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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나이 마흔 다되어 어린왕자를 읽다,'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어린왕자'를 읽었다.

물론 처음 읽는건 아니고,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오래전에 어린왕자를 읽긴

했더랬다. 하지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이야기책 '어린왕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동급으로 인식되는 '이상한 책'이었다. 그때만해도 은유나, 비유, 역설,

반어법으로 점철된 문학작품을 읽기에는 아마도 너무 어렸었나보다. 딱 떨어지는

스토리를 가진 이야기책이어야 제대로 된 책이었고, 읽어도 이해되지 않던 책이었던

'어린왕자'는 그저그런 이상한 책으로 남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 보건데 어린왕자는

절대 어린이 도서는 아닌듯하다. 성인들을 위한 동화? 어른이 되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닐까? 근데 살면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린왕자'를

아주(!) 어렸을때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말해온다.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아니면 다들

남들을 의식해 거짓 감동을 이야기 했던걸까?

 

나이 마흔이 다되어 읽은 '어린왕자'는 색다른 감동을 주었다. 아~ 그래..이래서

이 책이 이리도 유명한 명작이라 불리는구나.. 나에게 명작을 명작으로 인식시켜

준 일등공신은 정희재 라는 작가다. 바로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정희재 작가는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와 같은

성인도서는 물론이고, <칫솔맨, 도와줘요!>, <과자마녀를 조심해!> 와 같은 아동도서를

쓰기도 했다. 어린시절 인상깊게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어린왕자'를 지구별에 사는

어린왕자의 친구 어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에세이다.

 

27편의 어린왕자 원문을 싣고, 매 편마다 작가의 감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해설을 붙였다. 그렇게 해놓으니 어린왕자의 원문도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나같이 메마른

지구별 어른도 이제야 비로소 어린왕자와 친구가 될수 있을것 같다.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구렁이는 몸이 무거워 움직이지 못하고, 코끼리를 소화시킬 때까지

6개월간 꼼짝않고 머물러 있는단다. 하지만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었을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보아구렁이로 보지 않았다. "그거 모자잖아~" 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게 바로 셍떽쥐베리가 말하고자 하는 함축적인 장면일 것이다. 닫힌 생각, 선입견, 같은

모양의 그림도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고 상상력을 발휘할수 있을진데, 우리 어른들의

생각은 보이는대로, 듣는대로 굳어져 있다. 그건 모자다. 결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구렁이

를 상상할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왕자가 두번째로 그린 그림을 보고서야 어른들은 보아구렁이

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고나서도 한마디 덧붙이지. "속이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는

그런 보아뱀 그림은 그만 그리고 차라리 지리나 역사, 산수, 문법과 같은것이나 열심히 공부

하라고... 그래서 어린왕자는 여섯살 되던해에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일찍 접었다.

 

                     

                     

 

초등학교 다닐적 어떤 한 시험문제에 틀렸던게 아직도 기억 깊숙히 남아있다.

어떤 과목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당시에 시험지는 교사가 직접 출제해서 학교 등사실에서

활자를 맞춰 직접 만들었었다. 그러다보니 잉크가 번지기도 하고, 선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시험문제가 아래 그림을 보고 무엇인지 알아맞춰라는 것이었다.

문제 아래에는 까맣게 번진 어떤 형상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뭔지를 모르겠던 거다,

나는 '꼬막'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틀렸다. 정답은 '송편'이었다. 그러고보니 송편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답이 틀렸다는걸 인정할수 없었다. 꼬막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틀림없이

꼬막으로 보였고, 송편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송편이라고 보였으니까. 선생님은 내 항의를

당연히 묵살하셨고, 이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부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왜 송편만이 답이었을까... 책속의 보아뱀 이야기를 다시 들춰보니 어린왕자가 만났던

어른들의 모습과, 당시의 선생님으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모습은 너무나 닮아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아마도 지금 내 모습도 바로 그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세월이란 녀석 앞에는

피터팬도, 네버랜드도, 어린왕자도 모든게 변해가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는 책장에서 어린왕자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어른이 되서 읽는

어린왕자는 분명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정희재
출판 : 지식의숲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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