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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8년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나타샤 캄푸쉬의 실화 '3096일'

유명한 일본 영화중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완전한 사육'이란 영화가 있다.

평범한(겉으로 보기에) 회사원이 여고생을 납치해서 집안에 가둬둔채, 외부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게끔 소위 '사육'시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속의 여고생은 처음에는 탈출하려 발악하지만 이내 그게 소용없다는걸

깨닫고 범인의 뜻대로 사육되어진다. 마침내 자유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지만 스스로

범인곁을 떠나려 하지않고, 범인곁에서 안주하려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영화의 끝은 결국 주위사람 도움으로 여고생은 가족에게 돌아가고, 여고생을 납치해서

감금해왔던 범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된다. 놀라운 점은 이 스토리가 감독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본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다. 나중에는 유사영화들이 시리즈물로 나오면서 선정적으로 변모해가 혹자는 이

영화가 일본판 에로영화인줄 아는 사람들도 있을정도로..


이같이 젊은여성, 혹은 여학생을 강제로 납치해 감금하면서 성의 노리개로 삼는다거나,

자신에게 맞춰 '사육'시키는 끔찍한 범죄들이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고, 보도되고 있다.

나타샤 캄푸쉬 사건도 바로 이런 부류의 사건이었다. 나타샤 캄푸쉬는 열살때 등교길에서

범인에게 납치되었다. 이후 주택의 비밀지하실에 감금된채 스스로 탈출하기까지 무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3,096일, 열살 소녀가 열여덟 성인이 될때까지 긴 시간동안

나타샤 캄푸쉬는 감금된채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해왔다. 그녀가 갇혀있던 주택은 외딴

곳에 떨어진 집도 아니고 평범한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그녀의 부모님이

살던 동네와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이었다. 나타샤가 탈출한 후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범인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과연 8년동안

나타샤에게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누구나 다 죽은줄 알았던 나타샤가 8년만에 살아서

나타나자 온 나라가 떠들썩하며 흥분에 빠졌다가 시간이 지나자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샅샅이 파헤치려는 노력이 따라왔다고 한다. 나타샤로서는 모든걸 터놓고 밝히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터인데, 그럴수록 뭔가를 숨긴다는 의혹을 받았다. 가련한 피해자에서 어쩌면

범인의 동조자일수도 있고, 또다른 큰 범죄나 조직을 숨기려 한다는 의심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자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4년이 지난 지금, 입을 열었다. 본인이 직접

8년간의 감금생활에 대해 무슨일이 있었는지 세세하게 밝힌 것이다.




범인은 나타샤를 지하감옥에 감금하고 빛과 음식을 무기로 굴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폭력을 앞세워 주인님으로 부르게끔 하는등 노예처럼 부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살기위해,

음식을 먹기위해, 범인이 시키는대로 할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녀였던 나타샤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자의식을 형성해가는 한편,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주위사람들이 다 자기를

포기하고, 찾지않는다는 범인의 말에 세뇌되어 간다. 오로지 세상에서 자기를 보살펴주고,

위해주는 사람은 범인 한명뿐이라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믿게 되는것이다.


한달, 두달도 아니고 8년여의 세월을 모든 외부와 접촉을 끊고, 범인과 단 둘이 살아가다

보니 나중에는 범인이 죽도록 밉다가도, 문득 좋아하는 사이가 되버린 것이다. 후에는

범인과 함께 쇼핑도 하고, 외출도 하고, 스키장도 다니는 등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길들여진 야생동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것을 두려워하듯 범인의 곁을 떠나 세상밖으로

돌아가는 것에 심각한 두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나타샤는 자신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세상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은행에 인질로 잡혀있던 사람들이 풀려난 후에 오히려 인질범들을 동정하고, 선처를

호소하면서 심리적으로 자신들을 인질로 잡았던 인질범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병'적인

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한다면서, 자신은 이것과 엄연히 다른 상황이다고 항변한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열살 꼬마가 8년이란 세월을 오로지 범인만 바라보며, 그가 주는

밥을 먹고, 그에게서 공부를 배우고, 필요한 모든것을 그를 통해 살아왔는데, 증오심, 반발,

언젠가 탈출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그런 그가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게 어찌 병적인 현상

이냐는 거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나타샤는 열살, 등교길에서 납치당했다. 우리도 어린딸을 둔 부모들은 항상 등하교를

시켜주는걸 흔히 볼수있다. 세상이 그만큼 험하다는 말과 함께. 또 며칠전 신문을 보니

정신병을 앓고있던 50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초등학생 두명을 흉기로 내리쳐 중태에

빠뜨리고 자살한 사건이 보도됐다. 그럼 언제까지 딸아이들을 부모들이 지켜줘야 하는걸까?

초등학교때까지? 아니면 중,고등학교때까지? 참, 이런 책을 보고, 사건을 보면 암담하기

짝이 없다. 어린 딸에게 집 앞 슈퍼 다녀오라고 혼자 심부름 보내기조차 어려운 세상에

살고있으니...


이제 성인이 된 나타샤에게 필요한건 생각하기도 끔찍한 과거를 캐묻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을 느끼고 다시 사람을 믿을수 있게 만들어줄 따뜻한

사람들일 것이다. 말하기 싫어하는 나타샤에게 범인에게 성폭행 당했느냐, 몇번 당했느냐

하고 캐묻는 일은, 그 자체로 범인이 한사람의 인격을 말살하고 노예처럼 감금했던 그일과

비교해 크게 다를것 같지 않다. 어린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아~ 여자로 태어난 이들이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할수 있는 세상은 오긴 오는것일까?



3096일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나타샤 캄푸쉬(Natascha Kampusch) / 박민숙역
출판 : 은행나무 20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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