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본영화,읽은책

반전이 있는 여운, 고혜정의 '여보 고마워'



코미디 공채작가 출신의 작가, <친정엄마>, <줌데렐라>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인기작가, 거기다
<여보 고마워>란 제목까지. 흔히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되는 '좋은생각'류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서두부터 말미에 이를때까지 거의 내용이 웬수같지만 그래도 한없이 사랑
스러운, 아니 사랑해야만 할 내 남편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정말 남편이 고마워서
여보, 고마워 소리가 나는게 아니라, 다소 맘에 들지 않고,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도 여보, 고마워
하며 사는게 행복에 한걸음 다가서는 현명한 마음자세라는걸 강조하는 책이라고 받아들였다.
책소개에서부터 작가 약력, 또 책 내용이 모두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참 유쾌하게 남의 짓 닭살스러운 부부생활 엿보는 재미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려가고 있는데 거의 책의 말미에 이르러 깜짝 놀랄 반전을 맞고 말았다. 지금까지 곰처럼
듬직하면서 눈치도 없고, 저자와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 익숙해지고 적응해서 살아가던 책의
또다른 주인공 남편이 어느날, 순전 타의에 의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암판정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였다.
"~ 아무 이상도 못느끼고, 그냥 건강검진을 받아보려고 갔던 나의 남편은 하루아침에 위암
환자가 되어버렸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고 의사의 입에서 "위암입니다"라는 말이 나왔을때
그 황망함이란...(중략)... 나는 병원을 나오며 남편에게 따지듯 대들었다. "대체 뭘 했다고?"
자기가 그동안 한일이 뭐가 있다고, 우리한테 해준게 뭐가 있다고 이제는 또 암까지 걸려?
자기 진짜 너무한다. 나한테 진짜 너무해. 결혼 12년동안 해놓은게 뭐 있다고, 해준게 뭐가
있다고 이제는 암까지 걸리냐고, 왜? 왜 그러냐고?"

저자는 2006년에 이 책을 썼고, 8월에 탈고를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여행도 다니고,
잠시 휴식을 만끽하며 9월에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남편의 위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수술, 2008년 1월 다시 재발을 거쳐 2008년 7월 남편이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여보 고마워>는 몇가지 에피소드를 추가해 2011년 출판사를 옮겨 다시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랬구나~ 그랬기에 책의 내용은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하는 분위기 전혀없이
남편과 알콩달콩 희망차게 살아가는 내용으로 씌여있었던 것이다. 가족이 건강할때 씌여진
책이었기에. 그러다 남편이 죽은후 두세개의 에피소드들을 추가하다보니 책의 말미에 갑자기
눈물 없이 볼수없는 신파극이 되어버린 것이고.. 의도하지 않았었겠지만 어쩌면 책의 제목
'여보 고마워'는 저자가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나직이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주위를 보면 어느 부부들이나 다 만족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것 같지는 않다.
죽고 못살아서 쟁취하듯 결혼에 성공한 열렬한 커플들도, 혼기가 꽉 차 그냥 남자와 여자라면
오케이~해서 결혼한 커플들도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나고나면 다들 사는게 똑같아 보였다.
그냥 의리로 같이 살아가고, 정말 한 가족이 된듯이 살아간다. 혹은 웬수 웬수 하며 배우자
흠을 잡고, 트집잡아 상처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부부들도 많다. 하지만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옆에 있어주던 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해보면 갑자기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지금 잠시 내맘에 안드는 말과 행동을 한게 뭐가 그리 큰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상처를 주는것일까.

책속의 '다시 태어나면'이란 꼭지에 이런 글이 소개되어있다. 방송국에서 일할때 알게됐던
한 피디가 있었는데 성격도 좋고, 능력도 있고,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부인은 대학
교수였는데 가끔 티비에도 나오고 꽤 유능하고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피디가 술만
마셨다하면 집에를 들어가지 않으려 한단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많았다. 이 피디는 후배들에게
푸념하기를 아내가 너무 똑똑하고 잘난 탓에 숨쉬기 힘들정도로 조여와 살수가 없다는 거다.
작은 일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남편이 누구를 왜 만나는지, 지금은 뭐하고 있는지,
일일히 감시하고, 성격도 날카롭고, 그래서 집에가도 말도않고 산지 오래됐다며 결혼 안한
후배들에게 꼭 잘난여자, 똑똑한 여자 얻지말고 좀 배운게 없고, 어리숙해도 고분고분한 여자
만나라고 조언을 하고다녔다. 이혼을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고, 대화도 없이 각방생활을 하면서
밖에서 남들 앞에서는 깍듯이 남편을 위하는척 연기하는 이중인격 아내, 이 남편은 속이 터지고
미칠 노릇이었다. 자연스레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했단다. 그런데 몇년후 이 부부의 소식을
들으니 아내가 암에 걸려 투병중이고 이 피디가 직장을 휴직하고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고있다는
소식이었다. 또 몇년 지나고 우연히 만난 저자와 피디. 죽은사람만 불쌍하고 그렇게나 결별을
원했기에 피디한테는 외려 잘된일 아닌가 싶었는데 왠걸 전혀 다른 얘기를 하더란다. 재혼
안하느냐는 질문에 "우리 와이프, 나 때문에 죽었잖아. 나 벌받은 거야. 와이프 나때문에 속
썩어 그런병 걸려 죽게 해놓고, 나는 딴여자 만나서 살라고? 나도 기본적인 양심이 있지.."
"두사람 별로 사이좋지 않았잖아요?" "응. 근데 죽고나서 생각해보니가 내 잘못이 99%야.
그사람 많이 속상했을거야. 그사람이랑 살면서 매일매일 이혼을 꿈꾸었고, 단 하루도 행복
했던적 없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어쩌면 그사람은 더 했을지도 몰라. 이제 내잘못 다 알겠고
잘해주고 싶은데 그 대상이 죽고 없네. 이래서 사람들이 있을때 잘하라고 하나봐.."
이 피디는 다음세상에 태어나면 꼭 아내를 다시 만나 결혼하겠다고 한다. 이번 생에 못해준거,
미안한거 모두 다음생에서라도 갚겠다며.

지금 함께 살고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도 한번 곰곰이 되뇌여 봐야 할 점이다.
절제되지 못한 말로 비수처럼 상처주면서 우리가 얻는건 과연 뭔지. 그렇게 잔소리하고,
상처주고, 비난하고, 깔아뭉갠다고 그사람이 내 맞춤배우자로 바뀔수 있을까? 왜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집에만 들어가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나한테 맞춰라고 언성을 높히고, 협박을 해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생각만 조금
바꾸면 "당신때문에 내가 못살아" 가 아니라 "여보 고마워" 란 말이 나올수도 있을것 같다


여보 고마워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고혜정
출판 : 공감 2011.12.30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