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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영화,읽은책

'그리워하다 죽으리' 조선을 울린 위대한 사랑




이수광? 이수광? 낯익은 이름인데 무슨 책을 썻더라~ 하며 들춰보니 주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소설 미아리>, <왕의 여자 개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조선명탐정 정약용>등의 저서가
있다. 오늘 소개할 책 <그리워하다 죽으리> 역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랑이야기다.

주인공은 정조, 순조시대의 선비 김 려와 부령 관기 지연화로 두 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극적인 소설을 만들어냈다. 두사람 모두 실존인물로 김려는
시파 가문에서 태어나 뛰어난 글솜씨로 진사시에 급제하고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천주교인
아니면서도 시파를 견제하기 위한 벽파의 음모로 천주교인으로 모함받아 32세때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를 떠난다. 이곳에서 4년을 귀양살고 왕의 사면을 기대하고 있을때 정조가
승하하고 뒤를 이어 순조를 수령청정한 정순왕후에 의해 신유사옥에 휩쓸려 부령에서 경상도
진해로 또다시 유배를 떠나게 되며, 수령청정이 끝나고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자 10년간의
유배에서 해배돼 한양으로 돌아와 관직을 맡게 되는 인물이다.
지연화는 부모 모두 노비였던 탓에 태어나면서 부터 부령 관아의 관기가 되고, 부령으로 유배온
김 려의 배수첩이 되었다가 사랑에 빠진 여인인데 시와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이후 김 려가
진해로 떠나갈때 수절을 하고 그리워하며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맘껏 사랑하며 행복했던 시절은 김 려의 부령 유배시절 4년, 그리고 이후 평생을
서로가 그리워하다 죽을때까지 잊지못한다. 두 사람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주고받은 편지하며
서로를 생각하며 지은 시들이 하나같이 애절하여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다.
다만, 난 책을 읽으며 엉뚱한 생각을 하게됐다. 뭐냐하면...

첫째, 배수첩이라고 하는 존재를 처음 알았다.
배수첩이란 귀양온 사대부를 시중드는 여자노비, 또는 기생을 말한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유배라면 감옥에 갇히는건 아닐지언정 멀고 먼 섬이나 외지로 죄인을 보내
행동에 자유를 구속하며 감시받고, 유폐되어 사는거라고만 알았었는데 왠걸? 공부도 하고,
책도 쓰고, 아이들을 불러 글도 가르치고, 자유로이 그 고을도 돌아다니고, 거기다 기생과
동거도 가능했단다. 김 려도 배수첩으로 연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세월을 보낸다.
소설속의 표현에 이르자면 무릉도원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아무 근심걱정
없이 유유자적하며 살았으니 무릉도원의 삶이라 하겠지만, 죄인의 신분으로 유배지에 유폐된
삶이 무릉도원이라? 김 려외에도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들이 유배지에서 학문의 기틀을 세우고
많은 저서들을 편찬한 것만 봐도 생각만큼 열악하거나 힘든 생활은 아닌가보다...

둘째, 이 소설과 비슷하게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이 사대부 선비들과
기생들간의 이야기다. 양반들이야 일부다처제 하에서 얼마든지 첩을 들일수도 있었고, 기생과
노닥거리는것도 전혀 흠이 되지 않는 사회였으니, 여자문제에 있어서만은 맘고생 안하고
살았겠다. 그런데 수많은 정실부인이나 첩들과의 사이에 아름다운 로맨스나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경우는 거의없고, 그 와중에서도 항상 기생들과의 관계가 후세에 널리 전해진다.
그것도 항상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얘기가 기생이라도 글과 그림에 뛰어나고 학식이 높다~라는
건데 처첩들이라 하여 학문이 떨어졌겠는가. 그럼에도 선비들이 기생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남자 마음을 녹이는 비법과 방중술에 능한 기생들의 필살기 때문이지않았나 혼자 상상해
본다.


이 소설 주인공들의 사랑을 폄하하자면 엄연한 정실부인을 둔 사대부가 한낱 기생과 바람 피운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책 제목의 부제로 달린 ’조선을 울린 위대한 사랑’이라고 칭송
받을수 있었던 까닭은 4년간의 동거 이후에도 서로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잊어버린게 아니라
함경도 부령에서 경상도 진해로 유배지를 옮긴 김 려에게 300일이 걸려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유지해 갔던 때문이다.1년에 한번 편지를 받을수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서로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에는 구구절절 상대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사무쳐있다. 게다가 연화는 김 려를
위해 관기 신분이면서도 수청을 거부하고 수절하다 사또에게 갖은 핍박과 곤장을 맞으면서도
끝끝내 수절하며 정조를 지켜낸다. 그러다 마지막 죽는순간에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죽고싶다는
바램 하나로 사경을 해매면서도 죽지못하고 연인을 그리워하고, 그 소식을 들은 김려는 본인도
오랜 유배생활로 건강을 잃어 죽어가면서도 한양에서 부령으로 또 천리길을 떠난다.
이런 스토리가 오늘날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했다가, 쉽게 헤어지는 세태에서 감동을 주는게
아닐까?

기생들의 수절과 수청거부는 아주 익숙한 소재이기도 하다. 헌데 그런 경우가 꽤나 많았나보다.
소설속 상황을 인용해보자.


"듣자니 그때 같이 있던 놈이 김 려라고 하더구나. 진해로 유배를 가있다지?"
"예"
"그래서 그 자를 위해 수절을 한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너는 관기다. 관기는 관가지물(官家之物)이다. 관가지물이니 관장의 영을 따라야 한다.
그러니 네가 수절을 한다는 것은 당치않다."
관기는 관가의 물건일뿐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빠개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관가지물이라고 해도 수절을 하는 것은 윤리의 문제니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닥쳐라. 관기가 무슨 윤리를 찾느냐? 여봐라, 이 계집을 끌어내어 매를 쳐라"

 

명을 받고 뭇남자들과 몸을 섞는 기생일지라도 자신의 일생을 맡길 정인을 만나면 수절하며
다른 남자와 동침을 거부했다는 기록이 많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가정있는 유부남이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일생을 잊지못하고 애절한 사연을 주고받는 , 그야말로 여자들 입장에선
용서할수 없는 뻔뻔한 이야기로 전락하고 말겠지만, 신분을 떠나고, 시대를 떠나 서로를 존중
하고 아끼는, 그리고 사랑에 목숨거는 이들의 사랑은 지금 시대에 많은 귀감이 되어야 하겠다.

그리워하다 죽으리
국내도서>소설
저자 : 이수광
출판 : 도서출판창해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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