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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지극히 사적이고 쓸쓸한 여행서 '다방 기행문'

이제는 카페, 커피숍에 밀려 사라져가는 다방, 그것도 외딴 시골마을 이름없는 다방들을

찾아 28개월의 긴 여행을 다녀온 저자 유성용의 새 책이다. 일종의 여행서고, 기행문인데 그

소재가 특이하기 이를데없다. 다방이다. 왜 하필 다방일까? 은근 낭만이 묻어나는 기찻길과

사라져가는 시골마을 역사도 아니고,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전국의 문화재도

아니고, 오양, 김양, 하양, 송양이 보자기에 싼 오봉을 들고 스쿠터 타고 배달 나가는 곳,

그러다 손님들이 티켓 끊고 나가는 퇴폐적인 이미지, 18세도 되지않는 고등학교, 중학교

중퇴 여학생들이 어른흉내 내며 레지로 취업했다가 불법 성매매 단속됐다고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런 다방이 기행문의 주제다.





저자는 사라지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추억, 자기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전국의

다방을 순례했다고 밝힌다.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자칫 제목에서 느껴지는 다방의 퇴폐성에서 책까지 오해할뻔 했다.

책 내용을 읽어보면 물론, 다방이 주 소재이긴 하지만 책의 주제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포천을 거쳐 강원도 동해바다를 따라 경상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지리산 자락의 내륙으로 올라오고,

그러다 남해안을 거쳐 목포와 신안 섬들까지 들렸다가 다시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전국

여행이다. 그것도 마치 다방 레지들이 커피 배달할때나 쓸법한 작은 스쿠터 한대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스쿠터로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뜻하지 않게 이처럼 멋있는 풍경을 접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주친 시골마을의 다방과, 함께있는 이용원, 허름한 식당, 방앗간, 여관이나 여인숙 이런

서민적이고, 소외되고, 가진것 없는 자들을 상징하는 듯한 장소들과 마주하며 저자가 느끼는 인생

이야기, 틈틈이 예전 추억, 가족이야기,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펼쳐진다. 인상 깊은 대목 하나 소개한다.


동해 바다를 타고 내려오다 어딘지도 모르게 들렀던 곳, 청진. 그곳에서 '청진이용원'이란 허름한

간판을 보고, 어릴적 겪었던 이용원에서의 이발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더란다. 그냥 빈 의자에 앉아서 이발사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고, 그렇게 한숨

잘자고 주인이 들어와 잠이 깼다. 낯선 손님이 의자에서 자고있는데 어디갔다 돌아온 주인 이발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뭐라고 묻는 말도 없이 잠시 나가더니 쟁반 하나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 쟁반

위에는 얼음띄운 냉커피와 동충하초 드링크 한병이 들려있었다. 더운 여름날 남의 가게에서 허락도

없이 시원하게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난 것도 고마운데 거기에 시원한 냉커피까지~

"얼마나 되셨어요?" "몰라 몇십년 됐지" "손님들은 많나요?"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끊이지 않아."

"젊은 사람들도 오나요?" "젊은 사람이 별로없어. 대신 할머니들이 오지" "할머니들이 미용실 안가고

이용원에 와요?" "응, 여기 할머니들은 이발소 와서 머리 깍아" 이런 대화들이 오가고 서울에서 여기

까지 쪼만한 스쿠터 타고 왔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밥먹고 가라며 이용원에 딸린 집으로 데려갔고,

이발사의 아내는 마치 대기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부엌에서 상을 차려내왔다. 그사이에 새로운

손님이 왔고, 이발후에 그 손님까지 네사람이 또 술상을 봤다. 자고 가라는 부부을 뒤로하고, 어둠이

깔린 길 위에 올라섰다...



저자 유성용을 검색해보니 '생활여행자' 또는 '여행생활자'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여행 전문가다.

저서만도 <아무것도 아닌것들의 사랑>, <생활 여행자>, <여행 생활자>, <다방 기행문> 네권이나
된다.
국내 여행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도 부지기수로 다녀왔다. 거기다 한술 더떠 목적지도 없이
발 가는대로
걷다가, 또는 운전하다가 필이 꽂히면 그냥 눌러앉아 몇년씩 살기도 하고 그런 모양이다. 지리산에서도 4년을 살았다고 하니.. 그런데 한가지 드는 의문. 결혼했으면 가정도 있을텐데 이렇게
혼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며 여행속에 살아도 되나? 가족은? 이에 대한 답을 책안에서
찾을수 있었다.

아내와는 이혼절차가 진행중이라는... 유성용이라는 여행가만 놓고 봤을때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소탈하고,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발가는대로 가다가 아무데서나 자고, 먹고,

그러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슬픔을 토로해내고... 하지만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자리를 놓고 보면,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빵점이다.



소박하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기억의 편린들, 잊혀져 가는 우리네 사는 모습들을 저자의 염세적인

시각으로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꼭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