜 옹호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했다 등등... 아마 박근혜 쪽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더 사과해야 진심으로 받아들일 거냐고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는 지켜볼 일만 남았다.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고 했다. 이제 박근혜가 과거에 박정희 정권하에서 고통받았던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사과 이후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일본의 지금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고개를 숙이고 한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노력하는지, 적반하장격으로 본인들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국제사회에 떠들고 다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