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본영화,읽은책

삼국시대,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삼국사기의 산을가다'

아니, 이렇게 훌륭한 책이 출간할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세상에 못나올뻔 했다니!

역사를 전공한 저자가 '삼국사기'에서 힌트를 얻어 삼국사기에 소개된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치열한 전쟁사와 관련된 옛지명과 성들을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기행하며

3년간 심혈을 기울인 이 책이, 2년동안이나 출판사를 만나지못해 사장될뻔 하다가

산에 오르다 우연히 만나게된 출판사 사장님의 도움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제목은 '삼국사기의 산을가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그간 출간된 역사서들이 대체적으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의 역사서들의 문구들을 매끄럽게 해석하는데 할애하고 있다거나, 혹은

정사와 야사들을 비교, 취합하여 그시대의 시대상을 재조명 하는등의 노력들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직접 발로뛰며 백제 위례성은 어디인지, 백제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은 어디에

있는지, 고구려가 정벌했다는 임나일본의 종발성은 어디인지 답사하며 역사를 추적해

가는 신선한 시도는 별로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다양한 역사의 조명, 환영할만 하다.

저자 박기성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였으니 역사학자요, 서울대학교 문리대

산악회 회원으로 시작한 산타기가 요센미티 원정을 거쳐 8천미터봉 하나, 7천미터 봉

세개를 등정하고, 영화 <안나푸르나>의 산악지원팀장으로 활동할만큼 전문산악인 인지라

삼국사기에 소개된 역사의 현장을 찾아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탐방하는데 적임자라

할수 있겠다.


책은 삼국사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사서의 지명과 현재의 서로다른 지명을 고증을 통해 서로

맞춰가며 찾아다니는데 사실 백제와 신라 위주가 될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자면 만주벌판과 요동지역, 북한지역을 헤매다녀야 할테니..

그러기에 어쩔수없이 백제와 신라가 주인공이 될수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신라의

건국과 백제와의 치열했던 전쟁사, 그리고 마지막 백제 멸망까지의 과정을 쫒고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우리가 흔히 일본의 역사조작으로 알고있는 임나일본부설을 상당히

근거있는 역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친일파도 아니고, 역사를 의도

적으로 왜곡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철저히 신라위주의 역사관을 갖고있던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내용을 정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사실과, 때문에 신라에 불리하거나 약소국

이었던 시절이 통째로 역사에서 빠져있는 반면, 일본서기에서는 상세하게 그시절의 한반도

정세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 또한 중국의 '삼국지 위서-왜전'등에 기초하여 볼때 어떤

형태로든 일본이 한반도 남쪽, 지금의 경남 창원지역에 세력화된 실체가 있을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 주장하는대로 한반도 남부 전역을 장악하여 백제와 신라까지 속국

으로 둔 형태이든, 가야 연합국의 변방중 하나로 작은 국가형태를 갖고 있었든간에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을 쓰면서도 저자 역시 상당히 시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한일 양국 사학자들간에도 건드리지 않는 금기로 남아있다면서.



또한 흥미를 갖고 읽었던 부분이 백제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 싸움 부분이다. 나제동맹으로

고구려로부터 수복한 한강하류 지역을 신라의 배신으로 빼앗긴 성왕이, 분노하여 신라를

맹공격 하던중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한 사건이다. 근데 이때 죽은 사람이 성왕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백제군 3만여명이 몰살한 전투가 바로 관산성 싸움이었다. 당시에 3만명

이면 백제의 전군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들이 이때 몰살되었다.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에 실질적인 전투는 태자 여창이 주도하고 있었고, 군사력도 신라에 비해 백제가

우세에 있었다. 그랬기에 고구려를 공격해서 한강하류를 되찾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신라가 배신하자 백제는 전군을 동원해 신라를 공격했는데 이때 관산성도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이었다. 태자 여창은 관산성을 포위하고 신라군을 압박하다 항복을

받기로하고, 웅진에 있던 성왕에게 급보를 보낸다. 와서 신라장군에게 항복의식을 받으

라고. 허나 이 사실을 간파한 신라군은 웅진에서 관산성에 이르는 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성왕의 행차를 급습하여 성왕을 사로잡는다. 성왕은 불과 근위병 50명을 대동하고 행차에

나섰다는 기록이 있다. 성왕을 볼모로 백제군을 협박하여 항복을 받지만, 신라는 약속과

달리 투항한 왕과 군사 전원을 죽여버리게 된다. 당시에도 분명 '제네바 협정'같은 것이

있었겠지만 신라에겐 그보다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백제의 씨를 말려버리는게 급선무

였을것이다. 이 싸움에서 전멸한 이후 백제는 급속도로 세력이 약화되어 감히 신라와

대적하지 못하고 사직을 보존하는데 치중하게 되고, 반면에 신라는 북진하여 고구려와

대적할만큼 대국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인데 이 역시 정사

라기 보다 여러 문헌들과 당시 시대상을 가지고 저자가 추측이 많이 반영된 스토리다.


이 책은 장점만 갖고있지는 않다. 사실 삼국사기등의 역사서에 남아있는 지명과 현재의

지명은 완전히 다를뿐 아니라 아무리해도 그 위치를 찾을수 없는 곳들이 많다. 대표적인게

백제가 초기 수도로 삼았던 하남 위례성 같은것들이 있겠다. 처음에 사학계에서는 몽촌토성

이 위례성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가, 지금은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가능성이 큰것으로 보고있지

않은가. 조선시대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을 다룬 압록강과 두만강, 장백산, 백두산 정계비에

기록된 지명등도 어딘지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는데, 하물며 삼국시대의 지명들을 오늘날

밝혀낸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자가 찾아가는 삼국사기의 역사적

현장들은 대부분이 저자의 추측과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 '지명은 다르지만 주위 산세가

비슷하고, 다른길이 없으니 여기가 바로 그곳일 것이다~'라는 식의...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책에서 찾아가고 있는 곳 역시 실재 역사적 장소라고 볼수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빈약

하다는 부분은 인정할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에 말한대로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러한 시도나마 시작했다는데 의의를 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삼국통일이 신라에 의해 이루어졌다는데 상당히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고구려가 통일하는게 가장 나았고, 그도 아니라면 당시에 강국이었던 백제에 의해서 통일이

되었어야 했다. 삼국중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약한 나라였던 신라가, 그것도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하였다지만, 실상은 당나라가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다가 신라를 꼬드겨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다행인건 그나마 신라까지 당나라에 멸망

하지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일게다. 하지만 후대 역사는 승자인 신라위주로 조작되었다. 특히

신라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던 최대의 적국 백제문화는 철저히 파괴되어 지금은 자취를 찾기

힘들정도 아닌가.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흥미와 수많은 질문들을 안겨줄 책이다.

반면에 역사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틀림없이 지루함의 극치를 안겨줄 책이기도 하다.

리뷰글을 읽은 여러분은 어느쪽인가~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국내도서>여행
저자 : 박기성
출판 : 책만드는집 2011.09.01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