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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지독하게 암담하고 우울한 소설 '환영', 어떤 삶이 이보다 더 최악일까


아~ 이렇게 찝찝할 수가... 소설이 그렇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책을 덮으면서 썩소나마 지을수 있지, 이렇게 결말도 없고, 해답도 없고, 이런 지독한

삶을 변화시킬 희망 한조각마저 남겨두지 않고 엔딩을 맞게되면 책을 덮으면서도 마냥

답답하고, 암담하다. 슬프다...


주인공 윤영은 삼십대 주부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풍비박산난 집을 떠나 만나

동거부터 시작한 남편 역시 무능력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애 우유값이라도 벌려면 기약

없이 공무원시험 준비한다고 무늬만 공부를 하는 남편 대신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학력이 높지도 않고, 특별한 기술도 없고, 애까지 딸린 유부녀에 서른줄이 넘어간 여자.

오로지 반반한 외모와 얼굴을 갖고서 할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 우리의 주인공

윤영은 그렇게 윤리적인 기준도 가지고 있지 않아보인다.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 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만 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도시 외곽의 닭백숙집에서 손님의 시중을 들고, 그러다 손님의 손길을 모른척하고,

또 그러다가 팁을 받고, 돈을 받고, 몸을 팔게된다. 정해진 수순이다. 비단 소설속 이 여인네만

그러할까? 우리 사회가?


자식들의 과외수업비를 벌겠다고 멀쩡한 주부들이 노래방에 알바를 뛰고, 술집에서 술을

따르고, 소설속의 표현을 빌자면 다리를 벌린다. 뭐든지 처음이 힘들다. 처음엔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분유값을 벌기위해, 하루하루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해서, 뭐든지 해야하니까.

지금 한순간 눈 딱감으면 돼. 하고 용기를 내던 일이 반복되고,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 매춘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의 끝은 어디일까? 분유값을 벌고나면, 과외비를 벌고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정숙한 아내가 되고, 다정한 엄마가 될수 있는걸까?

줄넘기 끈에 방울을 달고있는 엄마와 남편을 보면서 윤영이 돕겠다고 옆에 앉자 엄마가 말한다.

(피곤할테니) "그냥 자"

그러자 윤영은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말리고 싶은건 정작 나였다. 내가 몸 한번 팔면 당신들이 한 달 일한것보다 더 벌어.

 그러니 (이딴일) 하지 마 라고...


어찌보면 이 소설은 머리가 텅 빈 여자가, 가난이라는 핑계로 정조관념 없이 함부러 몸을 굴려대는

이야기만 끄적거려 놓은 소설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나만 이렇게

사나? 고고한 척, 공무원 시험 준비한답시고 수년째 일은 안하고 같은 책만 들여다보고 앉아서

나를 걱정해 주는 척하는 남편도 동네 부인과 바람이 났지 않은가. 나랑 같이 일하는 식당의

언니는? 그리고 사장은? 사장의 아들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온통 윤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 염세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쉽게 동의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인도 못하겠다. 그래서 책을 읽은 뒷맛이 개운치 못하고

씁쓸하다. 소설속의 윤영이 독백하듯 우리 삶엔 뭐가 최악일까? 이보다 더 나빠질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 남편이 처음으로 공장에 취직해 일하다가 사고가 났다. 큰 사고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두 다리를 못쓰게 될지언정. 이럴때 목숨을 건졌다는게 과연 다행이라고
할수 있을까?

 돈도 못버는 주제에 병원비까지 축내는 가장은 죄인이다...


작가는 김이설이라는 여성작가다.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필체가 돋보인다.

"현실의 어디를 움켜쥐어야 벗어날 수 있을까? 기대도 절망도 품을수 없다. 다만, 버티고 견디고

뜨겁게 이겨낼 뿐..." 이 문구가 이 소설을 대변해 주고 있다.

환영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이설
출판 : 자음과모음(구.이룸) 201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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