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법의학자인 문국진 박사가 쓴 사건사례집이다.
원래 1985년과 1986년 각각 <새튼이> 와 <지상아>란 제목으로 단행본
출간했던 것을 약 25년 지난 지금 다시 각색하고, 간추려서 <지상아와 새튼이>
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리메이크 한 셈이다.
나도 그랬지만 아마 많은 독자들이 문국진 박사가 누군지, 한국의 법의학은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을거다. 그러다 법의학이란 용어가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자주 입에 오르내리게 된건 의심할 여지없이 미드 CSI가
히트친 덕이다. 그때까지 용의자 잡아놓고 자백할때까지 족치던지, 혹은 지문
감식 정도가 과학수사의 전부인줄로만 알던 한국인들에게 미드 CSI는 그야말로
충격을 안겨줬다. 사건현장에 남겨진 실오라기 한털로, 또는 발자국에 남은 흙
알갱이 몇알로도 범인을 유추하고 검거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랄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도 사체는 범인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법의학 기법들에
매료되면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수순은 '그럼 우리나라는?' 이다. 우리나라의 법의학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는걸까?
또 그러다가 문국진이라는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최초 법의학자.
지금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강의하고, 후진을 양성하고, 책을 집필하는 한국
법의학의 산 증인이라고...
나 역시 일전에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했디> 라는 책을 통해 처음 문국진
박사를 알게됐다. 당시에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서 대담형식을 빌려 책이 씌여
졌었는데 그 책에서 계속 등장했던 이름이 <지상아>와 <새튼이> 였다. 문국진 박사가
현장에서 만났던 기이한 사건들, 법의학의 힘으로 해결했던 사건들, 자칫 미궁에
빠져 미결로 남을뻔한 사건들이 법의학을 통해 해결되는 통쾌한 경험들을 책으로
펴낸것이 바로 <지상아>와 <새튼이>였던 것이다. 이제 그 책들의 엑기스만을 뽑아
단행본으로 나왔고, 오늘 그 책을 읽게 됐다.
그런데 책 제목으로 쓰인 지상아와 새튼이는 무슨 뜻일까?
뜻을 알기전에 미리 알아둘것이 있다. 죽은 시신으로부터 사인을 찾고, 살해당한 방법,
시간, 범행도구등을 찾는 분야가 법의학인 관계로 이 책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들은 죽음
에 관한 것이다. 그것도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잔인하고, 억울한 죽음들이다. 그렇다면?
지상아와 새튼이란 단어도 역시 그런쪽이겠지...
먼저 책의 사례중에 '지상아'란 꼭지의 에피소드가 있다. 거기 글을 잠깐 인용해본다.
태아의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분만을 시도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태아의 머리가
툭 떨어져버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중략)...개업 30년 동안에 수많은
아기를 받았지만 목이 떨어진 이른바 단두아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목이 떨어져 태아가 죽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경찰에서 의뢰한 태아의 머리와 몸통을 보고 '지상아'라고 소견을 밝혔다.
지상아란 산모의 자궁안에서 사망한채 오랜 시간이 지난 태아를 말한다. 자궁안에서 태아가
죽으면 양수가 태아에게 스며들어 몸이 물러진다. 그런다음 석회가 침착되고, 탈수되고,
위축되면 조금만 힘을 가해도 부서져 나가는 상태가 되는것이다. 그러면 이 의사는 죄가
없을까? 아니다. 지상아는 자궁안에서 죽은지 오래된 태아임에도 이 산모는 이 의사에게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왔고, 의사는 진료차트에 태아가 정상이라고 기록해왔다고 한다.
심지어 박동도 정상이라고 했다하니, 형식적인 진료를 했음이 틀림없다.
새튼이란 용어도 생소하다. 이 역시 '새튼이'란 제목의 꼭지로 에피소드가 있으니 그 글을
발췌해 본다.
사람이 죽은뒤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시체를 두면 수분증발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세균의 발육보다 수분증발의 속도가 빠르면 미라가 된다.
인체의 수분 50퍼센트가 급속히 증발되면 세균의 번식이 정지되기 때문에
썩지 않는다..(후략)
없었기에 젖동냥으로 키우든지, 아니면 아기는 굶어죽게 되었단다. 혼자 남아 아기를 살리
려다 결국 아기가 죽는것을 지켜본 아빠는 엄마를 찾기로 한다. 하지만 어디있는지 모를
아기엄마를 찾기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려 소금장수가 되었고, 아기의 시체를 소금통 밑에
지고 다녔다. 소금이 죽은 아기의 몸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통풍이 잘되다보니 아기 시신은
미라가 되었다. 그러다 결국 아기엄마를 찾은 아빠는 아기의 죽음을 알리고 엄마품에 미라를
던졌다. 도망쳐온 남편이 자기를 찾아온것만해도 놀라 자빠질 일인데 하물며 갓난아기 시체
를 품에 안고 너무놀라 아기엄마는 급사해 버렸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사람들은 갓난아기
귀신이 한을 품고, 영험해서 벌인 일이라 하여 모두들 새튼이를 무서워 했다고 한다.
이 책은 1부.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2부. 성범죄 사건, 3부.지능적인 사건의 결말,
4부. 어처구니없는 사건, 5부. 기이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원별로 소개된 에피소드
들은 흔히 볼수있는 단순한 사망사건들이 아니다. 그리고 법의학이 없었다면 미제로 분류
됐거나 죽은 영혼이 한을 풀지 못할 사건들이다. 다행히 못잡을것만 같던 범인을 잡게된
사연들을 읽다보면,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이왕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든 망자의 한을 풀어줘야 할테니 앞으로 법의학이 더 발전해 완전범죄가 없어져야
할거라는 응원을 하게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고 나열할 것이 아니라
좀더 법의학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나 설명들이 부족해서 아쉽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일요신문 같은 주간지에 가십으로 실리거나, 신문의 기획기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보니,
그저 재미로 읽기엔 좋지만,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얻으려는 이들에겐 너무 부족
해 보이겠다. 아마도 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쉽게 법의학을 소개하기 위함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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