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로 치자면 조선시대 망나니쯤 되겠다. 고상한 용어로 사형집행인. 프랑스에서 6대에 걸쳐 사형집행을 담당했던 '상송'가문의 네번째 당주 샤를 앙리 상송(1739~1806)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서다. 재판부의 명령을 받고 형을 집행하는 일종의 공무원이면서도 사람들로부터 편견과 멸시를 받아 천민 취급을 받던 사형집행인 가문의 애환과 수난을 그리고 있는 본연의 취지 이외에도 이 책이 더 눈길을 끄는건 바로 4대 당주 샤를 앙리 상송이 사형집행인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격동의 프랑스 혁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잔인함의 상징인 단두대 '기요틴'이 처음 선을 보였고, 그 기요틴의 칼날로 수천명의 무고한 프랑스 시민들을 처형시킨 역사가 고스라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속에서 망나니가 그러했듯이 사형집행인은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음에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태도는 참 가혹했다. 어떻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같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태연하게 할수있는가! 피도 눈물도 없고, 잔인한 사람이다,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의 인식으로 오랜세월 이웃들과 섞이지 못하고 따로 자기들끼리만 교류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프랑스에서는 준공무원 대우를 받아 금전적으로는 부유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이들과 말도 섞지 않았고, 심지어 가게에서는 물건도 팔지않았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격인 상송 집안은 6대를 거쳐오는 사형집행인 가문이다. 부모의 신분이 자식들에게 세습되던 프랑스 왕정시절, 왕의 아들은 왕이되고, 귀족의 아들들은 여전히 귀족이 되며, 사형집행인의 아들들은 또다시 사형집행인의 일을 물려받아 하게된다.
1635년 중산층의 군인 출신이던 샤를 상송 드 롱발은 사형집행인의 딸을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고, 결국 장인의 일을 물려받아 처음 사형집행인이 된다. 그 이후 아들 샤를 상송(1681~1726), 또 그 아들 장 바티스트 상송(1719~1778), 다시 그의 아들 샤를 앙리 상송(1739~1806), 그 아들 앙리 상송(1767~1840), 그 아들 앙리 클레망 상송(1799~1889)까지 6대에 걸쳐 상송집안의 사형집행인 가문이 이어지게 된다. 이중 4대 당주인 샤를 앙리 상송은 루이15세와 루이16세 두 왕을 거치면서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의 처형을 담당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도구로 알려진 기요틴이 사실은 사형수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인권을 위해 인도주의 관점에서 개발됐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기요틴의 개발 전까지만 해도 당시 프랑스의 사형방법은 신분에 따라, 죄의 경중에 따라 각기 달랐지만 교수형, 참수형, 능지처참형, 수레바퀴형등으로 매우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게끔 되어있었다. 목을 자르는 참수형은 그래도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죄수들에게 명예로운 사형방식이었고, 서민들이나 천민들은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이 행해졌다. 반란되 같은 중죄는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졌던 능지처참형이 시행됐는데 이 모든 사형의 집행은 사형집행인의 책임하에 이뤄졌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권선언을 앞세워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직후 사형수의 인권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최대한 죽음의 순간에 고통을 줄여주고자 단숨에 숨이 끊어지는 영국의 단두대를 개량해서 기요틴을 개발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머리를 자르는 참수형이 가장 비인도적인 방식이라고 여겨지고, 손쉽게 머리를 잘라버리는 기요틴이 비윤리적으로 보여지지만 당시 천민들은 교수형, 귀족들은 참수형에 처해지던 관례에 비쳐 기요틴은 최대한 죄수들의 명예를 살려주면서 고통없이 형을 집행하는 인권적인 사형기구였다. 이 기구를 개발한 기요탱 박사의 이름을 본따 기요틴이라 명명했고, 한때는 개발자 기요탱도 기요틴에서 처형당했다는 말이 전해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게 정설이다. 기요탱 박사는 자연사 했다고 한다. 또 상송의 회상록에 의하면 기요탱 박사와 함께 루이16세와 파리의 사형집행인이었던 샤를 앙리 상송도 기요틴 개발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런 기요틴도 개발의 취지와 다르게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로 변질되면서 죄없이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을 처형하는 비극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너무나 쉽고 빠른 시간에 처형이 가능해지면서 예전에는 하루 서너건 집행되던 사형이 수십건, 수백건씩 사람들을 죽이게 된것이다. 또한 광기에 휩싸인 자코뱅당은 왕당파, 친가톨릭계, 같은 의회의 지롱드파 당원들을 모조리 몰살하기 시작하는데 기요틴이 활용됐다. 그 기간 40일동안 상송은 2,700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기요틴에서의 처형장면
상송이 가장 멘붕을 겪었던 때는 자신이 평소 존경하고 흠모해오던 루이16세를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던 때였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루이16세는 품위를 잃지않았다고 한다. 죽기직전 그가 남긴 말은 "국민들이여! 당신들의 국왕이 지금 이순간 당신들을 위해 죽으려 한다. 나의 피가 당신들의 행복을 확고히 할수 있도록 나는 죄없이 죽노라!"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게 루이16세의 일대기였다. 과연 상송의 눈에 비친대로 루이16세는 국민을 위해 힘써오다 그들에게 배신당해 죽는 비운의 왕이었는지, 혹은 어떤 역사서에 기록된것처럼 무능한 왕이었는지. 바로 할아버지였던 루이14세때만 해도 "짐이 곧 국가다" 라면서 태양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던 절대왕권이었는데 손자대에 이르러서는 혁명으로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당했으니...
이 책을 읽고나니 그동안 너무나 무관심했던 프랑스혁명에 대해 궁금증이 밀려든다. 세계 최초로 왕정을 뒤엎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했던 프랑스혁명. 그리고 혁명 초기 이들의 취지에 공감해서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가 나중에 이들에 의해 목이 잘린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또 이 혼란한 시기를 수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나폴레옹. 이 책을 읽으면서 언급됐거나 시대적 배경이 됐던 시기는 어림잡아 영화 서너편은 나왔을법한 배경이다. 나중에 프랑스혁명과 루이16세, 나폴레옹에 대한 공부를 꼭 해봐야겠다.
참, 이 책은 어떻게 끝났을까. 아까 6대에 걸친 상송가는 회상록을 남겼고, <왕의 목을 친 남자> 이 책은 그 회상록을 근거로 씌여졌다. 회상록에서 상송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있는 사형집행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기록해놨다. 특히 마지막 6대째인 앙리 클레망 상송은 <상송가 회고록>에서 사형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시대에 따라 경미한 죄를 지어도 사형을 받는 경우가 있고,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죽음을 당해야 마땅한 범죄가 시대가 바뀌면서 칭송받기도 한다. 재판에서는 항상 오심이 생길 위험이 있으며, 처형된 후 무죄가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사형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다해도 그가 스스로 회개하고 죗값을 치룰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버리기 때문이다." 이같은 주장이 사형집행인 상송가 사람들의 주장이다. 프랑스는 1981년 사형제를 폐지했다.
사형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
'내가 본영화,읽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녀의 같은상황 다른해석, 그래도 연애는 해야하니까 (37) | 2012.07.24 |
---|---|
궁금한거 있으면 다 물어봐, 천하무적 잡학사전 (18) | 2012.07.23 |
고담시티 1845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고담의 신' (38) | 2012.07.17 |
건강에 관한 상식을 뒤흔든 책 '건강100세 처방전, 디톡스' (47) | 2012.07.16 |
재밌게 초등1년 수학의 원리를 접하는 수학동화 '수학 도깨비' (41) | 2012.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